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다원화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해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세계화 혹은 다원화를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기술의 발전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각 국이 처한 환경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데, 세계화의 수준도 여기에 맞춰 달라진다. 기술 진보의 결과도 예단하기는 어렵다. 때로는 세계화를 촉진할 것으로 기대됐던 요인이 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걸림도로 여겨졌던 것이 지구촌의 울타리를 낮추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 크레딧스위스가 최근 발간한 '세계화의 종말인가, 더 다극화된 세계인가'란 제목의 보고서는 우리의 앞날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가장 먼저 고려 할 요인은 자동화다. 완벽히 인간을 대체하는 로봇은 여전히 공상과학 영화 속에나 존재하지만 우리의 삶은 상당 부분 자동화와 로봇으로 인한 편의를 누리고 있다. 3D프린터는 제품 생산의 지역적 제한을 크게 완화시켰고 무인자동차는 상업화 초읽기에 들어갔다.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무인항공기 드론은 전쟁은 물론 유통까지도 책임지는 기기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 같은 이점들이 국가 간의 결속까지 강화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첨단 기기의 생산이 일부 지역에 한정될 것이란 부분에서 글로벌 연결성은 어느 정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해당 기술이나 기기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의 대외의존도는 약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3D프린터로 예를 들면, 그간 교역에 의존했던 제품을 3D프린터를 통해 자체 생산을 할 수 있다.
두 번째 요인은 인터넷 보안이다. 오늘날 인터넷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날로 확장되는 거대한 데이터 저장 공간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감시도 가능해지도록 했다. 미국의 국가안전보장국(NSA)이 지역과 대상을 막론한 도·감청을 해온 것으로 드러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50개 웹사이트에 평균 64개의 추적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 질 수록 개인 정보를 침해할 소지도 커지는 셈이다. 이를 세계화에 대한 관점으로 풀자면, 인터넷을 어떤 의도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기여도도 달라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본 권리로서 인터넷 접근을 강화한다면 전세계의 개방성은 더 높아지겠지만 중국의 '인터넷 만리장성' 처럼 국가 간 연결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폐쇄적인 성향을 키울 것이란 의견이다.
세 번째는 디지털화다. 제품과 서비스들은 물론 돈까지 디지털화가 된 상황에서 관련 기술들은 세계화를 촉진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부에서 나타나는 문화, 역사적 장벽을 제외한다면 전세계는 디지털로 하나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고거 세계화를 방해하는 요인 중 하나였던 언어의 간극을 디지털 번역 알고리즘과 인터넷전화(VoIP)라는 도구를 통해 소통을 쉽게하는 방식으로 메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디지털로 변환된 자금은 시스템 분산을 유도해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크레딧스위스는 분석했다.
다음 요인은 기후변화다. 산업혁명 이후 주요 에너지원이 돼왔던 화석연료는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에너지의 공급과 가격 변동은 정치적 역학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또한 화석 연료의 사용은 환경 오염을 유발해 기후변화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을 높이는 배경이 됐다. 이 같은 점에서 본다면 에너지와 환경은 세계화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편이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국과 소비국의 연대는 공고한 편인데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부분의 논제 역시 많은 국가의 협력이 필요한 세계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다만 환경 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방책으로 신재생 에너지의 개발을 촉진하는 것은 국가간 의존도를 낮추는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각국이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 발전에 힘을 쏟을 수록 에너지 생산이 분산되고 국제 에너지 교역의 수요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식량과 비만이다. 개인의 보건과 밀접한 관계를 지닐 것 같은 이 요인들이 세계화에는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것일까. 크레딧스위스는 비만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라는 점에 착안했다. 1980년 이후 전세계 보건 인구는 두 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를 들며 한 나라가 아닌 국제적 수준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식량 문제 역시 글로벌 인구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로 다뤘다. 2012~2014년 전세계 8억500만명의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다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식량 문제는 국가 안보와 연결해서는 세계화에서 멀어지는 원인으로 분석됐다. 과거 러시아가 대내외적 이유를 들며 밀 수출을 금지했을 때 국제 교역 가격이 급등하고 다수 국가가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던 점에서 보듯, 식량 자원의 과도한 수출입 의존은 글로벌 무역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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