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침의 나라.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이 유린된 나라.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된 나라.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 광복 70년은 결코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수많은 건국의 역군들, 바로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들의 희생위에 대한민국은 부강한 나라로 거듭났다. 광복 직후 혼란한 국제정치 상황속에서 비극적인 전쟁이 발발했고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다. 전쟁으로 산업기반은 무너졌고 국민들은 희망을 잃은 체 망연자실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은 60년대 아프리카의 케냐만 못한 나라였다. 필리핀과 북한보다 궁핍한 경제 수준의 가난한 국가였다. 정치적으로 극도의 혼란 상태였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국민들의 열망을 주도해 나갔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거듭했고 급기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어느 누구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최빈국에서 불과 30~40년만에 아시아의 신층 강국으로 다시 세계 질서의 중요한 일원으로 우뚝 섰다. G20 회원국가임과 동시에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외교를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중견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AIIB(아시인프라투자은행)의 주요투자국으로 경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영양실조로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젓을 아기에게 물린 애절한 한 어머니의 흐릿한 흑백사진은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광복 70년이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맑고 투명하지만은 않다. 삼성, 현대와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을 품고 있지만 우리의 산업 현장은 불균형과 불평등에 신음하고 있다. 경제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사회적 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다.
한 여론조사전문기관이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했다. 역대 대통령 각각을 평가한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이유로 어김없이 경제발전을 꼽고 있다. 거의 예외가 없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잘한 일로 경제발전이 등장한다. 무항산무항심(無恒産無恒心). 국민들은 잘 먹고 잘 살게 해준 업적을 최고로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박 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1위로 꼽힌 데는 경제계획을 통해 산업화를 이룩한 점이다. 많은 대기업들이 이 시기에 탄생한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만큼 우리 사회의 불균형은 마치 풍선효과처럼 커져 버렸다.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잘 못한 일로 꼽는 공통점은 독재, 독선, 부정, 비리, 부패였다. 어느 대통령도 피해가지 못했다.
국가 최고 지도자로 경제 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데는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34%로 우리 국민들 10명 중 6명 가까이는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보다 신뢰가 낮은 국가는 경제적으로 위기에 처했던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같은 나라였다. 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대한민국이 정부의 신뢰는 확보하지 못했을까. 해답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평가에서 경제적인 부분과 상반되는 정치적 신뢰도는 땅에 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독재, 독선, 비리, 부정, 부패 등 온갖 만연된 사회적 병폐가 국가의 최고 지도자들에 의해서 자행되어 온 탓에 국민들의 믿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OECD 평가에서 정부 신뢰도 1위를 차지한 스위스를 비롯해 상위권에 오른 노르웨이 같은 국가를 보라. 경제적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적인 병폐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국가임을 확인하게 된다. 정부에 대한 불신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신뢰는 평가 대상 OECD 42개 국가 중 뒤에서 4번째였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성적을 받은 콜롬비아는 마약 문제로 골머리를 않는 치안 문제 국가로 알려져 있다. 광복 70년, 어쩌다 대한민국의 현 주소는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일까.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불신에만 그치지 않는다고 하니 더욱 충격적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 있다. 부정과 부패 연루 의혹으로 전직 국회의원이 자살하고 정치인 출신 국무총리는 비리 의혹을 받아 최단명으로 그 자리에서 치욕스럽게 물러났다. 집권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성폭행 혐의로 탈당하고 연일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로마의 몰락은 물질적인 쇄락이 아니었다. 최강군대인 로마군을 제대로 이끌 의욕조차 없는 부패한 로마의 지도자들이 멸망을 자초했다. 늦어도 광복 100주년이 되기 전에는 신뢰가 충만한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소망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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