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대만의 총통 선거에서는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를 누르고 제14대 총통에 당선됐다. 8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와 함께 주목받은 차이 당선인의 독특한 이력이 있었으니,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객가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차이잉원의 아버지 차이제성이 중국 푸젠성에 기반을 둔 객가의 후예다. 다수의 정치 평론가들은 차이잉원의 당선에서 객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대만 인구의 15~20% 가량을 차지하는 객가인들이 이념에 상관없이 차이 당선인에 대한 강력한 지지 의사를 보였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차이 당선인은 선거 유세 중 "객가의 딸이 총통이 되게 해달라"고 수 차례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덩후이, 마잉주에 이어 또 한 명의 총통을 탄생시킨 객가인. 과연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으로 선출된 차이잉원 당선인은 중국의 유대인인 '객가인' 출신으로 알려져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선거 유세를 진행 중인 차이 당선인. 사진/뉴시스·AP
전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경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의 강점은 종교적·문화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지만 동족 간 협동심을 발휘하며 공동체의 발전을 꾀한다. 유대인의 상당수가 살고 있는 미국이 그 전형이다. 친(親)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를 중심으로 뭉친 유대계 미국인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미국 정부가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친화적인 정책을 수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특히 이들은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언론들의 지분을 보유해 이스라엘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도 형성하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 자넷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티모시 가이트너 전 미국 재무장관 등 미국 정·재계, 금융, 법조계를 주도하는 유대인은 한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중국에도 유대인 못지 않은 공동체 정신을 가진 집단이 있다. 중국 대륙은 물론 홍콩, 대만,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중화권의 정·재계를 주무르는 '객가인(客家人·광둥어로 Hakka)'이 그 주인공이다. 객가인은 중국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漢族)의 지계로, 현재는 전세계 80여개국에 약 8000만명이 분포해 있다. 광둥, 푸젠, 광시, 쓰촨 등 중국 19개 성 180개 현에 5000만명이 살고 있고 홍콩·마카오·대만에 600만명,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미국 등 중국 외 국가에 1500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태양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고, 중국인이 있는 곳에 객가인이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객가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름에서부터 '이방인'을 의미하는 객가인의 역사는 진(秦)나라 때부터 시작된다.
수 차례 전란 피해 남쪽 이주…이방인이라 '객가'
바이두백과 등에 따르면 진나라 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남쪽으로 백월을 정복했는데, 객가인은 이때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했다.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 당나라, 송나라로 이어지며 수 차례의 전란이 발생했는데 객가인들은 이때마다 혼란을 피하고자 계속해서 남으로 옮겨갔다. 2000여 년의 세월동안 객가인들은 총 다섯번에 걸친 대규모 이주를 했다. 첫 번째 이주는 서진(西晉) 시대다. 황족들간의 권력 투쟁인 '팔왕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북방의 흉노족, 선비족 등이 침입을 했다. 침략자들은 원주민이었던 한족들을 노예로 삼는 등 탄압을 그치지 않았고 객가인들은 이를 피해 처음으로 남으로 피신을 했다. 두 번째 이주는 당나라 중기에 발생한 '안사의 난' 때로 90년 가까이 진행됐다.
이로부터 약 400년 후 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해 지금의 항저우를 도읍으로 하는 남송이 세워졌는데, 이 때에 객가인들의 세 번째 이주가 일어났다. 안휘, 장시, 후베이 등에 그쳤던 객가인들의 남하선은 푸젠, 광둥까지로 확대됐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형태를 형성하고 객가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다. 객가인들이 자리를 잡았던 광둥성 메이저우와 후이저우 등지에서는 호적 분류를 할 때 원주민들을 '주(主)', 이주민들을 '객(客)'으로 표기했는데, 이방인들을 일컫던 '객적(客籍)'이란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객가'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이주는 객가인들의 활동 영역을 중국 대륙 밖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두 번 모두 국가가 멸망하던 시기 신흥 세력에 대항을 하다 실패하고 나라 밖으로 몸을 피신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명나라를 밀어내고 청나라가 세워졌을 때 정성공과 함께 명나라 부흥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대만으로 옮겨간 것이 네 번째 이주고, 청나라 말기 홍수전을 중심으로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켰던 사람들이 하이난, 동남아 등지로 이주한 것이 다섯 번째 이동인 것이다.
똑똑하고 부지런해 이방인 한계 극복
이를 통해 엿볼 수 있듯 객가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다. 어느 곳에서도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기존 거주민인 '푼디(Pundi·本地의 광둥식 표현)'와의 불화와 마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1855년과 1867년 발생했던 기존 주민과 이주자간 대규모 종족 분쟁 '토객충돌(Punti-Hakka clan wars)'이다.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많게는 수 백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두 집단은 융화되기가 어려웠다. 대신에 객가인들은 자신들끼리 똘똘뭉쳐 살아가는 방법을 강구했다.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고수하고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해 생존을 모색했다. 객가인들이 폐쇄적인 종족 문화를 형성한 것은 나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 같은 폐쇄성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내부 단결을 강화하는 형태의 전통 가옥 '투러우'에도 묻어있다.
객가인들의 전통 가옥인 '투러우'는 4-5층 높이의 원형 가옥으로,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하는 폐쇄성이 특징이다. 사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푸젠성 융딩현의 투러우 민속문화촌의 모습. 사진/뉴시스·신화
객가인들은 강한 정체성과 뛰어난 경제감각, 끈끈한 네트워크로 이방인의 한계를 극복했다. 또한 다수의 관료들을 배출하며 정계의 핵으로도 부상했다. 중국과 대만 양쪽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을 비롯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 대만의 직선제를 도입한 총통 리덩후이 등 중국 근현대사의 주요 정치인 상당수가 객가인이다. 아시아권으로 범위를 넓히면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를 지낸 리콴유, 부정부패 혐의로 실각했으나 여전히 태국 정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탁신 전 총리, 필리핀 명문 정치가 출신의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등이 있다.
정치권 외에도 활약하고 있는 객가인들은 많다. 아시아 최대 부호로 꼽히는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이 가장 대표적인 객가 출신 기업인이다. 최근 증시의 거품이 빠지면서 주가 급락으로 경영 위기에 직면했으나 2015년 초만해도 마윈과 왕젠린을 제치고 중국 최대 부자에 등극했던 리허쥔 하너지 홀딩스 회장도 대표 인물로 거론된다. 연예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데, 지난 2003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과 홍콩의 4대천왕 중 한 명인 여명도 객가인이다.
중화권의 객가 출신 인물들. 사진/뉴시스·위키백과
객가인들은 커뮤니티 규모가 커지고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결속을 다지는데 점차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세계 객가 친속근친 대회(The World Hakka Conference)'도 그 일환이다. 전세계의 중국계 기업인들이 모이는 '세계 화상대회'보다도 훨씬 이전에 등장했다. 중국과 대만은 물론 미국,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객가인이 거주하고 있는 나라들을 순회하며 1~2년 마다 개최되는 이 행사는 객가의 문화를 드높이고 전세계에 객가인의 단결을 보이는 것을 지향한다. 홍콩에서 열렸던 첫 번째 대회에 250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던 것에 반해 지난해 10월 대만 신주에서 개최된 28번째 행사에는 1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확대됐다. 객가 대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록 행사 유치 경쟁도 올림픽이나 월드컵에 상응할 정도로 치열해 지고 있다. 현재까지 개최가 확정된 곳은 2017년 홍콩과 광저우 메이저우, 2019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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