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공안통치의 결론은 레임덕
2015-06-21 09:35:48 2015-06-21 09:35:48
요즘 다시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는 사자성어가 회자된다.
 
어떤 일에 상관하지 않고 모른 체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유체이탈’ ‘아몰랑’도 오불관언과 유사한 뜻으로 사용된다.
 
보수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는 올해 1월13일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두고 "특히 인사쇄신은 오불관언(吾不關焉) 같은 그런 느낌을 좀 받았다"고 했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인적쇄신은 모른 체하고 경제 얘기만 잔뜩 늘어놨다는 뜻이다. 최근 한겨레는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과 비교하면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애면글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오불관언’이라며 한탄했다.
 
오불관언을 검색하면 박경리의 <토지>에 나오는 말이 인용된다. "비겁하다 생각 안 하십니까? 대자대비한 불도에서는 한 생명이 산송장으로 버려져도 오불관언이오?"
 
메르스 사망자가 25명에 이른다.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한다.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받지도 못한다. ‘메르스 이산가족’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 가운데 황교안 총리가 임명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는 환하게 웃었다. 그 표정이 너무 밝았다. 소셜 미디어에는 이 사진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메르스 사태로 국민의 걱정이 한없이 깊은데 그렇게까지 속내를 드러낼 필요가 있느냐는 질타였다. 오불관언이다. 대통령의 오불관언은 재난상황 앞에서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진다. 6월 셋째주 한국갤럽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9%로 급락한 것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초기대응 실패에 따른 당연한 결과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은 ‘썰전’에서 황교안 총리를 “남자 박근혜 같다”고 직설했다. 어쨌든 황교안 총리는 관운 하나는 타고났다. 전임 총리 후보자들을 줄줄이 낙마시켰던 전관예우와 병역면제 의혹 모두를 메르스로 뒤덮인 여론의 틈새를 비집고 총리관저에 입성했다. 국회법 시행령 개정안 거부권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만장일치 몰표를 받은 덕이다. 메르스 사태도 국회법 개정안도 황교안 총리인준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52일의 공백을 깨고 총리가 취임했고 황교안 총리는 메르스 진압을 위한 최전선에서 뛰고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당연한 일이다. 메르스로 인한 경기위축은 국민을 큰 고통 속에 빠뜨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과잉충성자들의 헛발질은 계속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청와대가 국민일보에만 메르스 관련 정부광고를 주지 않는 갑질을 했다거나, 경찰이 총리 임명 하루 만에 세월호 집회를 주도한 ‘4.16연대’를 경찰이 압수수색해 공안정국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사거나, 6.4지방선거 개표방송과 관련해 손석희 아나운서를 소환한다거나, ‘부실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말과 함께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이끈 박원순 서울시장을 소환한다거나 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황교안 총리와 관련해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이후다. 공안정국, 사정정국으로 나라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에다가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을 이끈 사람이니 근거가 없지도 않다. 지지율 급락에 따른 레임덕 우려를 사정정국으로 돌파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여야가 합의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중재한 국회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렇게 되면 정국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냉전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청와대는 재의결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공세를 취할 것이고 그것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의 중심에 황교안 총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석인 법무장관과 법무장관 임명에 따라 위치가 불안정한 검찰총장 인사 문제도 거론된다. 박근혜 정부는 사정라인을 완성해 여의도를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20대 총선에서의 공천 주도권까지 생각한 주도면밀한 계획이 수립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른바 ‘사정카드’ ‘공안카드’가 성공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더구나 황교안 총리는 법무장관 시절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잘못 건드렸다가 초특급 부메랑을 맞은 바 있다. 하물며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권력은 이완되고 총선을 치러야 할 여당 국회의원들조차 대통령을 멀리할 가능성이 크다.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황교안 총리가 성공하려면 이완구 총리의 몰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요컨대 공안통치의 결론은 레임덕이다. 지금 여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재난엔 느리고 공안에만 빠른 정부를 누가 좋아하겠는가. 국정의 기조를 통합과 공감의 확산으로 잡지 않고 사정의 칼날에 의지한다면 집권 후반기는 멈추기조차 어려운 가파른 비탈길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슬로건이었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주어가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국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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