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반응은 놀라울 정도이다. 멀쩡한 휴대폰을 두고도 새로운 휴대폰이 출시되면 모든 관심은 새 제품으로 향한다. 그동안 입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고가의 원피스도 유행이 지난 거라며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식도 그냥 메뉴가 아닌 신 메뉴라는 라벨을 붙여 놓아야만 먹방 영혼들을 쉽게 불러 모을 수 있다.
새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제할 방법은 없다. 어떻게 보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문화이든 산업이든 꾸준한 발전을 거듭하는 원동력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권에도 ‘새정치의 추억’은 짙은 향기를 어제도 내뿜어 왔고 오늘도 진하게 풍기고 있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는 하워드 딘이라는 인물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겠다는 그의 연설은 미국 2030세대의 시선을 붙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미국의 젊은 유권자들에게 딘은 마치 반항아의 상징인 영화배우 ‘제임스 딘’의 재림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딘의 연설 현장을 가본 이라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력한 현직 대통령인 부시를 무너뜨릴 유일한 대안처럼 느꼈다고 회상한다.
한국에서는 이보다 앞서 1995년 정계로 복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 즉 새정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존 한국 정치의 전형을 깨뜨리는 새로운 질서와 도전을 제시했다. 그 모델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체류했던 영국 정치의 변화였다. 18년의 보수당 정권에 도전하기 위해 매력적인 젊은 정치인은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다우닝가에 등장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총선 승리를 통해 캘러헌 이후 정권을 회복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였다. 앤소니 기든스의 제 3의 길은 블레어가 추진한 새정치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의 특별한 영국행이 정계은퇴라기보다는 정권 교체를 위한 예정된 여정으로까지 평가받는 까닭이다. 95년 탄생한 새정치국민회의는 ‘새정치’의 효과를 오롯이 누렸다. 무기력한 야당을 대체하는 성과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대감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20여년이 지나 야권에서 다시 ‘새정치의 추억’이 꿈틀대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전 대표는 기존 정치와 전혀 다른 정치를 꿈꾸며 혜성같이 등장했다. 안 전 대표는 새로운 인물이었고 새로운 정치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을 대선 과정에서 위협할 정도로 안 전 대표를 통한 새정치 기대감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워드 딘의 운명처럼 안 전 대표의 새정치는 지난 대선에서 꽃을 피우지 못했다. 딘이 실패한 원인은 각광받았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새정치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컸던 만큼 딘이 보여준 내용에 실망하고 좌절했다. 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민주당 후보 역시 새정치를 내세웠는데 결과는 당선이었다. 딘이 하지 못한 정권교체를 클린턴은 어떻게 가능하게 했을까. 내용과 무내용의 차이였다. 클린턴은 새정치라는 용기에 먹음직스런 내용물을 가득 채운 반면 딘의 새정치는 사상누각처럼 지리멸렬했고 노련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 전 대표는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국의 블레어 전 총리처럼 ‘제3의 길’을 언급하며 민주당과 전격 통합했다. 당의 이름은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택했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앞머리가 같은 새정치민주연합이다. 95년의 새정치는 성공적이었다.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정권재창출까지 성공했다. 92년 미국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는 12년 공화당 정권을 끝내고 민주당 8년 정권을 이끌었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 탄생의 씨앗을 뿌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새정치는 성공할 수 있을까. 새정치의 싹을 틔우기도 전에 새정치민주연합은 내홍의 깊숙한 늪에 빠져있다. 데일리한국의 의뢰로 리서치앤리서치가 지난 11~13일 실시(전국1000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한 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당대표직 유지 여부’에 대해 물어본 결과,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절반에 가까운 47%였다. ‘당 대표직을 유지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31.9%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에서는 당 대표직 유지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전반적인 국민여론은 싸늘하다. 90년대의 새정치는 꽃을 피웠지만 2000년대 들어 새정치는 제대로 만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보여준 노련하고 농익은 ‘새정치’를 택할지, 2004년 미국 민주당이 보여준 설익고 무기력한 ‘새정치’를 선택할지.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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