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현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중장년 재취업 서비스 전문화로 고령사회 준비"
생애설계서비스 등 맞춤형 노후 지원…"초석 다지는 역할 맡아 보람"
"직접채용과 유연성, 적정임금 함께 돌아가야…노동개혁은 고육지책"
2015-11-23 10:51:52 2015-11-23 10:51:52
엄현택(59)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에 속한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몸으로 은퇴해야 하는 동년배의 설움을 안다. 고령사회의 문턱에 다다른 한국 사회에서 중장년 재취업이 얼마나 절실한지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엄 사무총장은 "중장년 재취업 인프라를 다지고 전문가를 키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군가는 초석을 깔아야 한다"며 "재단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사발전재단의 업무는 크게 3가지이다. 노사관계가 잘 돌아가도록 파트너십을 다져주는 상생·협력, 생산성과 고용 구조 등을 컨설팅해주는 일터 혁신, 그리고 중장년 일자리 사업이다. 엄 사무총장은 "노동과 자본이 삐걱거리면 생산이 잘 될 수가 없다. 여기에 국가와 사회의 경쟁력이 달려 있다"며 "노사 상생을 넘어 노동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기업은 혁신으로 나아가야 노사가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4월 취임한 엄 사무총장은 1980년 행정고시로 공직에 발을 들였다. 2년 전에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0여년 전에는 비정규직법 초안을 만든 고용노동부 주무 국장이었다. '노동개혁'이 남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기업이 상시적 업무를 직접 채용하는 대신 유연성과 임금 적정성을 담보해주는 시스템이 같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현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사진/뉴스토마토
 
 
-이번 노사정 합의를 어떻게 봤나. 비정규직 기간 연장과 파견 확대 부분은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합의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에 언급하기가 어렵다. 다만 비정규직 문제만 놓고 보면, 35세 이상의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 더 연장했지만 큰 틀에서 손을 대지 않는 대책이어서 궁극적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틀을 뜯어고치고 정리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나름대로 고민도 있고, 답답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일 것이다.
  
-노동계에선 '평생 비정규직을 만든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10년 전 주무 국장으로 비정규직법을 만들었다. 법의 근간을 작업했기 때문에 나도 비정규직 문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당시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 기한을 3년으로 설정해 보냈다. 기간제 근로자 평균 재직 기간이 1년 10개월이던 때였다. 노동계는 명분을 너무 중시한다. 비정규직을 쓰면 안 된다는 원칙만 가지다 보니 기간이 늘어나면 마치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것처럼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년 만에 잘리는 것보다는 3~4년 일하는 게 조금 더 낫다고 본다. 청년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지만, 나이 든 사람은 어차피 정규직이 되기 힘든 상황에서 2년보다는 4년 일하는 것이 좋다.
 
-노동개혁 정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두고 말이 많다. 특히 노동조합을 향한 비판도 나오는데.
 
노조는 기본적으로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익집단이다. 개인 대신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물론 비정규직 등 대다수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다. 고용 형태는 급변하는 데 거기에 맞춰 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구조적인 어려움은 있다. 외국, 특히 유럽처럼 산업별 노동조합이 아니라 기업별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조직화가 어렵다. 그러나 노노 간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노동개혁이 떠오른 건 사실이다.
 
-여당 쪽에선 일부 대기업 노조를 두고 '귀족노조'라며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두 귀족노조는 아니지만 일부 대기업·공기업은 급여가 높고 고용도 '철밥통'이다. 전체 근로계층의 평균 근속 연수는 5년이 채 안 된다. 비정규직은 2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매몰됐다는 측면에서 비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노동운동 전체가 매도돼선 안 되지만, 일정 부분 책임은 있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사용자도 비난받을 점이 많다.
 
-기업이 비정규직, 특히 사내하청을 늘리고 있다.
 
사람을 쓰는 금도가 없어졌다고 본다. 기업이 단기 경쟁력에 매몰돼 사람 쓰는 걸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내하청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 조선, 철강, 자동차 산업이다. 예전 같으면 원청 작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직접 채용했을 텐데, 지금은 남의 회사로 돌리고 있다. 이게 과연 옳은 생산 방식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상시 업무를 정규직이 해야 한다는 노동계 주장이 틀리지 않다. 하지만 왜 그렇게 못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해고가 어렵고,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인가.
 
일을 잘 못하는 직원을 평생 끌고 가는 건 맞지 않다. 해고가 쉽지 않고 고용이 경직돼 있다. 그걸 풀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임금체계도 바뀌어야 한다. 1987년 이후 단일 호봉제가 급격히 도입됐다. 오래 일하기만 하면 임금이 올라간다. 이런 결과로 노동분배율이 높아지는 긍정적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선 지불이 많아지니까 대응책으로 비정규직을 꺼냈다. 역사는 시계추와 같다. 연공급으로 된 임금체계를 고쳐서 기업이 적정임금을 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고용 경직성을 풀어주고 적정임금을 주면서 기업이 직접 고용한다는 원칙과 맞물리면 비정규직 문제는 사라질 수 있다. 이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 방향이 결국 해답이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의 세대 갈등도 불거지고 있다.
 
고령사회를 먼저 겪은 외국의 노동시장을 보면 세대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정년 연장과 청년 고용은 교환 문제로 볼 수 없다. 정년을 연장하거나 고령자 고용률이 높아진다고 해서 청년 실업이 많아지지 않는다. 물론 외국은 직무급(직무 종류나 난이도 등을 기초로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비교적 발달해서 고령사회가 돼도 큰 문제가 없다. 생산성·경쟁력에 맞는 임금체계가 갖춰져 있어서 기업 부담이 적다. 하지만 한국은 나이를 먹을수록 임금이 많아지니까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커진다. 특히 대기업과 공기업처럼 연공급제가 심한 곳에선 그만큼 청년 고용을 하기 어렵다. 또 지불능력이 없는 곳은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일정 부분 임금을 깎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고용을 늘린다고 하면서 갈등이 촉발되지 않았나.
 
그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다. 연공급 임금체계에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청년고용이 살아나기 어렵다. 하지만 임금피크제만 도입된다고 해서 청년고용 문제가 풀리지도 않는다. 마치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잘못이다. 임금피크제가 필요한 기업도 많지만, 세대 갈등으로 몰고 갈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고령사회로 갈수록 중장년 재취업 문제는 더욱 커질 텐데,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
 
연간 80만 명씩 베이비부머 퇴직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1955~1963년생이 베이비붐 1세대인데 내 또래다. 아직 젊고 싱싱하다.(웃음) 재단 업무의 3가지 축 가운데 하나가 중장년 재취업이다. 원래 중장년 업무는 전직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제 중장년 재취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지금까지는 개별적으로 퇴직자들을 상담해주고, 재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사후적으로 알려줬지만, 지금은 먼저 기업들을 찾아가 퇴직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지원 서비스를 한다. 올해에는 건강검진과 같은 직업 종합검진시스템도 도입했다. 50세가 되는 시점에서 직업생활을 돌아보고 노후를 준비하도록 생애설계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올해 1만명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지금 8000명가량 했다.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맞춤형 지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노후에도 일을 계속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은 꼭 회사에 가서만 하는 건 아니다. 사회공헌형 일자리도 있고, 자원봉사, 귀농귀촌도 있다. 재취업도 파트타임, 시니어 인턴 등 고용 형태가 다양하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사람도 있지만, 생활에 보탬이 되기만 하면 괜찮은 경우도 있다. 일하고 싶은 욕구는 같지만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바람은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점에 맞춰서 노후 설계를 지원하려고 한다. 특히 같은 업계에서 퇴직하면 어떤 경로로 가는지 분석하고 성공한 사례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해주면 크게 도움이 된다. 우선 금융업 먼저 하고 있다. 은행과 증권, 보험 등의 업계에서 상담했던 2000여명 자료를 모아 지난 9월부터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전문 재취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업종별로 전문화된 재취업 서비스는 고령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다.
 
-중장년 재취업을 보면 청소·경비 등 질 낮은 일자리 문제도 크다.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면 어떤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사회에서 필요한 일자리는 어디나 비슷하지만,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 일자리 질이 좋아진다. 한국은 지금 고도화 단계에 있다. 은퇴자들이 바로 양질의 일자리로 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직업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연계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일을 그만두면 갈 곳이 마땅치 않으니 재취업이 어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곳곳에 필요한 자리가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세울 때 관리자가 많이 필요한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에서 일하거나 관리자로 지냈던 사람들을 그런 곳에 연계해주면 된다. 기업체의 수요에 맞춰 구인구직을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지영·이순민 기자 soonza00@etomato.com
 
엄현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해 9월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장년 채용 한마당'에 참석해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 고영선 고용노동부 차관, 박찬호 전경련 전무 등과 함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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