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에 출자보다 대출…한은 '자본확충펀드' 만지작
2009년 20조 펀드 조성 4조 집행…'손실 최소화 원칙' 고수…정부는 '떨떠름'
2016-05-10 15:44:58 2016-05-10 15:44:58
[뉴스토마토 박진아기자] 연일 이어지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놓고 재정당국과 통화당국의 셈법이 복잡하다. 정부는 재정 투입의 복잡한 절차를 내세워 통화당국이 발권력을 동원해 앞장서주길 기대하지만, 한국은행은 특정 산업에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대신에 한은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시적으로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본확충펀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출자보다는 대출을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에서다.
 
10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며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손실을 최소화하는 원칙에서 보면 출자보다 대출이 부합한다"고 밝히면서 자본확충펀드를 언급했다. 정부가 요구하는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하는 방식은 손실 최소화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사실상 거부하고 대안을 제시한 셈이다.
 
출자는 직접 자본 투자를 해서 대주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조선·해운업 부실이 커져 한은이 출자한 국책은행의 부실이 커진다면 한은이 출자한 지분 가치는 떨어진다. 이러한 손실은 한은이 고스란히 떠안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반면에 대출은 다르다. 대출을 하면 채권을 담보로 잡을 수 있고 이자도 받는다. 한은은 2009년에도 자본확충펀드 재원으로 산업은행에 빌려준 3조2966억원을 훗날 모두 회수했다. 실제 한국은행법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출할 때에는 담보를 잡으라고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총재가 제시한 자본확충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졌던 2009년 3월에 처음 출범했다. 자본확충펀드는 은행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기업대출을 활성화해 실물경제를 돕겠다는 취지로 조성됐다. 
 
그 당시 자본확충펀드 조성 계획 규모는 20조원이었다. 당시 20조원을 모두 투입하면 2008년 9월 말 10.86%였던 은행들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2.6%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20조원은 한은이 10조원을 산업은행에 대출하고 산은이 2조원을 추가해 12조원을 펀드에 투입하기로 했다. 나머지 8조원은 기관투자가를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시중은행이 요청을 하면 펀드가 은행이 발행한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을 사주는 형태로 자본확충을 도와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높은 이자와 까다로운 조건, 대규모로 지원받을 경우 부실은행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은행들의 우려로 예상보다 수요가 적었다. 그 당시 자보확충펀드에 손을 내밀면 취약성을 알리는 신호로 보일 수 있어 은행들이 사용을 꺼린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러한 우려로 실제 집행 규모는 3조9500억원이었고 한은 대출 규모도 3조3000억원에 그쳤다.
 
한은이 출자보다 대출 형태인 자본확충펀드를 고려하는 것은 담보를 잡고 자금을 빌려주는 것인 만큼 한은법에도 어긋나지 않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지 않기에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손실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은의 이러한 방안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에서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국책은행에 돈을 빌려줄 경우, 출자와 달리 은행의 손실 흡수 능력을 나타내는 보통주자본비율을 높일 수 없다는 게 주된 지적이다. 보통주자본비율은 은행의 순수한 자기자본인 보통주만 포함해 산출한 자기자본비율을 뜻한다.
 
여기에 정부의 반응도 미온적이다. 한은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해 주길 바랬던 정부는 일단 말을 아끼며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분위기지만 내키지 않는 모양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은과 협의해 가장 적절한 방안을 내놓겠다"면서도 "딱히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이 총재는 출자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출자 방식을 100% 배제하는 건 아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정부와의 협의체에서 충분히 논의할 뜻을 밝혔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원칙적으로 공적자금을 조성하려면 여러 가지 절차들을 거치면서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한은이 생각하기에는 대출이 최선책일 것 같다"면서도 "다만 자금 규모가 클 경우 한 가지 방식만으로 자금수요를 모두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여러 가지 방식이 조금씩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사진 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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