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선두 기업 애플이 친환경 투자를 위해 채권을 발행했다. 애플은 지난달 15억달러 규모의 7년 만기 '그린본드(Green Bond)'를 발행하는데 성공했다. 그린본드는 환경 친화적 프로젝트에 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특수 목적 채권이다. 녹색산업과 관련한 용도로 사용처가 제한되지만 기본적으로 상환 기간과 이자가 확정되어 있는 등 일반 채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은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친환경 사옥과 데이터센터 건설,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채권 발행으로 미국 최대 그린본드 발행 기업이 된 애플은 최근 폐기된 모바일 기기를 자동으로 분리해 재활용하는 로봇 기술을 내놓는 등 녹색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애플의 뒤를 이어 많은 기업이 그린본드를 통해 친환경 투자 활동을 개시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애플이 15억달러에 달하는 그린본드를 발행하며 친환경 기업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본사에서 팀 쿡 애플 회장이 연설하는 모습. 사진/로이터
친환경 사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 파리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 이후 진행된 대규모 그린본드 발행은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 개선과 녹색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 사업 자금 조달 용도로 발행되는 그린본드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리사 잭슨 애플 환경·정책·사회공헌 담당 부사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그린본드 발행은 기후영향에 관한 범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파리협약을 기점으로 결정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린본드는 대체로 일반 채권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되는데다 투자자들을 쉽게 모집할 수 있다. 발행사의 환경 친화적 이미지를 홍보하는 효과도 있어 새로운 사회책임투자(SRI)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그린본드는 지난 2007년 세계은행이 처음 발행했다. 2012년까지 주요 발행처는 국제금융기구에 머물렀으며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소량의 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프랑스 전력회사 에데에프(EDF)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이 대규모 그린본드를 발행하면서 시장이 확대됐다. 그 후 도요타, 유니레버 등 대형 제조업체들도 그린본드 발행 대열에 합류해 친환경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요타는 지난 2014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30억달러에 달하는 그린본드를 발행해 하이브리드나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 자동차 대출 및 리스를 지원하고 있다. 유니레버는 2014년 조달한 2억5000만달러 규모의 그린본드 자금으로 경영활동에서 배출되는 폐기물과 온실가스를 절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낮은 금리·기업 인식변화 덕에 시장확대
새롭게 친환경 투자자군을 만들며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는 그린본드는 앞으로도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그린본드 시장 활성화를 위한 비영리기구인 기후채권이니셔티브(Climate Bond Initiative·CBI)에 따르면, 그린본드 발행규모는 지난 2013년 약 110억달러에서 2014년에 약 366억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2015년에는 418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2016년 예상 발행액은 이보다 훨씬 크다.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는 500억달러, 금융회사 HSBC는 550억~8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CBI는 1000억달러 이상을 예상하고 있다. 그린본드가 5년 이내에 전체 채권시장의 15% 이상을 차지하면서 주류 금융상품으로 발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나 은행보다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그린본드 규모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기업의 사회책임에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친환경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기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투자자들은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도 고려해 투자 대상을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린본드를 발행하는 친환경 기업은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 그린본드는 일반 채권보다 금리가 저렴하다는 이점도 있다. 애플이 지난달 발행한 7년 만기 그린본드의 금리는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를 기준으로 가산금리 1.35%포인트(135bp)를 더해 약 2.86% 수준으로 결정됐다. 이는 만기가 같은 다른 회사채와 비교해 1%정도 낮은 수준의 금리로, 애플의 높은 신용등급과 그린본드의 특성에 근거한다. 금리가 낮을수록 자금조달 부담이 줄기 때문에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으로서는 이익이다. 투자자에게도 투자회수금에 대한 리스크가 적은 안정적인 장기투자 자산이 된다는 이점이 있다.
투자자들의 성향이 다변화됐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빚을 지며' 친환경 투자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이 현재의 운영방식을 친환경 방식으로 바꾸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향후 25년간 캘리포니아의 본사와 영업점의 전기 공급을 모두 태양열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만 8억5000만달러에 달한다.
비용 부담에도 기업들이 그린본드를 발행해 친환경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기후변화가 불러올 경제적 악영향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클린턴 몰로니 지속가능성컨설팅 부사장은 "기후변화의 악영향이 극단적으로 치닫을수록 그린본드는 더 다양하고 정교한 형태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성 검증할 '규제' 아직 없어
친환경 투자라는 특수 목적을 가진 그린본드는 목적 달성이 우선이다. 그래서 친환경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되지 않으면 그린본드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된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자금을 제대로 운용하고 있는지 파악해 환경 개선에 대한 기업의 진정성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이 점이 그린본드 시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투자자들은 발행사를 통제할 규제가 없다는 점을 주요 위험 요소로 여기고 있다. 아직까지는 자금을 친환경 사업에 쓰겠다는 기업의 계획만으로 '그린'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이 계속 확장한다면 혼란이 불가피하다.
현재 대부분의 그린본드 발행사들이 따르고 있는 '그린본드원칙(Green Bond Principle)'은 세계시장협회(IMA)가 세계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JP모건 등 주요 은행들과 협력해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친환경 프로젝트에 포함하는 사업의 범위를 제시하고, 발행사가 자금 운용 활동 및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개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등 세부 사항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 국제기후환경연구센터(CICERO)의 기후재무 부서를 이끌고 있는 크리스타 클랩은 "(그린본드에 대한) 정의와 기준 없이 시장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립 검증 절차로 '투명성' 높여야
그린본드를 발행한 몇몇 기업들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최근 자발적으로 독립된 검증 절차를 도입했다. 애플은 지난달 그린본드 발행에 앞서 서스테널리틱스(Sustainalytics)라는 환경·투자리서치 회사로부터 그린본드 발행에 관해 '세컨드 오피니언'이라는 독립 검증(Independent Verification)을 받았다. 서스테널리틱스는 친환경 프로젝트 선정 과정부터 자금 운영 및 보고 계획을 심사해 애플 그린본드의 적격성에 관한 의견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립 검증 절차는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오며 그린본드의 발행에 힘을 싣고 있다. CBI의 조사에 따르면, 최근 발행된 그린본드 중 60%는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은 경우다. HSBC와 SEB은행처럼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은 채권만 인수하는 기관도 늘고 있다.
하지만 독립 검증에는 비용이 따른다는 점이 문제다. 독립 검증은 일반 채권 발행에는 필요치 않은 추가적인 절차다. CBI는 독립 검증을 받은 그린본드에 대해 증명서를 교부하고 있는데, 증명서 수수료율은 채권 액면가의 0.001%(0.1bp) 정도다. 독립 검증 기관이 부과하는 서비스 비용 및 CBI 수수료 등 여러 가지 추가적인 경비가 그린본드의 발행 비용을 높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그린본드 발행 시 독립 검증서를 첨부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비용에 비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몰로니 부사장은 "투자자들이 그린본드의 진정성에 대해 확신하게 될수록 그린본드 시장이 더 활발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본드는 앞으로 환경문제 개선에 진정성을 보이려는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각광받는 사회책임투자 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토마토CSR연구소 신지선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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