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의 선전이 일본 매스컴에서도 부각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터부시된 미국에서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지지는 멈추지 않는다. 미국에서 ‘격차사회’는 이미 심각한 사회 현상이 되고 있다. 학자금대출로 고통받는 미국 청년들은 월가 자본가들과 기성 정치권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일본 국립대의 등록금이 싸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작년 평균 54만엔(591만원)으로 40년 전보다 무려 15배나 올랐다. 수십년 동안 물가가 오르지 않았던 일본에서 이례적이다.
수업료가 인상되면서 대학생 2명 중 1명은 학자금융자를 받고 있다. 졸업할 때 이미 수백만엔의 등록금 부채를 안은 채 사회인으로 나선다. 결혼 후 출산을 꺼려하는 가장 큰 이유로 교육비 부담을 들 정도다. 미국처럼 부유층만 사립대에 진학하는 계급사회로 바뀔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본 매스컴이 샌더스 현상에 비추어 일본의 격차를 지적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격차사회는 우울한 사건·사고로 이어진다. 지난 1월 무리한 야간버스 운행으로 젊은 대학생 15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노동력 부족, 과도한 이익 추구, 안전경시가 사고 원인으로 지적됐다. 미숙한 운전자를 고용해야 할 정도로 현장인력은 부족하다. 버스 운전사의 기본급은 16만엔에 불과하다. 가족을 부양할 수준의 월급 35만엔을 벌려면 3일 연속 16시간씩 일해야 할 때도 있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 앞날이 창창한 대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가와사키시에서는 요양원 노인 3명이 잇달아 추락사했다. 경찰은 노인을 떠밀어 숨지게 한 직원을 용의자로 지목해 조사하고 있다. 문제는 첫 번째 사고 뒤에 감독관청이나 병원 책임자가 전혀 대책을 취하지 않았고, 세 번째 사고가 나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채 감기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인력 부족과 경비 절약상 사전교육 없이 신참 직원을 현장에 투입하거나 감독 소홀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은 다반사이다. 구조적인 노인빈곤의 단면이다.
격차와 빈곤은 일본 사회의 얼룩이자 민낯이다. 격차사회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되었고 누적되어 왔다. 고이즈미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부산물이었다. 당시 1997~2007년 사이 기업 이익은 28조엔에서 53조엔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사원급여는 147조엔에서 125조엔으로 오히려 줄었다. 20년 넘는 장기 불황에다 구조개혁이 가속화되면서 고용 악화와 비정규직 증가가 소득격차를 낳은 것이다. 정규직이라면 다행이지만, 과로사에 가까울 정도로 일해야 한다. 4할이 넘는 비정규직은 불안정한데다 낮은 임금으로 버텨야 한다.
사회 격차의 국제비교를 보면, 일본은 10위로 한국 18위보다 열악하다. 격차가 가장 심한 칠레와 멕시코 등 남미국가들과 러시아, 미국, 영국 등 다음에 자리 잡고 있다. 1억 총중산층을 자랑하던 19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일본은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소득격차, 지역격차, 세대격차가 더 심화되고 있다. 아베노믹스 성과로 고용 증가를 들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주식 보유자와 대기업은 호황이지만 급여소득자는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 1월 총무성이 발표한 개인 소비지출은 매월 28만엔으로 2011년 3·11 대지진 이후 보다 낮았다. 일본의 청년과 고령층 절반이 이미 빈곤상태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격차구조를 더욱 악화시킨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만도 높다. 여론조사 결과 아베노믹스에 대한 긍정평가는 42%에 그친 반면 부정 평가가 전체의 57%에 달했다. 아베노믹스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수입이 줄었다’ 60%, ‘격차가 커졌다’ 55%, ‘물가상승’ 46%를 들고 있다.
일본은 마치 격차사회 한국과 판박이처럼 보인다. 금수저, 흙수저는 이미 누구나 공감하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이미지는 경쟁사회 35%, 양극화사회 18%로 나타났다. 평등사회로 응답한 비율은 1%에 불과하다. 빈부격차로 인한 불만이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민대통합이 무색해질 정도이다. 3월 들어 대학은 개강준비로 바쁘다. 학부모들이 힘든 살림에 등록금을 내든지 아니면 학생 스스로 학자금 대출을 또 받아야 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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