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사망자가 생전에 공증인을 통해 가족이 미리 작성한 유언공정증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병환으로 기면상태에 있었거나 장소 지남력이 흐린 상태였더라도 내용이 단순하고 공증인이 낭독한 뒤 긍정했다면 유언의 효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면상태는 심한 졸음이 있는 상태로, 자극을 주면 깨어나지만 곧 잠들어 버리는 상태이고, 장소 지남력은 자신이 놓여 있는 장소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능력을 말한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숨진 박모씨의 가족들이 장남을 상대로 낸 유언무효확인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비록 공증인이 미리 공정증서 내용을 기재해 온 다음 이를 낭독했더라도 유언자의 구수내용을 필기해 낭독한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에는 ‘유언자의 유언취지의 구수’가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의 면전에서 유언의 취지를 구수하고 공증인이 필기낭독해 유언자와 증인이 그 정확함을 승인한 뒤 각자 서명 또는 날인해야 한다”며 “이 때 유언자의 기명날인은 유언자의 의사에 따라 기명날인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면 반드시 유언자 자신이 할 필요가 없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2011년 12월 고혈압과 당뇨 등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사망했는데 사망 전 “ 부동산을 장남에게 유증한다. 단, 장남은 상속등기 후 10년 이내에 차남과 삼남에게 각 3000만원, 딸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한다. 처(장남의 어머니)에게 처가 사망할 때까지 매월 말일에 60만원씩 지급한다”다는 유언공정증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 내용은 장남 외의 다른 가족들은 몰랐다.
장남은 공증변호사에게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면서 유언공정증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했고 공증변호사는 증인 2명과 함께 중환자실에 있는 박씨를 찾아와 미리 작성해 온 유언공정증서 내용을 확인했다. 당시 박씨는 기면증세가 있었고, 지남력도 다소 흐린 상태였지만 공증변호사가 유언공정증서를 낭독하며 진의를 묻자 ‘예’라고 대답했다.
내용 확인이 끝난 뒤에는 참석 증인들과 박씨 본인이 서명날인 해야 했지만 박씨가 링거를 맞고 있는 상태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기 때문에 공증변호사가 유언자란에 박씨를 대신해 서명했다. 나머지 증인들은 모두 각자 서명날인했다. 이에 나머지 가족들이 박씨가 정신이 흐린 상태에서 작성됐고 박씨 본인이 유언자란에 서명날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언공정증서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가족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박씨의 유언공정증서가 무효라고 판단했지만 2심은 “의식이 명료하고 언어소통에 지장이 없는 상태에서 질문해 유증의사를 확인했고, 당시 박씨의 상태를 고려하면 공증변호사가 대신 서명한 것도 박씨의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이에 가족들이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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