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는 지난 11일 86세대와 청년세대가 한 자리에 모이는 좌담을 열었다. 이상동 컴온정책&문화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맡고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 이원우 미디어펜 기자, 임기웅 인천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86세대는 2015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아픈 현실에 공감했다. 청년세대는 민주화에 온몸을 던진 86세대들의 공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결이 달랐다.
지난 11일 86세대와 청년세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상동 컴온정책&문화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맡고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 이원우 미디어펜 기자, 임기웅 인천청년유니온 정책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민주화 주역에서 대안 없는 기득권으로”
◇이상동 컴온정책&문화연구소 소장
이상동(사회)=87년 6월항쟁의 주역인 86세대는 이제 한국 사회의 허리가 됐다. 제도권에 진입한 86세대는 혁신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기득권으로 올라서면서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음 세대에 기회를 주고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서 세대 갈등도 일으키고 있다. 우선 86세대에 대한 공과부터 이야기해 보자.
권태홍=86세대가 민주화라는 성과를 남긴 건 다들 인정한다. 군부독재를 끝낸 건 큰 공이다. 다만 정치 제도면에서 충분하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경제적으로도 이상은 있었지만, 이를 실현할 만한 비전과 실력이 부족했다. IMF와 금융위기를 맞는 동안 누구도 이를 예견하지 못했다. 대안도 불투명했다.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시장 논리에 빠졌고, 86세대 역시 무력했다. 청년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가 느끼는 고통은 더 커지고 있다. 결국 86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서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기득권의 한 축이 된 점이 과오라고 본다.
신지호=86세대는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당시 운동권은 NL, PD 등 정파에만 관심을 가졌다. 이후에도 이 같은 방법론(틀)으로 세상을 봤다. 그런 시각으로는 현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압축성장을 자랑하는데, 지금은 압축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86세대는 산업화로 혜택을 받은 측면이 있다. 80년대 중후반 3저 호황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취업 문제만 해도 지금 젊은이들처럼 힘들지 않았다. 이전 세대로부터 받은 경제적 성과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현실을 보면 안타깝다. 지금이 경제 침체기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경제적으로 넘겨줄 만한 게 없다.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경제적으로 세대 착취하는 구조”
임기웅=민주화를 일군 86세대의 역할에 대해선 공감한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세대를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부동산이 그렇다. 저임금을 받는 청년들이 가장 많이 지출하는 항목 가운데 하나가 월세다. 부동산을 쥐고 있는 이들은 이제 40~50대인 86세대, 그리고 그 이전 세대다. 세대 간에 물려주기는커녕 착취고리로 엮인 셈이다. 부모가 집을 갖고 있지 않으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학 등록금도 마찬가지다. 빚에 억눌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86세대가 주축이 된 한국 사회는 경제를 보는 시각이 기업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생활 경제에서도 놓친 부분이 많다.
이원우=86세대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던 중요한 여건 가운데 하나가 경제성장이다. 80년대에 접어들며 중공업 육성과 경제 체질 변화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이 이어지면서 국민 의식도 성숙됐다. 86세대 각성에 ‘단지 돈만이 아니라 헌법 조항을 이행해야 한다’는 응답이 나온 것이다. 86세대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볼 수 없다. 정치 경제적으로 성숙된 토양 위에서 86세대가 온몸을 던진 것이다. 86세대는 경제적으로 그들이 맞서 싸운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다. 정치적으로도 상당수는 금배지를 달고 기득권이 됐다. 청년 관점에서 볼 때 86세대는 업적도 많지만 가져간 것도 많은 세대다. 신 전 의원이 물려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는데, 최근 세대 논쟁을 보면 물려줄 생각도 없어 보인다.
“80년대 공식, 통하지 않아”
이상동=지금과 같은 시대에서 청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과 결혼이고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인데, 현재 경제구조에서는 사실상 답이 없다.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80년대 86세대들은 시대적 문제에 저항해 당시 분연히 일어났지만, 지금 청년들은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실천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 정치, 경제, 사회문제에 대한 집단 행동은 보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원우 미디어펜 기자
이원우=그때와 지금은 시대 상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86세대에겐 권위주의 정권이라는 공공의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항하면서 결집력도 강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복잡한 시대다. 80년대가 2·3차 방정식을 풀며 살아가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10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86세대는 당시 ‘근의 공식’이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무시한다.
신지호=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고도성장을 한 일본은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일본이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가는 데 3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실버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나온다. 노년층 표가 선거의 당락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치도 그 세대를 공략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겪은 일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인다. 압축성장을 한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 세대모순의 격화도 그대로 재현될 것이다.
86세대는 지금 청년들에게 사상적으로도 물려줄 게 없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산이 없으니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정도의 위로밖에 못 해준다. 청년들이 스스로 돌파해야 한다. 자신들만의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신적 독립을 할 필요가 있다.
“청년 없는 조직, 지속가능성 없다”
권태홍=물려줄 게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처방은 적절하지 않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만 이젠 아플 틈도 없다. 지금은 청년을 위한 정치적 공간마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 청년 문제가 시급해도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독일은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작었던 때에 이미 청년실업보험을 도입했다.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것보다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는 평가도 나왔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풀고, 사회안전망을 마련할 지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과제이지만, 이를 실현할 정치세력이 없거나 힘이 약한 게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를 내세웠지만, 대책과 비전이 없다. 창조경제에도 콘텐츠가 부족하다.
사실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는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민주화 결과물인 ‘87년 체제’도 제한적 정치제도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지체된 것이 청년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양당이 주도하는 정치질서에선 제도 변화의 한계가 존재한다. 다시 혁명하는 심정으로 정치, 경제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임기웅 인천청년유니온 정책팀장
임기웅=청년실업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스, 스페인 등지에서도 취업이 안 되니까 청년들이 독일 등의 나라로 가려고 한다. 필리핀은 외화벌이가 정책일 정도다. 그런데 청년이 해외로 유출되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곳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중동 나가라고 할 때 의아했다. 예전처럼 못살았을 땐 외화 벌어오는 게 맞지만, 지금은 오히려 불러들여서 경제구조가 잘 돌아가게끔 해야 한다.
벨기에가 청년실업 대책으로 내놓은 ‘로제타 플랜’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고용인원의 3%를 청년으로 채용하는 것이 골자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문제다. 최근 서울시가 청년 조례를 만들면서 공공기관에 청년 고용 의무를 할당했는데, 반발도 적지 않다. 하지만 청년이 그 정도도 없는 조직에 과연 지속가능성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당장 힘드니까 인력 감축에만 매달리는 현실이 슬프다.
신지호=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정년 60세가 시행된다. 이후 전 사업장으로 확대되는데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지만, 자칫하면 세대 간 밥그릇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임금피크제를 연동시킨다는 것만 돼 있지, 제도화돼 있지 못했다.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이 연장되면 청년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줄어든다. 여야 합의로 통과됐는데, 한국판 실버민주주의가 시작됐다고 본다. 로제타 플랜 등 해외 사례는 참고할 만하지만, 그런 제도는 보완적 수단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
◇권태홍 정의당 사무총장
권태홍=청년실업보험이나 고용 정책이 근본적 대책이 아니고 완화적 처방인 것은 맞다. 근본적으로는 산업, 시장 정책이 장기적 대책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낙수효과는 끊기고 만다. 하청 단가가 워낙 적으니까 임금으로 전가한다.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에 돈이 흘러야 하는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야만적이고, 노동시장은 이원화됐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살 공간을 마련하는 등 경제 체제를 종합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 어렵다.
이원우=정치권에서 청년 문제는 의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청년 스스로도 입장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수모를 겪는다. 86세대의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 청년이라는 복잡한 거대 집단을 단순하게 바라본다. 만들어진 직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으로 묘사한다. ‘주인공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86세대의 특성 때문이다. 86세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데에만 익숙하다. 현대사에 큰 획을 긋고 권력까지 잡으면서 특권의식과 시대적 희생양이라는 피해의식을 동시에 갖고 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자신들의 틀에서만 바라본다. 이런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86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준 것도 없고, 앞으로도 줄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86세대는 청년들의 아픈 현실에 공감했고, 청년세대는 민주화에 온몸을 던진 86세대 공을 높게 평가했다. 다만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결이 달랐다.
“여전히 문제는 정치다”
이상동=86세대와 청년세대, 세대갈등 문제가 작지 않은 주제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짧게 정리 부탁한다.
이원우=86세대는 시대적으로 분명 긍정적 역할을 했다. 기성세대가 된 지금 시점에선 청년들이 어떻게 사는지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고민할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20대는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현실적인 세대다. ‘왜 사는가’를 고민할 기회와 여유를 잃었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본인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압축성장을 하며 물질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사회적으로도 그런 풍토가 사라졌다. 86세대가 청년들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임기웅=86세대가 정치, 경제적으로 받은 게 많기 때문에 한국 사회가 그만한 역할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 86세대를 찾아보면 치킨집 사장이 많다. 86세대라고 불리며 의사결정권을 쥐고 있는 특정인들이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얘기다. 청년도 마찬가지다. 계층별로 다르고, 지역별로 다르다. 청년 의제가 다양해지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권태홍=사회가 청년을 방치한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에게 사회 문제를 농축해서 부담을 주는 형국이다. 개인과 가정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지금 같은 현실에선 사회적 비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여전히 문제는 정치다. 사회적 해법을 만드는 게 유일한 길이다. 정치권부터 반성하고 토론하면서 청년 문제를 제도화하고 숨통을 트도록 노력하겠다.
신지호=86세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게 있긴 하다. 바로 빚이다. 그나마 한국 경제가 괜찮다고 평가받은 이유가 재정 건전성 때문이었는데, 그마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미래 세대에 빚 폭탄을 돌리고 있다. 청년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86세대가 전부 해결해줄 수는 없다. 86세대도 이전 세대를 비판하면서 등장하고 스스로 주인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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