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힘든 고민 끝에 미국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보다 안보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존 미어샤이머)
“한·중·미 관계에서 한국이 보다 중립적이기를 원한다. 그를 위해 중국은 한국과 외교적·경제적 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왕지스)
부상하는 중국과, 그런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미·일 3각 동맹 구축에 공을 들이는 미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외교를 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학술회의가 지난 23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미국과 중국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을 통해 확인된 것은, 한국이 매우 고민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최고 권위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미어샤이머 미 시카고대 교수와 중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이자 미국 전문가인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전략연구원장은 동북아에서 미·중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한국의 선택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시각을 보였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중 경제관계 때문에 ‘다른 선택’을 원하는 한국인들이 있어 선택이 매우 힘들 것”이라면서도 “안보 우려는 국가 생존과 직결되는 것으로 경제적인 우려보다 항상 우위에 있기 때문에 아마 미국과 손을 잡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중국은 적어도 아시아에서 강대국이 되어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려 하겠지만 미국은 그런 상황을 막으려 할 것”이라며 “중국의 주변국들은 미국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균형을 잡고자 할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안보 경쟁은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필리핀, 인도, 베트남 등이 미국과 손을 잡으려 하듯 한국도 결국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가 아시아 지역으로 바뀌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유럽, 동아시아, 중동을 중시하는 미국은 그동안 유럽을 최우선에 두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다”며 “동아시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반영되어 있다. 중동과 유럽의 중요도는 아시아보다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어샤이머 교수가 미·중의 안보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는 이유는 미국이 결코 ‘지는 해’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미국은 현재 인구 상황도 괜찮고 경제도 전반적으로 좋으며 창의력 있는 인적 자본도 많아 2030년이 되어도 강국의 위상을 지킬 것”이라며 “경쟁자를 관용하지 않는 미국은 중국을 봉쇄할 수 있는 역량을 계속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15~20년 후 중국의 위상에 대해서는 ‘경제성장률 5%’를 지킬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는 “중국이 5% 이상의 성장을 계속할 경우 2030년 무렵이 되면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미국은 아시아에서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을 막기 어려울 것이고, 실질적으로 2개의 패권국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뒤이어 발표한 왕지스 원장은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 게임의 룰을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고, 미국에 의한 국제질서를 방해하고자 하는 바가 없다”며 “한국이 보다 중립적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왕 원장은 “한·중 무역은 중·일 무역과 맞먹는 규모이고 인적 관계도 깊어지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고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된다”며 “한국이 균형 잡힌 입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중국은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미국 패권과 중국의 부상은 결코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양자 사이에는 커다란 협력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견해차를 보였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한국이 미국과 손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는 방식의 통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은 중국에 아주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므로 통일은 가까운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왕 원장은 “중국은 무력 통일이 아니라면 한반도 통일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을 주도하는 것은 한국과 북한이지 중국은 지배적인 요소가 아니다”라며 “중국은 통일을 원하지만 남·북에 대한 균형을 추구한다”고 덧붙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학술회의 축사에서 “한국은 미·중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라며 “확실히 이 지역에서 한국의 전략적 공간을 확대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러브콜을 받는 것은 딜레마가 아니라 축복”이라던 윤 장관의 지난 3월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날 회의에서는 ‘미·중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낙관론에만 머무를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한국이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널뛰기 외교’만을 거듭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열병식에 참석함으로써 미·중 균형외교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난 15일 미국에서 “한미동맹의 기적의 역사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때”라고 발언함으로써 균형외교가 아닌 ‘오락가락 외교’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외교안보연구소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광복 70주년, 한국 외교의 길을 묻는다'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한·미·일·중 4개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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