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최고위원들이 14일 모두 같은 점퍼를 입고 한자리에 앉았다. 공식 선거운동복이다. 총선 한달 전인 이날을 선거캠페인 시작일로 삼은 것이다. 그동안 침묵을 이어오던 김무성 대표도 이날 총선 5대 공약(갑을개혁, 마더센터, 일자리 규제개혁, 4050 자유학기제, 청년독립)을 설명하며 3주만에 입을 열었다.
김 대표의 5대 공약 발표 후 다른 최고위원들의 발언은 생략됐다. 모든 이슈를 하나로 모아 총선 승리를 이끌겠다는 뜻이었다. 그동안 공천 문제로 갈등을 보였던 당내 상황을 수습하고 총선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김 대표는 5대 공약을 소개하며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단한 국민들이 많은데 우리 새누리당이 공천 문제에 몰두해서 민생을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날 총 7곡(픽 미, 잘될거야, 비타민, 뭐라고, 올래, 다시 힘을 내어라, 오 필승 코리아)의 총선 공식 로고송을 선정했다. 후보자들의 사용 편의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고, 유권자들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선거 경험이 많은 보좌진과 당직자 10여명이 로고송 선정 과정에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아울러 출·퇴근 시간대용과 시험 기간용, 주택가 맞춤형 등으로 곡을 나눠 선정해 소음 민원 항의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특히 ‘픽 미(pick me)’는 예능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의 대표곡으로 제목 자체가 ‘나를 뽑아주세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총선 로고송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 새누리당 설명이다.
새누리당이 이날부터 공식 선거캠페인을 시작했지만, 준비는 일찌감치 해왔다.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의 홍보를 책임졌던 홍보전문가 조동원씨를 지난해 12월 20대 총선 홍보책임자로 다시 초빙했다. 새누리당의 홍보사령탑으로 여의도로 돌아온 조 본부장 회심의 카드는 최고위원실 배경막이었다.
지난달 22일 최고위회의에서 ‘경제를 살리는 개혁, 미래를 구하는 개혁’이라는 배경막 문구가 갑자기 사라졌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홍보가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에서 '아무 것도 알리지 않겠다’라는 것은 파격 그 자체였다. 많은 언론이 사라진 배경막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더 큰 파격이 그 자리를 채웠다. 빨강색 바탕에 ‘정신차리자 한순간 훅 간다’, ‘청년이 티슈도 아니고 왜 선거 때마다 쓰고 버리십니까’라는 등의 문구가 들어섰다. 조 본부장이 소셜네트워크(SNS) 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한 글이었다.
이번달 7일에는 ‘잘 하자 진짜’, ‘백번의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진짜다’ 등의 문구가 담긴 2번째 배경막을 공개했다. 새누리당의 배경막은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됐다.
공식 선거캠페인이 시작된 14일에도 조 본부장은 최고위원실 백보드에 5대 공약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동안은 국민들의 쓴소리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새누리당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새누리당은 앞으로 배경막을 통해 매주 자신들의 목소리를 홍보할 예정이다.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누구
“이런 식이라면 새누리당을 떠나겠다” 공천룰 갈등과 살생부 논란, 윤상현 막말 파문이 꼬리를 물며 여당 내 계파 갈등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자 지난 10일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 내던진 한 마디다.
조 본부장은 언제나 당을 떠났고 그만큼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당에 세번째로 돌아온 날 그는 “다소 거칠고 기분이 상하더라도 양해해달라”며 “당신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최근 새누리당이 선보인 ‘배경막 정치’는 가감 없는 조 본부장의 화법과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 등으로 유명한 카피라이터로서의 감각이 그대로 투영됐다는 평가다. 당대표실 백보드는 ‘말을 할 때는 생각 좀 하고 말하세요’, ‘이거 쓴다고 안 바뀔 거잖아요’를 거쳐 ‘잘 하자 진짜’라는 가시 돋친 격려로 이어졌다.
대선 후 당을 떠났던 조 본부장은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복귀했다.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을 온몸으로 겪고 있던 와중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몸은 더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들고 나온 것이 “도와주세요” 피켓이다. 김무성 대표부터 거리에 나가 ‘읍소 마케팅’에 동참했고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는 보수층 결집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읍소 마케팅은 홍보 ‘전략’ 중 하나답게 철저히 수도권 이남 지역에서만 활용했다는 후문이다.
그해 한여름에 치러진 7·30 재보궐선거에서는 파격을 택했다. 조 본부장은 당 지도부에게 ‘혁신작렬’, ‘투표작렬’ 등의 슬로건이 새겨진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히고 빨간 스니커즈를 신게 했다. 지방선거, 재보궐선거 모두 여유 있게 승리를 거뒀다.
조 본부장이 여의도 정치판에서 남긴 가장 결정적 장면으로는 역시 2012년의 당명 개정과 당 상징색 변경이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패배, 디도스 사건으로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파란색 당기는 ‘저쪽’의 빨간색으로 변했고 그해 연말 새누리당은 152석의 과반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돼있었다.
조 본부장은 그후 ‘세련된 정치홍보전략가’의 표본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18대 대선 패배 후 내놓은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저서에서 “새누리당은 일찍부터 준비한 홍보전략에 따라 당명을 바꾸고 당의 상징색까지 대담하게 바꾸면서 산뜻한 홍보를 했다. 반면 우리는 SNS 등 우리의 우위를 충분히 살리지 못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취임 후 홍보에 대한 전권을 주며 브랜드 전문가인 손혜원 위원장을 영입했다.
선거용 점퍼를 착용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더불어민주당 최대 경쟁력은 ‘당이름’…홍보전략 없던 ‘과거지사’ 털어버려
지난 몇차례 선거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반바지를 입고 선거운동을 해도, 김무성 대표가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라며 로봇연기를 펼친 홍보 영상을 공개해도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의 홍보 전략에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오히려 ‘보여주기식 선거운동’이라며 폄하했다.
하지만 더민주는 각종 선거에서 연패를 당하면서 홍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선거에서 패배를 거듭하자 문재인 전 대표는 홍보전문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손혜원 홍보위원장을 전격 영입하기에 이른다.
손 위원장은 정치권에 입성 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명부터 손보기 시작했다. 특히 손 위원장은 당명 개정이 당의 올해 총선 전략과 연계돼야 한다고 봤다. 결국 지난해 말 당명이 바뀌면서 더불어민주당의 ‘더’와 ‘더불어’가 당 홍보 전략의 핵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더민주는 해가 바뀌면서 “돈을 많이 벌어라”는 의미로 ‘돈더’라는 문구의 새해 이미지를 선보였고, 최근 필리버스터 정국 때는 ‘필리버스더’라는 문구로 의원들의 홍보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더민주 의원들의 사진과 필리버스터를 했던 총시간 등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외에 발렌타이데이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런 형식의 이미지를 SNS에 게시했다. 모두 ‘더’라는 글자를 다른 글자보다 키우거나 강조해서 만든 이미지다.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를 응용한 ‘민족과 더불어민주당’, ‘청년과 더불어민주당’ 등의 길거리 현수막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지역명을 고려한 표현도 있다. 예를 들어 ‘종로와 더불어민주당’ 등이다. 국회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실에는 ‘국민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배경막이 있다. 각 후보의 명함엔 ‘○○○과 더불어민주당’ 등 후보 이름을 표기했다.
당명을 활용해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평가다. 브랜드 네이밍을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던 손 위원장의 성과다. 더민주 홍보국 관계자는 11일 “당명에서 ‘더’라는 문구가 이미지로 활용된다면 ‘더불어’는 내용적인 측면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더민주는 김형석 작곡가가 만든 선거송을 공개했다. 선거송 제목 역시 ‘더더더’다. ‘더~더~더~’라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 때의 ‘더’는 “무엇인가 불어난다”는 긍정적인 의미다.
더민주 선거송은 각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콘서트’에서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촬영도 마쳤다. 더민주는 ‘더더더’와 함께 대중들에게 친근한 노래를 선정해 선거용으로 개사했다. 공식 선거송으로 이문세의 ‘붉은노을’,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가 있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현재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의 공식 응원가다.
4월초에 프로야구가 개막한다는 점을 고려한 선거 전략이다. 더민주는 선거용 티셔츠도 야구 유니폼 형태로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선거용 티셔츠는 흰색, 파란색, 검정색 3가지 색상으로 구성돼 있다. 티셔츠 뒷편 가운데엔 야구 유니폼처럼 숫자 ‘2’가 크게 새겨져 있고, 위쪽에는 후보 이름을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더민주의 홍보는 이제 ‘선거용 매체 광고’에 집중될 전망이다. 방송 광고는 각종 선거에서 무당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더민주는 각 매체 광고를 통한 홍보 전략을 짜는데 고심 중에 있다.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누구
처음처럼, 참이슬, 힐스테이트 등등. 더민주 손혜원 홍보위원장이 브랜드 네이밍 컨설팅업체 ‘크로스포인트’ 대표로 있으며 작명한 이름들이다. 현대양행(현 한라그룹) 기획실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손 위원장은 1986년 크로스포인트 창립 멤버로 참여한다. 1990년에는 회사를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작명한 상품 중 상당수가 ‘대박’을 치며 업계 내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1월에는 사무실이 있는 서울 남산 인근에 지난 8년간 수집해 온 작품 300점을 토대로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나중에 박물관이 필요로 할 때 기증하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나전칠기들을 모아왔지만 전통 장인들이 만든 현대 작품을 수집하는 곳이 거의 없자 직접 박물관을 만들었다. 나전칠기를 대중화하고 싶은 욕심은 2012년 전통공예를 재해석한 브랜드 ‘하이핸드’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힘든 네이밍은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하는 것’라고 말했던 그가 지난해 7월부터 다수의 국민을 상대하는 정당의 홍보업무를 맡은 데는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와 중·고교 동창(숙명여중·고)이라는 인연도 한몫 했다. 두 사람은 지난 1월17일 신영복 교수 장례식장을 문 전 대표와 함께 찾아 조문하기도 했다.
손 위원장은 페이스북을 통한 소통에도 열심이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다양한 주제의 글과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3주년 맞이 현수막을 만들 때는 후보 시안들을 올려 ‘페친’들의 의향을 구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는 복잡한 심경을 페이스북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더민주 합류 초창기 당내 인사들의 ‘셀프디스’ 릴레이캠페인을 기획·진행했던 그는 지난 2일 “저도 잘못했다. 문 대표님 나가시면 함께 나가겠다고 공언했었다”며 “총선승리·정권교체까지 강제로 쫒아내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적기도 했다.
지난 10일 정청래 의원 등에게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천배제 결정을 내리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라도 살아 당으로 돌아와달라’고 말했던 그는 페이스북에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라고 한 것 해당행위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상처 입은 분들을 위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 와중에도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천 문제로 당이 어수선했던 13일에도 그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드림 경제콘서트’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용민·한고은·최한영·박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