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몰락하는 재벌들…원인은 '경영권 분쟁·'무리한 확장'
2015-11-04 07:00:00 2015-11-04 07:00:00
1987년 이후 30대 기업집단 중 몰락한 곳은 대우, 쌍용, 기아, 해태, 한보, 동아, 삼미 등 20여곳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외환위기를 원인으로 꼽는다. 같은 충격파임에도 일부는 쇠락의 길을 걸었고, 일부는 격랑 속에서도 건재했다. 
 
개별 기업집단의 흥망성쇠와 재계의 판도 변화는 정부 정책이나 외환위기 등 외부 요인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기업집단 내 사정에 따라 흥하거나 쇠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전까지 재계 1·2위를 지키던 현대와 대우의 몰락은 이런 대내외 사정이 한 데 겹치면서 가능했다.
 
현대그룹의 쇠락은 왕자의 난으로 불린 경영권 다툼과 외환위기로 인한 급격한 유동성 악화가 직접적 원인이지만, 재벌사 연구가들은 그 서막을 199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14대 대선 출마와 패배에서 찾는다.
 
◇서울 종로구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 사진/뉴시스
당시 정 회장은 김영삼·김대중, 양김과의 3자 구도 끝에 낙선했다. 자신의 표를 갉아먹었다고 받아들인 김영삼 후보는 대선과정에서 정 후보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의 발언은 되레 지역감정에 불을 지폈고, 끝내 김영삼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진다. 이후 현대그룹에 대한 강도 높은 세무·검찰조사가 진행됐고, 현대를 비롯한 재계는 이를 보복성 시련으로 받아들였다.

정 회장은 대선 직후인 1993년 2월 횡령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3년간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산업은행 시설자금 지원 동결, 해외자금 조달과 유상증자 봉쇄 등 금융 제재까지 받았다. 빌린 돈으로 사업을 하던 당시 기업 입장에서는 치명적이었다. 현대그룹은 YS정권 내내 자금줄이 막혔고 이때부터 사실상 그룹의 사세는 위축됐다.

국내 재벌사 연구의 대표적 학자로 꼽히는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참여라는 재벌의 과욕이 빚은 후유증은 매우 컸다"며 "기업에는 시련이었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였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계 자리를 놓고 차남(정몽구)과 5남(정몽헌)이 정면 충돌했다. 정 회장이 타계 직전까지도 후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 채 1998년부터 두 사람을 그룹 공동회장이라는 불명확한 자리에 임명,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남긴 탓이다. 
 
결국 현대그룹 임원 인사를 놓고 두 사람이 알력 다툼을 벌인 끝에 정몽구 회장이 자동차, 정몽준 전 의원이 중공업을 승계해 독립했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적통을 물려받았지만 그룹은 2001년 재계 2위에서 올해 21위로 밀려날 만큼 쇠락했다. 자신도 2003년 자살하며 비운의 마침표를 찍었다. 
 
현대그룹에서 보듯 혈족, 특히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은 재계의 단골 메뉴이자, 기업을 휘청이게 만든 최대 악재였다. 재계 30위권 내에서는 한진과 금호, 두산이 혈족 간 분쟁을 겪었고, 최근에는 롯데가 현대의 악몽을 재연하고 있다. 한 사람이 경영권을 통째로 가져가는 승자 독식주의가 혈연을 악연으로 만들었다.  
 
무리한 사업 확장도 몰락을 부채질한다. 대우그룹은 1967년 설립 후 20년 만에 재계 2위까지 올랐으나 그로부터 10여년 만에 해체됐다. 대우는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정책으로 팔려 나온 기업들을 사 외형을 키웠다. 1987년 29곳이던 계열사는 1998년 37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1987년부터 1998년까지 당기순이익이 328% 오를 동안 부채가 559% 늘어나는 기형적인 구조를 벗지 못했다. 모래 위에 성을 쌓은 대우는 결국 외환위기로 무너졌다.  
 
은행 돈을 토대로 한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외환위기 이후 다소 주춤해졌다. IMF를 겪으며 대우와 쌍용, 동아 등 굵직한 기업집단들이 무너진 학습효과 탓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일환으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자 재벌집단의 계열사 확장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동양그룹과 STX가 그렇게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동양은 2007년 4월 출총제가 폐지되자 마자 당시 부채비율이 325%에 달하던 동양메이저 자산을 담보로 한일합섬 인수자금을 마련했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동양의 계열사는 15곳에서 30곳으로 200% 급증했다. 같은 기간 STX도 10곳에서 21곳으로 계열사가 확대됐다.
 
하지만 자산수준을 넘어선 과도한 출자는 부채비율의 급격한 증가를 몰고 왔다. 특히 동양은 2013년 부채율이 999%에 육박하는 최악의 자금난에 빠지면서 어렵게 인수한 계열사를 재매각하는 운명을 맞았다. 금호 역시 대한통운과 대우건설을 다시 토해내야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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