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 무용론의 목소리가 거세다.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극복하고 상생을 도모하겠다는 설립 취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를 스스로 포기할 정도로 퇴색했다. 위상도 추락했다. 초대 위원장인 정운찬 전 총리가 물러난 이후 이렇다 할 수장을 만나지 못한 데다, 대통령이 '원수'라는 극한 표현까지 써가며 규제 철폐를 외치면서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태생적 한계도 벗지 못하고 있다. 민간협의체로 출범한 까닭에 주요 업무의 강제력이 약하고, 실질적 예산 대부분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 지원에 의존하고 있어 재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구로구에 위치한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실. /사진=뉴스토마토
◇올해 예산 37% 전경련 부담…"실질적 비중은 70%"
취재팀이 입수한 '동반성장위 운영예산' 자료를 보면, 전경련 등 민간이 지원하는 예산은 올해 기준 21억원으로, 전체 예산 57억2900만원의 36.7%에 해당한다. 운영할 수 있는 실질 예산으로 범위를 좁히면 재계의 비중은 크게 올라간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동반위의 운영과 관련된 예산만 보면 전경련 지원금의 비중이 7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의 최근 5년간 지원 예산은 각각 59억6000만원, 83억1300만원이나, 이는 해당 부처의 위탁사업 명목 등으로 구성돼 온전한 동반위 운영예산이라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재정에서 독립적이지 못하다 보니 정운찬 초대 위원장이 "대기업 돈을 갖다 쓰면서 어떻게 활동하겠느냐"고 지적할 정도다. 김제남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동반위가 전경련 예산에 발목 잡혀 대기업 눈치만 보다가 재지정 미합의 (중기적합)업종 75건에 대해 대책없이 시간만 끌고 있다"고 비판키도 했다.
특히 올해는 전경련이 5년간 100억원을 지원키로 한 마지막 해로, 동반위는 내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다.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정책 방향을 바꿨고, 동반위 또한 정부 예산을 크게 바라지 않고 있다.
안충영 위원장은 "정부 예산에 기대면 동반위가 정부 주도 기구가 돼 버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며 대신 "중견기업과 소상공인을 비롯해 재계에서 재원을 조달하는 캠페인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재계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은 동반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동반위 예산은 철저하게 재계와 분리되어야 한다"며 "동반위 역할은 조직의 크기와 예산이 아닌 경제적 약자 보호"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운찬 사퇴 이후 위상 추락…대통령 의지도 없어
동반위가 처한 위기는 역대 위원장의 변화에서도 발견된다. 초대 위원장은 정운찬 전 총리다. 차기 대선주자 급이 위원장으로 온 데다, 초과이익 공유제 등 이슈화에 성공하며 주목을 끌었다. 정치권과 재계의 반발은 여론을 얻는 반작용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 전 총리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의 담판 끝에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확인했다며 위원장 직을 던지면서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2대 위원장인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강단보다는 온화한 성격의 학자 출신으로,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와 인연이 깊다. 전임자에 비해 중량감이 떨어지면서 이슈를 주도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8월 선임된 3대 안충영 위원장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장이라는 동반성장과는 정반대의 일을 한 바 있어 논란이 됐다.
실제로 정운찬 초대 위원장은 중기적합업종 법제화와 동반위를 대통령 또는 정부 직속 기구로 지정할 것을 주장했으나 2·3대 위원장은 반대하고 있어 대비된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와 연결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위원장 직을 모두 맡은 바 있는 유장희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동반위를 출범시켰으면 좋았을 텐데, 대기업 반발이 만만찮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중기중앙회를 찾았으나 이후 정부로부터 받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간섭도 없었다"고 평가했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정부가 동반위 출범 당시 돈을 대고 법적 근거를 만들어 힘을 실어줘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동반위 출범 때와 대선 과정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이슈가 됐지만, 정부 의지 부족과 불황으로 동반위가 하려던 대·중소기업 협력·상생도 묻혀버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왼쪽)과 김종국 사무총장이 지난 2월24일 서울 서초구 팔래스 호텔에서 열린 '제33차 동반성장위원회'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재벌 입김에 포위 당한 중기적합업종·동반성장지수
동반위의 핵심 사업인 중기적합업종과 동반성장지수도 재벌 입김에 포위 당했다. 동반성장지수의 경우 중소기업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실적 평가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산정되지만, 불공정 거래를 했던 대기업들이 최우수 등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취재팀이 지난해 기준 공정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동반성장지수 최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 19곳 중 5곳이 불공정 하도급 거래,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등으로 과징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 등급의 명칭 또한 실제 행위와 무관하게 이름만 상향 평준화시켜 대기업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등급명은 지난 2012년까지는 '우수-양호-보통-개선' 등 4개였으나, 이듬해부터는 '최우수-우수-양호-보통' 등으로 변경됐다. 최우수가 신설되고 개선은 보통으로 등급이 바뀌면서 상대평가 의미도 퇴색됐다.
무엇보다 초대 위원장이 주장했던 '동반위의 대통령 혹은 정부 직속기구화'와 '중기적합업종 법제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강제력 없는 평가만으로 대·중소기업 간 갑을 관계를 조율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동반위 스스로 중기적합업종 법제화의 칼날을 내려놓으면서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의 불만은 비대해졌다.
합의 과정에도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들어가기 어렵다. 경기지역 한 중소기업 대표는 "동반위 회의에 대기업 대표들이 나온다고 해도 이들은 월급쟁이에 불과해 생존을 걸고 합의에 나서는 우리와는 대화가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공익위원으로 참여하는 교수들도 대기업 사외이사들이라 중소기업 목소리가 끼어들기 어렵다"고 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은 "규제 완화의 광풍 속에서 동반위 역시 깃발을 돌려세우며 주요 대기업을 동반성장 모범사례로 선정하고,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자율적 권고로 정했다"며 "가맹점 간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출점거리 제한의 완화·폐지에도 침묵하는 등 동반성장이라는 간판과는 다르게 재벌 대기업의 편의를 봐주는 역할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김동훈·이순민 기자 donggoo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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