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우상호 의원실
-올해가 87년 민주항쟁 28주년이다.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이로써 소회는.
▲80년대 학생운동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이 실현됐다. 당시 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보람이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은 이명박정부의 국정원 대선 개입에서 드러나듯 민주주의가 일부 후퇴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이제는 경제적 분배가 진행돼야 하는데, 그런 점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답답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이를 지키려는 사람의 힘이 약해지면 반드시 후퇴한다. 유럽이나 미국을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시민사회와 정치세력의 힘이 강고할 때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반대로 시민과 정치가 깨어있지 않으면 반드시 그 역작용이 커졌다.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후퇴는 시민사회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다.
민주진보 진영의 책임도 크다. 민주주의는 야당과 시민사회, 진보진영 각각 서로 협력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진보 진영은 끊임없이 분열되고 서로 패권을 차지하려고 다툰다. 이런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학생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나는 좀 늦게 시작했다. 군대 갔다가 87년 선거에서 군이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체험하고 군부독재 현실의 문제점을 느꼈다. 실체적인 경험을 가진 후 학생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관념적으로만 민주주의나 통일운동에 대해 비판하고 접근한 친구들과는 상황이 달랐다. 그래서 더 집요하고 치열하게 운동에 매진한 것 같다.
-이후 진로는 어떻게 결정했나.
▲운동하고 감옥 갔다 와서 10년간 재야활동을 했다. 그때까지는 격려가 많았는데 2000년 이후에 정치권으로 간다니까 우려와 비판이 많았다. 운동권의 순수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실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 제도권에 편입돼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학생운동과 재야활동을 열심히 했기에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막상 와 보니 여의도 정치에 편입된 면도 있고 아직 문제인식을 잃지 않은 점도 있는 것 같다.
-86세대 정치인 개개인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새정치민주연합은 지지도가 낮다.
▲운동권 출신은 사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서 정치권에 들어온 경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 문제에 두루 관심을 가졌고 학생운동을 통해 아젠다를 세팅하는 능력을 키웠다. 또 다양한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타협을 이끌고 국민과 소통해서 특정 정책이나 정치 목표를 달성하는 정치 기획자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본다.
야당 의원들은 개별로는 경쟁력이 있다. 이것은 새누리당에서도 인정한다. 다만 지금 우리 당은 리더십의 한계에 직면했다. 뛰어난 개인들을 조직화했음에도 국민에게 당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새누리당은 우리보다 의원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뭔가 일하는 것처럼 어필하고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뛰어나다. 이 부분은 우리가 해결할 과제다.
-세계적 흐름이 보수화다. 최근 영국도 보수당이 승리했고 일본은 극우 추세다. 국내에서도 새누리당이 독주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이상 진보와 보수, 이분법으로 현실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 진보정치의 위축에 대해 86의 기수로서 느낄 책임감이 있을 것 같다.
▲이 부분을 잘 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영국의 대처 총리 이후 신자유주의가 20년 정도 정치를 지배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시기 세계 경제는 더 나빠졌다. 그래서 포용적 자본주의론이나 소득주의 성장론 등이 경제적 문제의 해결책 힘을 얻는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보면 보수화되고 있다. 국민도 보수 정당에 표를 준다. 경제 문제의 해법은 진보적 정책인데, 왜 보수에 표를 줄까. 보수정당이 진보적 방법론을 활용해 문제를 잘 풀어나가는 것처럼 보여서다. 우리나라도 박근혜 대통령 같은 원조 보수가 경제민주화나 무상복지를 이야기해 선거에서 이겼다. 그래서 나는 보수 정당이 표를 얻었다고 해서 현실문제를 해결할 방법론이 보수적인 해법에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답은 여전히 진보적인 해법에 있다. 우리가 제안한 방법론이 국민적 동의를 얻고 보수 정당에서도 이를 채택했다. 그럴수록 유능한 경제정당과 경제정책은 보수적 해법이 아닌 진보적 해법만이 답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정치가 중도주의나 포퓰리즘으로로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표도 이 점을 강조했다.
다만 선거 때는 승리가 최우선 목표다. 그래서 중도층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진보적 정체성을 포기하고 우클릭하자는 게 아니다. 선거전략 측면에서 중도층을 포용할 수 있다는 스탠스를 보여주고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86들이 제도권에 들어가더니 개혁성을 잃어버렸고 시대적 소명과 제 역할을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을 봐도 진보정치 위기,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 하락 역시 86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우리 세대 정치인들이 방금 지적처럼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희망의 근거가 되지 못한 측면이 분명 있다. 우리가 반성할 방향, 우리가 거듭나야 할 이유다. 여의도 정치권에 와 보니까 정당 안의 작은 블록 하나가 당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고민을 한다.
미국의 민주당을 보면 과거에는 공화당에 매번 졌다. 하지만 빌 클린턴과 앨 고어가 대선 후보가 되니까 민주당이 변하기 시작했고 선거에서 이겼다. 독일도 반전 세대인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가 된 후 제도적인 변화가 생겼다. 우리도 86세대가 당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야 한다. 우리 당은 아직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의 올드한 리더십을 갖고 있다. 86의 개혁적 고민을 현실화려면 리더십 교체가 필요하다.
-야당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게 계파주의다. 86 정치인의 개혁성 후퇴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들이 정책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계파주의에 매몰됐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당은 지난 2012년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 등 진보적 의제를 채택하면서 출범했다. 그 당시 이런 의제를 적극 주장하고 당 출범에 기여한 게 86이다. 앞서 블록 이야기를 꺼냈지만, 우리가 자기 정책 선전을 안 해서 그렇지 우리 당의 색깔을 만드는 데 86이 기여한 측면이 크다. 대놓고 자랑하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은 것 뿐이다.
우리 당에서는 중요한 시기마다 86이 나서서 전환점을 마련한 역사가 있다. 송영길·이광재·안희정은 우리 당에서는 한 번도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되지 못한 곳에 나가 당선됐다. 김영춘 전 의원은 서울 광진구 갑에서 3선이나 했지만 19대 총선에서 부산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이처럼 먼저 행동으로 나섰고 당이 진보적 가치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 이런 것을 평가해주지 않은 것이 아쉽다. 우리가 지적받아야 할 부분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자기를 희생하고 던졌던 역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
다만 86이라는 집단이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줬느냐 물으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인정한다. 계파의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당은 낡은 이슈로 계파끼리 싸우고 있어 문제다. 국민과 국가의 건전한 미래,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보다 친노냐 비노냐 이런 과거의 이슈로 싸운다. 이런 식의 논쟁과 대립은 정말 무의미하다. 당내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싸우지 말고 미래지향적 아젠다로 논쟁해야 한다.
-80년대의 시대정신은 민주화였다. 오늘날 시대정신은 뭔가.
▲남북 간 화해협력과 분단구조 극복이다. 이것 없이는 대한민국이 한 발도 나갈 수 없다. 남북협력이라는 조건 없이 국가 번영을 위한 전략 구상이 가능할까. 단적으로 지금의 분단구조는 끊임없는 전쟁 위협을 유발하고 군비 확장을 강요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노력과 지출만 경제성장으로 돌려도 경제가 살아난다.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구현 논쟁도 의미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남북 간 화해협력이 없다면 이룰 수 없는 과제다.
결국 문제는 대통령이다. 남북협력의 '키'는 대통령이 쥐고 있다.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정치권이나 행정부 차원에서도 추진할 수 있으나 남북협력은 오직 남북평화를 지향하는 정권과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정부는 국가적 아젠다가 없다.
최병호·이순민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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