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는 국가도, 시장도 아닌 제3의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경제활동으로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역사적 진화라고 생각합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지난 4월8일 원내대표로 국회 본회의장에 섰다. 그는 이날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보수의 새로운 지평'과 '성장의 해법'을 말했다. 야당 의원들의 박수도 받았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를 제시했다.
"복지와 일자리에 도움을 주며 양극화 해소와 건강한 지역 공동체의 형성에 도움을 주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영역도 돌봄, 보육, 교육, 병원, 신용, 도시락, 반찬가게, 동네슈퍼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 의원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해왔던 선진국에선 사회적 경제가 발달하고 있다고 했다. 사회적 경제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일은 여야 모두의 책임이라고도 강조했다. 서둘러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제정하자는 얘기였다.
같은 달 17일 유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과 사회적 경제 기본법 여야 최종 합의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 절차를 밟겠다"던 호언장담은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유 의원은 3개월 뒤 이른바 '국회법 개정안 파동'으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도 동력을 잃었다. 19대 국회 마지막인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여야는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은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정의당 모두 내놓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67명의 서명을 받아 지난해 4월 대표발의했다.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65명)은 지난해 10월, 정의당 박원석 의원(10명)은 지난해 11월 각각 발의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사회적 경제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가기 위한 대안으로 꼽았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제안 이유
국가와 시장만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채택한 나라들의 공통적인 경험임. 우리는 사회적 경제가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하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음.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 제안 이유
현재 OECD 국가의 전체 평균 고용률 대비 사회적 경제 부문의 고용률은 4%대, 유럽연합 27개국 평균 7%대이며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는 10%대에 육박하는 등 바야흐로 사회적 경제는 사회 혁신과 공동체 발전을 위한 중요한 견인차로 개발되고 있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정부의 고용정책과 맞물리면서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과 사회서비스 제공, 지역공동체 개발과 협동조합 모델의 확산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음.
-정의당 박원석 의원 제안 이유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공공성의 강화를 위한 상생과 호혜, 연대의 기본 원리로 운영되는 경제 영역임. 이러한 사회적 경제의 확산은 양극화 해소 등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이 될 것으로 보임.
법안 내용도 대체로 비슷하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 차원에서 기본계획을 세우며, 지방자치단체는 시행계획을 만들자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 법안
국가의 사회적 경제 발전과 관련한 주요 정책 및 기본계획과 그 이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고 관계 중앙행정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간의 조화로운 정책 추진을 총괄 조정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으로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를 두도록 함(제15조).
사회적경제발전위원회를 민·관 협치에 의한 공동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장관과 민간위원 중에서 추천된 민간대표를 공동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전체위원 중 민간위원의 수를 2분의 1 이상으로 하며 위원회 소속으로 상임위원, 실무위원회, 소위원회, 사무처 등을 설치하고 기획재정부가 위원회의 총괄부서로서 정책조정 기능과 예산 확보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함(제16조, 제17조).
사회적 기업과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부처마다 나뉜 업무를 하나로 모으자는 취지도 담았다. 이들 법안은 모두 사회적 경제의 정책 지원 사업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경제원'을 설립하도록 했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법안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적 경제 활성화 사업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국사회적경제원을 두도록 함(제15조).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역 중심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 권역별 통합지원센터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함(제16조).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방안도 다르지 않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전기금과 판로 확대 등을 언급했다. 당과 의원명을 가리면 누가 발의한 법안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 법안
정부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정책의 원활한 추진 및 사회적 경제기업의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적경제발전기금”을 설치ㆍ운용토록 함(제22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사회적 경제조직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구매 촉진 및 판로 확대를 위하여 필요한 지원 및 시책을 종합적이고 효과적으로 추진하도록 함(제26조).
◇"정부 정책과 같은 맥락…형평성 문제 검토해야"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의 소관 상임위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검토보고서에서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경제사회 발전의 대안모델로 주목받고 있으며(…)사회적 경제 영역을 활성화해 사회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견인해 내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그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검토보고서 내용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여기에선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 법안의 검토보고서 일부를 소개한다.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 검토보고'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류환민(2014.11)
-최근 우리나라는 경제·사회적 양극화와 소득불균형 등으로 인하여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사회갈등 요인은 점차 증폭되고 있는 상황임. 이에 공생·발전할 수 있는 포용적인 새로운 시장경제의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경제사회 발전의 대안 모델로 주목받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 법률로 제정되고 있는 추세임.
-그동안 우리나라도 사회적기업(고용노동부), 자활기업(보건복지부), 마을기업(안전행정부), 협동조합(기획재정부) 등 사회취약계층의 보호, 복지안전망 확충 및 지역공동체 복원이라는 유사한 지향점을 가진 다양한 사회적 경제조직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현재까지 우리나라 사회적 경제조직의 발전단계는 초기성장단계에 머물고 있으며, 정부 부처 및 제도 간 칸막이로 인해 사회적 경제조직의 지속적인 발전에 장애가 된 측면도 존재함.
-이에 제정안은 사회적 경제조직들이 자생력을 갖고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의 수립·총괄·조정 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는 한편, 사회적 경제조직의 설립·운영 및 지원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여 체계적인 사회적 경제 지원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려는 것으로, 사회적 경제 영역을 활성화하여 사회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견인해 내겠다는 정부의 정책과도 그 맥락을 함께하고 있음.
-따라서 사회적 경제 기본법의 제정은 그 필요성 및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됨.
다만 김형성 한국경제법학회장은 3가지 측면에서 이들 법안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지난 10월15일 국회입법조사처에서 열린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의 입법 전망과 과제'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내용이다.
첫째, 사회적 경제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경쟁을 핵으로 하는 시장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훼손하거나 경쟁 원리의 작동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경쟁 제한적인 요소가 없는지 구체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법안에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하나의 경제주체로 활동하는 사회적 경제조직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국세 및 지방세의 감면을 포함한 직간접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적 경제조직의 제품을 일정 비율(5%) 이상 우선 구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원제도가 경쟁 제한적인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우리 사회의 광범위한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둘째,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지원제도가 중소기업과의 관계에 있어서 형평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중소기업도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의 수준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뿐 아니라 농협중앙회와 같은 거대조직도 사회적 경제조직에 포함시키고 있는 법안의 내용을 고려하면 문제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입니다.
셋째, 법안에서는 구체적인 비용 추계를 첨부하지 않고 있으나, 위원회나 원과 같은 지원 조직의 설립과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 가져올 결과에 비해 과다하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우려는 위헌 시비를 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국가의 재정 능력의 문제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재원의 효율적 배분 문제와도 직결돼 결코 가볍게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민생·경제민주화 법안 vs 기업가 정신 왜곡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는 지난 2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회적 경제 기본법은 대표적인 민생 법안이고, 경제 민주화를 위한 법안"이라며 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민간의 요구로 입법이 추진된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먼저 제안하고, 여야 3당이 모두 법안을 제시하면서 논의가 시작됐는데도 지금에 와서 정치권은 전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5일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이 법제화하면 독점 시장이 조성된다고 주장했다. 윤상호 연구위원은 '사회적 경제 기본법안의 문제점과 허구성' 보고서에서 "법안이 명시한 우선구매제도가 적용되면 공공기관이 사회적 기업으로부터 조달하는 구매액이 3000억원에서 1조8000억원 규모로 확대된다"며 "독점권을 위해 일반 기업이 사회적 경제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왜곡하고 경제적 폐해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여야 줄다리기도 팽팽하다. 여야 원내 지도부가 지난 29일 쟁점 법안을 주고받은 자리에서 새정치연합은 4대 법안 가운데 하나로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야는 이날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상임위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다.
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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