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암살>은 미국의 영화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신선도 83%를 기록했다. 로튼 토마토는 썩은 토마토라는 뜻이다. 옛날 옛적에 연극 공연에서 연기를 못한 배우에게 토마토를 던진 관습에서 유래했다.
이 사이트는 평론가와 관객의 집단적 평가를 신선도로 표시한다. ‘신선하다(fresh)'와 썩었다(rotten)'을 종합해 영화나 드라마의 신선도를 평가하는 것이다. 가령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현재까지 97%의 높은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1998년에 만들어졌고 지금은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사이트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썩었다’는 술어를 들으면 으레 정치가 생각난다. 요즘 한국정치를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 정당들의 신선도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대통령을 비롯해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나아가 정부부처들의 신선도를 평가하면 얼마나 될까. 참고로 기준삼아 얘기하면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정치세력과 함께 언급되는 단어 가운데 긍정어 분포는 대체로 20% 내외 남짓하다. 로튼 토마토식으로 보면 한국정치의 신선도는 ‘0’에 가깝게 수렴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찍어냈을’ 때 우리 국민은 무엇을 보았을까. 당시 여당 원내대표의 사퇴회견문은 비장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 오늘이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가치에 매달리고 지켜내야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유승민은 잠시 잊혀졌지만 이 말만은 또렷이 기억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특별하게 기억된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가 낡았다는 방증이다.
지금 정부는 이른바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정의롭지는 않다. ‘일반해고’라는 말로 포장된 해고자유화 법안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마저 위협한다. OECD 국가 가운데 노조가입률 꼴찌인 나라에서 여당 대표가 노조를 공격한다. 노조가입률이 높아야 소득불평등이 완화되고 경제도 좋아진다는 말에는 귀를 닫아버린다. 고용노동부는 임금피크제로 13만개의 청년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뻔한 거짓말을 한다. 힘센 재벌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몰아붙이는 것은 적어도 정부가 앞장서서 할 일은 아닌 듯싶다.
여당 대표는 사위가 마약을 했는데도 이렇다 할 사과도 없이 자리를 유지한다. 선거 주무 장관은 총선승리 건배사를 하고 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경제부총리는 정부기관에 취업압력을 행사해 감사원으로부터 고발당한다. 이게 나라인가 싶다. 도대체 어쩌자고 여기까지 온 걸까.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혁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정국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이를 둘러싼 당내 갈등은 정치에 대한 냉소를 부추기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적어도 그들이 지금 사회정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는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특히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정치는 사회적 약자가 공동체로부터 도태되지 않게 정의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데 기여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1조가 명시한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실현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 정치의 기본사명이다. 진보는 진보의 방식으로, 보수는 보수의 방식으로 이 가치를 실현한다.
세계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상상력으로는 따라잡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다. 정치지형도 빠르게 변화한다. 영국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을 포기하고 산업국유화를 내건 정통좌파 제러미 코빈을 당수로 선택했다. 미국대선에서는 은행 국유화를 내건 50년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을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의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트럼프마저 부자증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시민들의 상상력이 낡은 정치체제를 저만치 앞지르고 있다.
소득 불평등 시대의 한복판에서 공멸을 막기 위한 정치의 잰걸음이 지구촌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여전히 과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부여당은 철지난 성장의 뒷골목을 배회하며 연일 노동자를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OECD는 조세와 복지 정책으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은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더 공정하고 더 부유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또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소득 하위 계층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시대를 뛰어넘는 정치적 상상력, 그것이 빚어낸 ‘신선한 토마토’가 그립다.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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