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요 몇 년 사이 서울 일부 학교를 시작으로 주목할 만 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학교 안 가장 더럽고 어두운 공간인 화장실을 바꾸자 학교 전체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일단 학생들의 표정부터 밝다. 이 마법 같은 일은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의 주도 아래 디자인 전문가가 기획하고 학부모, 교사, 특히 학교의 주인인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생긴 결과다. 그 마법의 현장을 <뉴스토마토>가 직접 다녀왔다.
구로초, 학생들이 VR로 설계 검증
1969년 지어진 구로초등학교는 2000년 개보수를 진행했지만, 이미 16년이나 지난 일로 이제는 화장실 문이 망가져 학생들이 여닫기 힘들어했다. 이에 사용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하고자 학생들이 TF팀의 중심이되고, 학부모, 교사, 디자인디렉터, 교육청 등이 참여해 사용자 만족도를 높였다. 학생 의견을 화장실에 구현하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화장실 칸막이와 벽장식으로 곳곳에 배치했다.
특히, 가상현실(VR) 기술을 적용해 학생들이 직접 VR기기를 착용하고 설계검증 단계를 거치면서 설계오류를 검증했다. 계수대 높이를 아이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낮췄으며, 소변기 폭, 수전 수, 복도 이동 등도 사전에 검토해 조정했다. 그 결과, 학생 수에 맞춰 수전 수를 50% 이상 늘렸으며, 화장실마다 보조거울을 달아 어린 학생들의 감수성을 고려했다. 또 다문화가정 학생이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학교 특성을 반영해 동양식 변기를 일정 수준 유지했다. 5학년 윤지은 양은 “예전엔 냄새나고 쓰레기가 많아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금은 색깔도 너무 예쁘고 편해져 화장실 가는 시간이 즐겁다”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화원중, 학교폭력까지 줄어
1996년 개교한 화원중학교는 교육비 지원 대상 학생 비율이 높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학생과 교직원들이 노력해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개교 이래 단 한 번도 개보수하지 못한 화장실은 어두운 공간으로 인식되며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으로 꼽혔고 탈선 장소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런 화원중이 화장실 개선 사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학교는 물론 호텔·백화점 등 화장실이 좋은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니며 벤치마킹할 부분을 찾았다. 특히, 학생·교사·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TF팀 회의를 10차례 이상 열며 기존 화장실 개선점과 바뀌는 화장실에 필요한 점, 다른 화장실에는 있지만 굳이 없어도 되는 점을 의논해 가려나갔다. 바뀐 화장실이 다른 곳과 가장 다른 점은 면적을 줄여서라도 청소공간을 분리해 새로 만들어 위생적인 면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쓰레기통도 백화점이나 호텔 등에 쓰이는 빌트인 디자인을 차용했다.
트렌드에 맞춰 다른 화장실에 대부분 설치한 대기공간은 과감하게 없애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충돌하지 않고 가장 핵심적인 용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1~2학년 화장실과 3학년 화장실은 서로 다른 분위기로 꾸몄으며, 파우더룸은 감수성 예민한 학생들을 한층 배려했다. 주목할 점으로, 개선 사업이 이뤄진 후 아직 단 한 건의 학교폭력도 화장실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현저히 폭력성이 줄어들고 이전보다 한결 높아진 자존감을 보이며 전체 학교 분위기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밀알학교, 장애학생 맞춤 개선
1997년 지어진 밀알학교는 발달장애 학생들이 유치 과정부터 전공 과정까지 다니는 특수학교다. 다른 학교보다 교직원 수가 배 이상 많아 학생들의 생활습관까지 세심하게 신경쓰지만, 개교 20년을 앞둔 건물은 점점 나이를 드러냈다. 가장 ‘아픈 손가락’인 화장실은 20년 전 기준에 맞춰 지어져 제대로 휠체어가 회전조차 할 수 없어 타일 벽면이 깨지고 부서지기 일쑤였다. 요즘 화장실처럼 반듯한 손잡이나 보조시설마저 부족해 학교 측이 몸이 불편한 학생들에게 미안할 정도였고, 학교에 미용봉사라도 오는 날엔 제대로 머리 감길 공간조차 없었다.
그런 화장실이 지난 7~8월 변신했다. 바뀐 화장실은 무엇보다 210명의 밀알학교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눈높이에 맞춰 설계했다. 남,여화장실, 남,여장애인화장실면적부터 타일, 조명까지 모두 새롭게 태어났고 화장실 입구에는 손 씻고 양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됐다. 색상도 학생들 기호대로 여자화장실은 따뜻한 오렌지 계열로 남자화장실은 산뜻한 하늘색 계열로 연출했다.
남녀 장애인화장실도 휠체어가 회전해도 아무 문제없으며, 휠체어와 타일의 충돌을 막기 위해 타일에는 패드가 설치됐다. 특수학교 학생들의 생활훈련을 위해 대기장소, 손씻는 곳 등을 번호 표시와 함께 안내표지가 부착됐다. 각 화장실 내부에 샤워실과 탈의실을 마련해 더 이상 이발봉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밀알학교 관계자는 “이제는 학교 건물에서 화장실이 가장 예쁘고 밝은 장소가 돼 학생들이 일부러 오는 장소가 됐다”며 “무엇보다 학생들 의견이 반영돼 학생들이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들이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다. 사진/서울시
박용준 기자 yjuns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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