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한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인터넷전문은행에서 은행권의 입김이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당초 금융당국이 강조했던 'ICT기업 중심의 핀테크 활성화'하고는 상반되는 모습이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1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처리가 불발되면서 인터넷은행 컨소시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ICT기업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반면, 은행들은 대출시스템 이식 등을 통해 장악력을 높이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행 은행법에 따르면 비금융자본은 은행지분 보유 한도가 10%(경영권은 4%)에 불과하다. 결국 ICT기업 등 비금융기업이 추가로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예비인가를 받은 K뱅크의 주도업체인 KT의 지분은 8%에 불과하다. 이밖에 우리은행과 GS리테일, 한화생명, 다날은 각각 1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도 주도업체인 카카오의 지분은 10%인 반면 한국투자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지분을 합치면 60%가 넘는다.
인터넷은행의 주요 사업인 중금리대출의 사업노하우를 시중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점도 ICT기업의 입지를 좁게 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중금리대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 신용평가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범운영하는 데에는 3년이 소요된다. 결국 ICT기업들은 시중은행이 보유한 신용평가모델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K뱅크의 주요 주주인 KT는 우리은행에 위비뱅크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국민은행도 카카오뱅크에 KB데이터시스템 관련 인력을 배치했다.
더욱이 이미 인터넷은행에 참여하지 않은 시중은행들도 속속 모바일 중금리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2월 '써니뱅크'를 출시하고 모바일 중금리 대출을 시작했다. 이밖에 KEB하나은행은 '원큐(1Q)뱅크'를, 기업은행은 '아이원(i-ONE)뱅크'를 내놓았다. 일부에서는 이미 인터넷은행 시장의 주도권을 은행들이 가져가고 있는 국면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우려가 커지면서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 시장에서 입김이 강화되자 일각에서는 당초 인터넷은행 설립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ICT와 금융의 융합을 통해 ▲금융서비스 혁신 ▲ICT기업의 활성화 ▲은행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인터넷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은행의 입김이 강화된다면 당초 기대했던 ICT기업의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행에 참여하고 있는 비금융 기업 관계자는 "실제 활용가능한 중금리 신용평가모델과 은행 전반의 시스템은 대부분 시중은행만 보유하고 있다보니 주주로 참여한 은행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 "은산분리 규제로 ICT기업의 추가 투자길도 막혀있어 추가 투자도 금융사들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진행된다면 본인가 후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때 은행들의 의지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갈라질 수 있어 ICT기업의 입지는 더 악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포함한 은행법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출범에 가장 중요한 법안"이라며 "임시국회 또는 추후 20대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ICT기업 활성화라는 당초 도입 취지와 달리 시중은행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다. (위부터)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 국장이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예비인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아래 왼쪽부터)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본사. 사진/뉴시스
김형석 기자 khs8404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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