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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제 남용' 간호조무사 사망…법원 "산재 불인정"
법원 "업무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단정 못해"
2015-11-01 09:00:00 2015-11-01 09:00:00
지난 2010년 12월 밤. 한 산부인과 신생아실에서 간호조무사 A(여)씨가 숨친 채 발견됐다. A씨는 투명한 비닐봉지를 두 손으로 잡아 입에 갖다 댄 채 사망했다.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엔플루란(전신마취제)에 의한 급성약물중독'이었다.
 
 
유족은 A씨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며 업무상 재해를 주장했다. 반면 근로복지공단은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청구를 거부했다.
 
 
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이승한)는 A씨의 남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정황상 A씨의 업무가 과중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씨가 근무한 병원은 한 달에 15건 정도의 분만이 이뤄져 보통 2~3명 정도의 환자와 신생아가 입원하는 편이었다. 또 야간 근무 중이더라도 신생아실에서 잠깐씩 휴식을 취하는 게 허용됐으며 야간 근무 다음날에는 근무를 쉴 수 있었다.
 
 
실제로 A씨의 야간 근무나 콜 근무 일수는 같은 병원의 다른 간호사나 간호조무사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A씨는 사망일 3일 전에는 근무가 없었다. 그때부터 사망 하루 전날까지는 콜 근무를 하긴 했으나 호출을 한 번 받았을 뿐이어서 특별히 업무량이 급격히 증가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A씨가 사망 직전 돌보던 입원 환자 및 신생아 수는 2명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A씨가 오래전부터 심각한 약물중독 상태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A씨는 결혼 과정에서 시댁의 반대를 겪었고 결혼 이후에는 시댁과 남편과의 갈등 등으로 2005년부터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대인관계와 정서가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면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A씨는 불면증을 해소하려고 매일 소주 1~2병을 마시는 한편 신경안정제와 수면제, 진정제 등을 함께 복용했다. 하지만 불면증이 지속되자 투약량을 더 늘렸다. 급기야 2007년부터는 자신이 근무했던 또 다른 병원에서 프로포폴 등 마취용 주사제나 정맥주사제를 빼돌려 자신에게 주사하기도 했다.
 
 
A씨가 사망 직전까지 흡입한 엔플루란도 당시 병원 수술실에 보관돼 있었던 것이다. 의사의 지시가 있어야 투여 가능하고 산소 등과 함께 투여될 것이 요구되는 전신마취제였다. 재판부는 "A씨가 엔플루란을 흡입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병원에서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사진 / 뉴스토마토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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