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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 르네상스의 이면)①'황금알 낳는 거위'는 옛말…서울에만 12곳 '포화 직전'
중국 의존도 높은 기이한 구조 '리스크'
2016-07-11 06:00:00 2016-07-11 06:00:00
[뉴스토마토 이성수기자] 올 연말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 선정을 앞두고 업계의 준비가 한창이다. 유통 대기업들은 저마다 특허권 획득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지만 업계 일각에선 오너의 꿈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회의적 반응 또한 존재하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업계의 진단은 최근 문을 연 신규 면세점의 저조한 매출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해외 명품브랜드 유치에 난항을 겪으면서도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과도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등 경영에도 고전하면서 면세점 사업은 더 이상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과 SK네트웍스(001740)의 워커힐면세점이 운영특허 종료로 인해 폐점한 후 현재 서울 시내에는 총 8개의 시내면세점이 영업 중이다.
 
올 연말에는 서울에만 4곳의 면세점이 추가로 특허를 얻고 2017년 내에 영업을 개시하게 된다. 12곳의 면세점이 좁은 서울 땅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만해도 서울에 불과 5곳만 운영되던 시내면세점이 1~2년 새 2배 이상 급격히 늘게 된 것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히던 면세점 사업은 지난해말 신규 사업자 2곳이 추가로 들어서며 '면세점 르네상스' 시대로 불리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포화상태'라는 이야기가 업계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정부의 면세점 추가 지침을 발표하자 업계의 불만이 터졌다. 신규면세점 사업자들은 관세청 등을 찾아가 '적어도 자리를 잡을 시간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를 쏟아부었다.
 
이들은 더 이상의 면세점 추가 특허는 중소·중견기업이 운영하는 지방 면세점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서울의 대기업 신규 면세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특히 해외 출국자에게만 판매할 수 있는 사업 특성상 이용 고객은 한정돼있는데, 면세점이 무분별하게 늘어나면 결국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등 '레드오션'으로 전락해 업계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이 조금만 줄어도 매출에 큰 타격을 입는 면세점이 경쟁자가 더 늘게 된다면 결국 업계의 발전을 막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면세점 업계를 다 죽이려 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두타면세점과 신세계(004170)면세점, SM면세점 등 올해 오픈한 신규 면세점들은 아직 하루 매출액이 5억원대를 넘기지 못하는 실정이다. 당초 목표의 절반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아주 저조한 실적이다.
 
업계는 면세점이 급격히 늘게되면 해외 명품브랜드와 중국 여행사의 배만 채워주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면세점 업계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행사에 제공하던 이른바 '노 투어 피(No Tour Fee)' 혹은 '인두세'라 불리는 과도한 리베이트 관행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면세점 성공의 열쇠로 불리고 있는 해외 명품브랜드는 국가별 매장 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면세점간 브랜드 유치 경쟁이 심화되면서 명품브랜드의 '콧대'만 높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인 관광객, 특히 중국인 관광객(유커)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국내 시내면세점 사업 특성상 각종 질병문제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문제가 닥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큰 리스크로 꼽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에서 올린 외국인 매출은 총 52억2032만달러(약 6조400억원)인데, 이 중 중국인 매출은 86%에 해당하는 44억7575만달러(약 5조1784억원)에 달했다.
 
이미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파동으로 한차례 위기를 겼었던 업계는 최근 정부의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으로 인해 또 다시 유커의 방한이 끊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이번 발표 직후 강렬한 불만을 표시한 바 있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빚어질 경우 자칫 관광객 감소로 이어질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통전문지 '무디리포트'는 지난해 10월 한국 면세시장을 향해 '잘못되면 불모지', '모든 알처럼 깨질 수 있는 황금알'이라며 강한 우려를 나타낸 바 있다.
 
마틴 무디 무디리포트 회장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부는 격정(The Spiraling emotions 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사람들은 면세산업이 보물상자(treasure chest)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불모지(desert island)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관광 경쟁력이 높은 나라가 아니며 언제든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관광시장이 얼어붙을 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특허 심사에서 탈락해 24년만에 사업권을 상실한 워커힐면세점의 일반 고객들의 상품 구매 마지막날인 지난 5월10일 서울 광진구 SK워커힐면세점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수 기자 ohmytru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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