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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IP허브코트' 구현, 국가 위상 높일 절호의 기회"
강영호 특허법원장 "성장동력 되찾고 경제발전까지”
중국·싱가포르 총력전…"한국 특허법원이 최적격"
2015-11-02 06:00:00 2015-11-02 09:04:48
"바로 지금이 대한민국 사법부가 국제 지적재산권 분쟁해결의 선도자로 앞서 나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강영호 특허법원장(59·사법연수원 12기)의 눈빛은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내내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가 지난해 2월 특허법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공동위원장을 맡아 입법부, 행정부와 함께 추진해 온 'IP허브코트'에 대한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장기적 성과 또한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IP허브코트'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특허 등 지적재산권 관련 소송의 법정지를 말한다. 예를 들어 국내기업과 외국기업간 특허분쟁이 생길 경우 우리나라 특허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하는 것이다. 국제 분쟁 판단 기준지로, 우리 사법부의 위상은 물론 국가 경쟁력도 크게 상승하게 된다.
경제적 기대 효과도 만만치 않다. 강 법원장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의 세계시장 규모는 약 200조에 달한다. 300조로 추산되는 부가가치까지 더하면 500조규모다. 현재는 미국과 유럽이 양분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10%만 우리나라로 가져와도 50조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는 "IP허브코트는 자금을 새로 투자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보유한 사법부의 우수한 인적자원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며, 이야 말로 창조경제가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강 법원장을 대전 특허법원에서 만나 IP허브코트 추진상황과 비전을 들어봤다.
 
강영호 특허법원장이 지난 30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IP허브코트'의 필요성과 비전을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특허법원
 
◇IP허브코트란 무엇인가
 
국내기업이 특허를 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PCT라는 특허협력조합을 통해 전 세계 주요국가에도 같은 특허를 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허 분쟁이 발생한다. 삼성전자와 애플사간의 특허분쟁이 그 예다. 이 경우 분쟁 당사자인 기업들은 어느 나라에 소송을 제기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런 글로벌 지적재산권 분쟁 해결의 중심이 되는 곳, 국제적으로 선호되는 법정지가 IP허브코트다.
 
◇추진 배경은 어디에 있나
 
우리 사법제도의 우수성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매년 세계 각국의 기업환경 조사결과를 기초로 기업환경평가서를 발표하는데 우리 사법제도는 매년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 발표에서도 우리 사법부는 법적분쟁해결분야에서 인구 1000만명 이상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런 우수한 사법서비스 인프라와 우수한 인적자원을 IP에 접목시킬 필요가 있다. 국제 특허분쟁에서 기업들은 소송 낼 국가를 선택할 때 재판비용과 신속성, 사법부의 독립성·전문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우리 특허법원은 이 세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법원이다. 현재는 미국 CAFC(연방관할항소법원)에서 국제 특허법원 분쟁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고 유럽도 올해 안으로 구현될 UPC(유럽통합특허법원)를 중심으로 시장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아시아에만 이런 IP허브코트가 없는데 바로 우리나라 특허법원이 그야말로 적격이다.
 
◇구체적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
 
IP 사법제도를 수출하거나 국제적인 IP 재판을 유치해 IP 분쟁해결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다. ‘사법 한류’, ‘사법 허브(hub)' 전략 추진도 가능해진다. 경제적으로는 고용창출과 세수증대 효과, 우리 기업의 생산성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지적재산권의 세계시장 규모는 약 200조로 추산된다. 여기에 소송을 수행하는 변호사들의 숙박과 고용, 여행 등 부가가치 300조를 합하면 총 500조 규모다. 이 시장을 미국과 유럽이 양분하고 있다. 우리가 아시아지역 IP허브코트로 일어서서 이 가운데 10%만 확보해도 50조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자금을 투자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보유해 온 우수한 사법제도의 인적자원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창조경제 면에서 최고다.
 
◇다른 국가의 추진상황은
 
중국과 싱가포르가 아예 국가적 과제로 선정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지식재산법원 설립안을 발표한 뒤 우리 특허법원을 벤치마킹해서 11월에 베이징, 12월에 광저우와 상하이에 각각 지식산권법원을 설립했다. 또 국무원은 ‘국가지식재산권 전략 심화실시 행동계획(2014-2020)’을 발표하여 지식재산전반에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추진 중이다.
싱가포르는 2002년 2월 고등법원 내에 IP전문재판부를 설치한 뒤 2010년에 WIPO AMC(Arbitration and Mediation Center/세계지적재산권기구 중재조정센터)를 설치했다. 영어권 국가라는 강점을 내세워 2013년 'IP Hub Master Plan'을 발표하면서 아시아 IP허브코트 체계 구축을 시도 중이다.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만, 중국과 싱가포르 모두 약점은 있다. 중국은 사법부 독립성이 문제되고 있고, 싱가포르는 특허법원 역사가 짧은데다가 특허사건 처리 건수가 상대적으로 미약한 수준이다.
일본은 사법제도 자체가 워낙 보수적인 성향을 띄고 있고 침략국이라는 인상이 강해 국제적 견제를 받고 있어서인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아직 없다.
이런 점을 종합해볼 때 우리 특허법원은 사법부의 독립성이나 전문성, 특허분쟁 판단 경험, 미국과 유럽의 중간지라는 지역적 강점까지 고루 갖춰 아시아지역 IP허브코트로서의 모든 자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추진 상황은 어떤가
 
사법부와 김동완(새누리당 의원), 박범계(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공동위원장과 특허청, 지식재산위원회, KAIST, 서울대, 지식재산협회, 변호사, 변리사회 대표 등으로 구성된 'IP허브코트 추진위원회가 현재까지 4차 회의까지 마쳤다. 오는 16일 마지막 5차 회의를 앞두고 있다. 지금까지 지금까지 ▲국제재판부 설립 ▲외국 거주 증인과 감정인 등의 원격증언 제도 도입 ▲영문 전자소송 제도 도입 ▲IP소송절차 구현을 위해 필요한 특허소송절차내규와 사건관리 표준 매뉴얼 제정 ▲'특허용어개선 공동 추진위원회 구성과 특허용어 개선 ▲특허소송 증거 확보수단 강화 ▲특허침해손해배상 적정화방안 강구 등을 대법원에 건의했다.
이 가운데 주목할 것이 국제재판부 설립이다. 국제재판부는 IP허브코트로 가기 위한 전초기지로, 모든 재판절차를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재판받는 것에 대해 신뢰를 갖게 하기 위함이다. 영어 재판진행 역량은 최근 큰 성과를 이룬 '국제특허법원 컨퍼런스' 등을 통해 확인됐다. 세계 각국의 특허법원장급 법관들이 찬사를 보낸바 있다. 영어로 재판을 진행한다고 해서 국내 기업이 불리할 것은 없다. 국제재판은 양 당사자가 모두 합의해야 진행된다. 다만, 현행법상 법정 소송진행은 한국어로 진행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재판부 전 단계로 동시통역을 지원할 방침이다. 아울러 국제재판이 가능하도록 법개정을 추진할 것이다. 외국에 거주하는 증인 등을 화상으로 출석시키는 원격증언 제도도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다만, 소송서류 전자제출은 보안 문제와 외국에서 바로 소제기를 허용할 경우 국내 소송대리인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의견들이 제기돼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관할집중 방안을 담은 법 개정안이 통과한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IP허브코트 추진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IP 허브 코트 추진위원회’가 지난 6월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제1차 회의를 열고 있다. 사진/대법원
 
◇전문법관 확보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마지막 회의인 5차 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법관이 모든 기술내용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IP 사건 처리경험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법원에서도 이를 염두에 두고 법관인사에 반영할 것이다. 특허법원만 해도 올해 법관 2명이 4년째 근무 중이다. 각 지방법원에서도 지적재산권 전담재판부에 특허법원 근무경력이 있는 부장판사를 배치하고 근무기간을 차츰 늘려가고 있는 추세로 알고 있다.
 
◇최근 치른 '특허법원 국제컨퍼런스' 성과는 어땠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몇가지 대표적인 의미가 있는데, 우선 단일법원에서 국제회의를 주최한 것이 처음이다. 세계 주요국가 특허법원장급들이 모여서 법원장들이 직접 섹션을 연 것은 세계적으로도 첫 사례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을 정례화 할 생각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의미는 소송을 내는 당사자들을 초청해 의견을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David E. KILLOUGH 마이크로소프트 법무 부사장, Ian James HISCOCK 노바티스 지식재산 총괄역, 강기중 삼성전자 부사장 등이 참가했다. 한국법원에서 행사를 열면서 전 과정을 모두 영어로 진행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한국 특허법원 판사들의 인지도가 세계적으로 많이 올라갔다. 사실 미국, 독일 등 세계 주요국가들은 지금까지 한국법원을 자기들보다 한수 아래로 봤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통해 그런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느 법원장은 자신이 맡은 섹션 준비를 다소 부실하게 해왔다가 섹션 준비 전 발표준비 보충을 하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
또 하나 의미가 있는 것은 전 세계 각국 판사들이 다른나라 특허법원과 소송진행에 대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행사가 끝난 후 무엇보다도 매우 유익했다는 평가를 이번 행사에 참석한 각국 법원장들로부터 많이 받았다. 행사 진행 등 그 자체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물론 우리도 배운 것이 많았다. 우리도 상당한 자긍심을 얻게 됐다. 우리 특허법원의 위상이 분명히 올라갔고 우리나라 사법부 위상 역시 상당히 높아졌다고 자부한다.
 
◇국제컨퍼런스 외에 IP허브코트를 위한 또 다른 작업은 없었나
 
취임 후 우리 특허법원을 세계에 알리자는 취지에서 영문저널을 만들었다. 단일 법원에서 영문저널을 발간하는 것은 세계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년에는 과학기술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카이스트와 국책연구기관장들을 위원들로 위촉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또 특허법원 전문심리위원을 100여명을 확보했다. 특허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문심리위원의 도움이 매우 필요하다. 물론 특허법원 판사들도 공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 또는 국민들께 당부 말씀이 있다면
 
IP허브코트는 구현하는 것보다 그 위치와 기능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때문에 국민적인 성원과 국가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앞으로 특허법원은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제도 발전을 통해 국가 성장동력을 되찾고 경제발전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란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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