[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빌딩 16층에서는 여의도 파생상품 베테랑으로 손꼽히는 다섯 구성원이 여러 대의 모니터에 둘러싸여 자산배분 전략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국내외 모든 실시간 시황정보를 확인하느라 손 바쁜 이곳은 마치 전장과도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매일 연금시대를 대비한 전략을 꾸렸고 때를 기다려 왔다. 타깃데이트펀드(TDF) 출시를 본격화한 한국투자신탁운용 투자솔루션(IS)부문이다. <뉴스토마토>는 최근 한국형 TDF로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류범준 한국투자신탁운용 IS부문장을 만나 포부를 들어봤다.
"올해는 자산배분의 원년이 될 겁니다. 3년을 기다렸고 이미 다양한 변수 대입은 마친 뒤여서 자신감은 높은 상탭니다."
류범준 IS부문장은 전반적인 경제환경 자체가 자산배분에 더 유리해졌다고 말한다. 자산배분 전략은 통상 자산군 간의 상관관계가 살아 있을수록 훨씬 능동적인 수익을 내는데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한 방향으로 쏠리던 자산 간의 상관관계가 올해부터 발생하고 있어서다. "각 자산 간 상관관계 분석에 따라 분산투자하고 글로벌 자산에 배분하는 전략이 올해 금융투자업계 키워드"란 증권가의 분석보고서가 쏟아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401K'와도 같은 제도 기대감까지 맞물려 국내 주식시장의 체질을 바꿀 것으로도 기대를 모은다. 국내에서는 TDF가 생소한 상품이지만 실제 미국에서는 시장 규모가 1000조원에 이를 만큼 흔한 연금상품이다. 자동투자옵션(디폴트옵션)을 갖춘 퇴직연금인 401K를 도입한 것이 단초가 됐다. 2006년 연금보호법 제정을 통해 TDF를 디폴트상품으로 지정, 연금시장 활성화로 연결시키면서다.
류범준 IS부문장은 "TDF 시장 성장의 가장 큰 선결 요건은 디폴트옵션"이라며 "법제화가 되고 형태가 구체화되면 TDF 시장 자체가 커질 것"으로 진단했다. 2014년부터 꼬박 3년여를 자산배분에 매진해 공부하고 기다린 배경이란 얘기다. 디폴트옵션은 투자일임형 개인연금 가입자가 별도의 운용 요구하지 않으면 투자성향에 맞는 적격 상품에 자동 가입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금융당국은 디폴트옵션 도입 등을 포함한 개인연금법 제정안을 이르면 5월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숱한 밤 지새우며 뜯고, 고쳐…"한국형다운 TDF"
'한국투자 TDF 알(R)아서 펀드시리즈'는 지난 2일 시장에 공개됐다.
미국 TDF전문 자산운용사 업계 3위인 티로프라이스(T. Rowe Price)와 손잡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들인 결과다. 전체 운용규모 약 951조원에 달하는 이 회사는 TDF 운용규모만 274조원에 달한다. 위탁운용사 선정 결과 왜 티로프라이스였는지 묻는 질문에 류 부문장은 "뱅가드도 있고 피델리티도 있었지만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액티브 운용철학을 가진 회사다. 협업은 같은 운용철학을 공유해야 한다고 봤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미국 모듈이 아닌 한국 시장에 적합한 모듈을 적극적으로 보완해준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글라이드패스(Glide Path·자산별 비중 자동조절 시스템)가 아닌 한국인의 라이프특성을 반영한 한국형 글라이드패스를 새로 구축해 '한국형 TDF'를 완성했다는 평가다.
한국형 TDF 모듈을 완성하기까지 숱하게 밤을 샜다고 했다. 그는 "협업 과정에서도 티로프라이스는 우리에 본보기가 돼줬다. 국내 데이터를 보고할 때마다 조율 또 조율하며 뜯어 고치는 작업을 연속했다"며 "한 가지 시그널을 보내면 사나흘씩 연구하고 한국시장을 이해하려 노력해준 과정이 안정화된 모듈, 안정화된 서비스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의 경쟁 우위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TDF의 탄생취지는 평생 수입이다. 퇴직연금상품인 만큼 기본 목표는 물가상승 위험과 수명 연장 위험을 상쇄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특히 티로프라이스의 자랑은 역사적으로 시장 하락기에 퇴직 시 더 많은 은퇴자산을 고객에 돌려준 과거 성과다. 실제 티로프라이스와 S&P의 투자비중 경로를 비교한 결과 티로프라이스의 평균 성과는 10년간 17.3달러에서 40년간 151.7달러로 성장했다. 결코 과거 성과가 미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장기간에 걸쳐 보여준 티로프라이스 TDF 솔루션의 견고성이 주목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지난달 27일 TDF 출시를 맞아 ‘한국투자TDF알아서 펀드 1호 가입 행사’를 열었다.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1층 영업부에서 진행된 행사에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조홍래 한국운용 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한국투자TDF알아서펀드’에 1호로 가입했다. 사진/한국투자신탁운용
ELS펀드로 쌓은 '신뢰'에 장기투자기관 관심 높여
류 부문장은 "현재 몇몇 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일임 가능성을 타진해오고 있다"며 "장기투자상품 라인업 확대 측면에서 관심이 높은 것으로 ELS솔루션펀드 등 IS부문의 과거 상품 경쟁력에 신뢰가 쌓인 투자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 IS부문의 핵심지표는 위험 배제. 안정 추구는 필수다. 연금을 위해 연금에 의해 만들어진 본부답게 시장 변동성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둔다. 갖춰진 IS부문의 운용틀은 자산배분 안정성에 가장 부합한다고도 자부한다. '위험은 통제 가능하나, 수익은 통제할 수 없다'는 본부의 운용철학과도 부합한다.
한국투자 TDF 알아서 펀드시리즈는 총 7개로 은퇴시점을 2020년부터 2045년까지 5개년 단위로 정해 투자하는 6개 펀드와 채권혼합형 펀드 1개로 구성된다. 시딩자금 360억원으로 시작해 현재 한국투자증권에서 1차로 TDF를 판매하고 판매처를 늘려나갈 계획이다.
국내 자산도 편입했다는 점이 다른 TDF와 차별화된다. 한국투자 TDF 알아서펀드는 홈바이어스(자국기업 투자선호) 경향이 강한 한국 투자자를 고려해전체의 약 10~30% 정도를 국내 주식, 채권에 열어뒀다.
자산배분 중요성 일깨워준 동일본 대지진
스탠포드대 통계학 석사 출신인 류범준 IS부문장(43)은 파생상품과 자산배분 분야에서 쌓아온 경력만 15년이 넘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 솔루션본부(IS)가 구성되던 지난 2014년 합류한 류 부문장은 2002년 대우증권 투자공학부를 시작으로 증권가에 발을 들였으며 당시 단일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을 업계 처음으로 출시했다.
2008년부터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홍콩법인과 일본법인에서 채권전략가로 활동해오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2011년 한국에 돌아와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해외운용본부에서 자산배분을 담당했다
"대지진 당시 도쿄에 있었는데 근무 중에 건물이 흔들렸어요. 사실 지진은 버틸 수 있겠다 싶었는데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까지 이어지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당시 일본에 있던 파생인력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는데 다들 고국으로 복귀한 탓에 일본 금투업계에 인력난이 심각했었죠."
하지만 역경을 통해 성장의 결과를 얻었다고 했다. 당시 중동 정정 불안에 따른 유가 급등과 맞물린 동일본 대지진 등 잇달아 불거진 악재로 전 세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됐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파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위험요인이 중첩됐음은 물론이다.
'블랙스완'과도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수월하게 견뎌낼 방법은 하나, 자산배분 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가 자산배분의 원년으로 보여지는 만큼 한 자산에 쏠릴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고 일정 수익률을 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내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최근엔 기관투자자들도 자산배분펀드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상태"라며 "선진 연금시장의 경우 PB들이 일반적으로 자산배분펀드를 기본에 깔고 주식과 채권, 원자재, 부동산 등 싱글자산 비중을 조절해 시장 변화에 대응한다. 고정금리 예금이나 채권을 기초하던 국내도 올해를 기점으로 선진시장처럼 변화할 것"으로 기대했다.
<뉴스토마토>는 최근 한국형 TDF로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류범준 한국투자신탁운용 IS부문장을 만나 포부를 들어봤다. 사진/한국투자신탁운용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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