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자기중심성 없는 현 정부 외교·대북정책에 기대 접어"
깊어지는 미·중 갈등 가운데 길 잃어…차기 대통령이 한반도 정세의 최대 변수
2016-06-20 17:44:22 2016-06-20 17:44:22
[뉴스토마토 황준호기자]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그에 대응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반도 배치 추진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로 요동쳤던 상반기의 한반도 정세가 최근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북한이 5월 개최한 노동당 7차 대회가 분기점이었다. 36년 만에 당대회를 치른 북한은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중국으로 파견해 안정적인 대외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대회 후의 북한은 달라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과 어느 정도 부합한다.
 
그러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한 동북아에서 한국이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나서지 않는다면 비교적 안정된 최근의 정세를 이어갈 수도 없으며, 결국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정부에서는 주도적인 외교나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진단하면서, 한반도의 미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을 설득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고, 미국을 설득해 북핵문제 해결을 꾀하는 역할을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평화협력원에서 가진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올해 1월 북한의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나빠졌던 북중관계가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만남을 기점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재 북중관계를 평가하자면.
 
북중관계를 두 나라 사이의 관계 차원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사고’를 치고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 사이가 멀어졌다고 하고, 고위층의 왕래가 시작되면 관계가 회복된다고 본다. 그러나 북중관계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흐름과 세력구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2010년 이후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분쟁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형국으로 나아가는 가운데 북한은 중국에 어떤 존재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는 ‘불가근불가원’의 대상이다. 너무 가까이 하면 북한이 마음대로 하려고 하고, 너무 멀리 하면 미중관계 속에서 중국의 위상과 역량이 약화된다. 중국은 이를 염두에 두고 북한을 다룬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는 것을 상당 기간 지연시켰다. 국제적인 위상이 있으니 결국에는 동의하고 제재에 동참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질적인 제재는 하지 않고 있다. 제재 결의에 반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 내용을 상당 부분 뜯어 고쳐 북한 주민들의 민생과 관련된 물자는 지원할 수 있다는 양해를 받았다. 민생이라는 이유로 대북 생필품 지원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이 바로 중국이 북한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리수용이 북한 노동당 7차 대회를 마친 후 중국에 건너가 시진핑을 만났는데 시진핑의 얘기를 잘 뜯어보면 결국 ‘너희들이 죽게 놔두지는 않겠다. 대신 사고는 치지 마라’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유관 당사국들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안정을 지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북한 들으라고 한 얘기지만, 한국과 미국에도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북한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중국다운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 중국이 14일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 수출금지 품목을 추가로 발표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수출금지 품목에 생필품이 없다. 고리형 자석물질, 마레이징 강철, 자성 합금재료, 고강도 알루미늄 합금 같이 군사적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만 수출을 막았다. 민생에 압력이 안 된다.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도 안보리 결의안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상징적인 물품들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메시지도 있다. ‘너희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제발 사고 좀 치지 마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 중국이 북한을 ‘죽지 않을 정도로’ 살려주는 이유는.
 
지금 미국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포위해 들어오고 있다. 한·일 사이의 최대 쟁점이었던 위안부 문제를 작년 말 봉합하게 한 후 한·미·일 3각 스크럼을 짜고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실제로는 중국을 압박해 온다. 남중국해 쪽에서도 대 중국 포위전선을 만들고 있다. 일본을 앞세우고 필리핀과 손잡고, 이제는 베트남까지 본격적으로 끌어들였다. 시진핑이 리수용을 만나 대북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 것은 그런 흐름에 대한 대응이다.
 
박근혜 정부는 중국을 향해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도록 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중국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이 한국이 바라는 대로 북한을 압박하기만 하면 대미 협상력이나 외교력은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 오바마 대통령 시기 미국은 미얀마와의 관계를 정상화했고, 최근에는 베트남과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는 오히려 나빠졌다. 이 모두가 대 중국 포위를 위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베트남·미얀마에 대한 대응과 북한에 대한 대응이 정반대인 이유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미얀마·베트남의 비중과 북한의 비중은 다르다. 북한은 중국의 정치적·경제적 심장부인 베이징·상하이와 지리적으로 지극히 가까이에 있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때 베이징이 느끼는 강도와 미얀마·베트남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압박의 강도는 다르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해 들어오면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한국전쟁 때 미군이 압록강·두만강까지 올라가니까 중국이 곧바로 내려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미국은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기보다 ‘위협적인 북한’으로 남겨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편으로 미국이 생각하는 것만큼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포위전선은 그리 강하게 구축되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의 무기를 사기로 한 베트남은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양다리 외교를 한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베트남 같은 나라들을 미국이 완전히 자기네 편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면들을 고려할 때,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관계를 풀지 않는 쪽으로 갈 유인이 더 많다.
 
- 미·중이 최근과 같은 갈등 관계가 된 연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기인 2001~2008년 즈음만 해도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할 이유는 별로 없었다. 중국의 경제력·군사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중국이 군사대국으로 바뀌었다. 200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60주년 기념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중화부흥이 중국 외교의 지침”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덩샤오핑·장쩌민 주석 시기에는 ‘도광양회’라고 해서 힘이 커질 때까지는 죽어지낸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후진타오가 2003년 주석이 되면서 ‘화평굴기’라는 말을 썼다. 과거 아편전쟁과 청일전쟁으로 서양세력과 일본세력에 꿇었던 무릎을 이제는 펴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2013년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되면서 ‘중국몽’을 얘기했다. 중화의 영광을 되찾는 것이 중국인들의 꿈이라는 뜻이다. 아시아의 주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변화를 보면서 미국의 북핵 정책이 확 바뀐 시점이 2010년이다. 미국은 2009년까지는 북한과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반대 때문에 결국은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0년 가을로 넘어가면서 미국은 ‘핵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의 선제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라거나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이른바 ‘전략적 인내 정책’을 뚜렷이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실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에 핵무기가 몇개 있어도 상관없다는 의미였다. 북핵을 핑계로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토록 하는 등 뭐든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중국 압박을 위한 근사한 명분이 됐다. 그러면서 미국의 ‘아시아 회귀’ 혹은 ‘동북아 재균형론’ 같은 전략·구상이 나온다.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활용하고, 압박을 하려면 정세가 긴장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박근혜 정부가 자기들에게 적극 협조하고, 국내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도 반북정서를 토대로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상황은 계속될까.
 
과거 미·소 냉전 때처럼 될 것으로 본다. 동아시아가 신냉전 지대로 될 것이다. 미·중의 갈등관계가 고착화하면 한국은 그야말로 대미·대중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우선 남·북이 손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그런 감각이 전혀 없다. 정부 출범 초기에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균형을 잡겠다고 했지만 점점 미국 쪽으로 쏠려 버렸다. 그렇게 되면 구조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려면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동아시아 정책이 꼬인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면서 등거리 외교를 하면 미·중 갈등 속에서도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런 감각 없이 미국 편중으로 가버리니까 남북관계 개선도 못 하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오래 갈 것이다.
 
- 미·중 갈등이 고착화됐다면 한국이 틈새외교를 할 ‘틈’도 없어지고 양자택일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지 않나.
 
등거리 외교를 할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남북관계는 남한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설사 보수진영의 정치인이 또다시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명박·박근혜처럼 하지 않고 적어도 노태우 대통령 정도만 하면 가능하다. 진보측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면 물론 남북관계 개선을 더 빨리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실마리를 잡으면 된다.
 
- 박근혜 정부 남은 1년 6개월 동안 남북관계 단절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의 대결과 갈등만 심화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지 않기 위해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 암흑기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좋지 않겠지만, 현 정부 5년 전체가 남북관계 암흑기로 기록될 것이다. 더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충고를 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들이 아니다. 북한이 곧 붕괴할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충고는 소용없다.
 
현 정부는 자신들의 힘으로 안보리 대북 제재를 이끌어냈고, 중국에는 사드를 가지고 협박하니 결국 제재에 동참하더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이 북한의 친구 국가인 우간다를 방문해 우리 편으로 만들었다고 자화자찬 하고, 외교부 장관이 북한과 가장 친한 나라인 쿠바에 가서 외교장관 회담을 한 것으로 머지않아 쿠바도 북한을 버릴 것처럼 말했다. 외교부 장관은 또 러시아에 가서 대북 압박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냈다며 러시아가 과거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할 것처럼 얘기한다.
 
그러나 북한과 군사·경찰 분야에서 협력해온 우간다의 경우, 북한의 역할을 우리가 대신 하겠다고 하고 경제적 지원도 할 수 있다고 하면 우간다 입장에서 나쁘지 않다. 그래서 받은 것이다. 북한이 지원을 통해 자기네 편으로 삼았던 나라를 우리 편으로 데려왔다고 해서 북한이 얼마나 아파하겠나. 오히려 부담을 던 측면도 있을 것이다.
 
쿠바의 경우는 자존심이 강한 사회주의 국가다. 미국과의 오랜 갈등을 이겨냈을 정도로 저력이 있는 나라다. 사회주의이면서 권력세습까지 하고 있어서 북한과 공통점이 많다. 한국 편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거의 없다. 기껏해야 남·북한 동시수교를 하는 것 정도겠지만, 쿠바가 보기에 남·북의 비중은 다르다. 현실이 그러한데 한·쿠바 외교장관 회담을 해서 북한에 대한 애정이 줄어들었으니 우리가 이겼다는 식으로 억지를 쓰면 되나.
 
- 내년에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선다. 힐러리 클린턴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면.
 
힐러리 클린턴은 매파다. 미 민주당 내에서도 최강의 매파로,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도 다르다고 한다. 내후년에 들어서는 한국의 새 정부가 힐러리를 설득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는 걸 봤다. 대통령이 탄탄한 소신과 이론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대통령을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관건은 한국의 대통령이다.
 
한국의 다음 대통령이 확실한 의지를 가지고, 현재의 북핵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우선 복원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는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썼지만, 이제는 ‘북핵 문제의 악화를 막고 결국 해결하기 위해 먼저 남북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수순을 밟아 북한이 남북 경제협력의 틀 속으로 다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적어도 남쪽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판을 짜 놓고, 그 토대 위에 북핵 상황의 악화를 막는 국제적 협의체, 6자회담이든 4자회담이든 협의체를 가동해야 한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통해 번 돈으로 무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그나마 대북지원이 됐기 때문에 북한이 남쪽을 상대로 군사적인 사고를 덜 쳤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선 남북관계부터 복원하고, 평화공존의 토대 위에서 북핵 악화를 막아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사진/뉴스1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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