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사각지대에서 상권 싹쓸이…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시급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유통 재벌, 복합쇼핑몰 속속 출점
명분은 지역경제 활성화, 실상은 지역상권 초토화
2015-08-12 07:00:00 2015-08-12 07:00:00
대기업의 무분별한 골목상권 진출을 막기 위해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 또 다시 허점을 보이면서 유통 재벌들의 상권 독식이 재연되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 등 국내 주요 유통 재벌들은 기존 백화점, 대형마트,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성장 한계와 규제에 부딪혀 복합쇼핑몰(아웃렛 포함)이라는 변형된 수단을 꺼내들었고, 이는 인근 상권을 초토화시키는 블랙홀로 변모하고 있다. 
 
규제가 현실을 따르지 못하는 데다, 정부 또한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정책 기조를 바꾸면서 복합쇼핑몰을 제지할 수단은 전무한 실정이다. 마지노선이었던 여론의 비판마저 시들해졌다. 폐업 등 벼랑 끝으로 내몰린 중소 상인들이 규제 강화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치권의 개정 움직임은 제자리다.
  
 
 
◇규제는 피하고 독식은 그대로  
 
롯데 아웃렛 항동점은 대형마트에서 아웃렛으로 변경이 된 국내 최초 사례다. 대형마트에서 아웃렛으로의 업종 변경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유통산업발전법의 허점을 이용해 업종 변경에 성공했다.
 
의무휴업이나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받는 대형마트와 달리 복합쇼핑몰은 지방자치단체 조례나 상위법인 유통산업발전법 등으로부터 자유롭다. 규제 조항이라 해봤자 기껏해야 ‘출점 제한’이 유일하다. 현행 법규상 대규모 점포는 지자체가 정한 전통상업보존구역으로부터 반경 1km 이내에 출점할 수 없다. 하지만 전통상업보존구역에 일반상가는 포함돼 있지 않는 사각지대가 있다. 여기에다 복합쇼핑몰 상당수가 도심을 벗어난 교외에 위치한 탓에 사실상 출점제한 조치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복합쇼핑몰 입점 단계에서 해당 지자체에 제출되는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도 입점 제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점포 개설자가 스스로 상권영향을 평가·작성, 관할 지자체에 제출하는 탓에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권영향평가서의 경우, 개점 30일 전까지만 제출하도록 돼 있어 정작 민감한 부분들은 누락되기 일쑤다. 일례로 롯데 측은 롯데마트 항동점의 아웃렛 업종 변경과 관련한 상권영향평가서에서 전통상업보존구역인 지하상가를 누락했지만, 업종 변경 허가를 받아내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 같은 법의 맹점은 유통 공룡들이 처한 경영환경과 맞물리면서 복합쇼핑몰 진출을 가속화한다. 신세계는 향후 2년 이내에 서울과 경기, 대전 등에서 6곳 이상 복합쇼핑몰 출점을 계획 중이고, 롯데와 현대백화점도 5곳 이상의 출점을 예정에 두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SSM 등은 과당경쟁으로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고, 그렇다고 새로이 활로를 뚫기에는 지역 상권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손쉽게 수익을 꾀할 수 있는 수단을 두고 굳이 전통 채널을 고집할 까닭이 없다는 게 이들 대기업의 속내다. 물론 이면에는 소비자의 편의성이 있다.
 
◇구호는 지역경제 활성화, 실상은 지역상권 고사
 
문제는 인근 상권이다.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한 규모의 경제에서 상대가 되질 않으면서 중소 자영업자들이 설 자리는 크게 좁아졌다. 유통 재벌들과 해당 지자체는 복합쇼핑몰 입점으로 인한 시너지를 내세우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는 구호일 뿐 수혜는 대기업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 상인들의 매출 하락은 또 다른 소비 침체를 불러오고 이는 결국 지역경제 타격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에 중소 상인들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유통산업발전법 재개정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세 상인들의 폐업 현상이 지역 상권 전체로 도미노화될 수 있다며, 법안 개정을 생존권의 문제로 연결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우선, 복합쇼핑몰 입점 단계에서 제출되는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가 말 그대로 셀프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강제성이 뒤따라한다고 요구한다. 국토·도시계획 심사 역시 성장 위주의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복합쇼핑몰의 무분별한 출점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유통산업발전법 시행규칙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인태연 전국유통상인연합회 공동회장은 "복합쇼핑몰은 입점 단계부터 사실상 규제가 전무한 상태"라며 "도시계획과 연계해 토지용도별로 대형유통점 허가제를 시행하고, 유통산업발전법 시행규칙을 좀 더 세밀화해 지역상권 고사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점포 개설자가 스스로 작성하는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도 지역주민과 인근 자영업자, 행정청이 지정하는 제3의 중립기관이 참여해 객관성을 담보하고, 실행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의 참담함이 전달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유통 재벌들의 복합쇼핑몰 규제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올 7월까지 총 13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조차 통과되지 못했다. 이에 중소 상인들은 또 다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며 국회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부와 여당이 반대를 하면 논의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19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을 통과시켜 중소 상인들과 지역 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도 "해당 상임위에서 좀 더 빠른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은 "형식적인 등록절차가 아닌 독일, 프랑스 같은 도시계획 차원의 '상권영향평가'를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반영하는 등 근본적으로 대형 유통 재벌의 탐욕스런 확장을 규제하는 '허가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택·김상우 기자 theexo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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