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폐쇄적 권위주의의 민낯
2015-06-11 10:03:31 2015-06-11 11:06:53
주부들이 등을 돌렸다.
 
한국갤럽 6월 첫 주 정례 여론조사에서 주부들의 박근혜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전주 55%에서 39%로 무려 16%나 빠졌다. 박 대통령의 전체 국정지지도는 전주 40%에서 34%로 6% 폭락했다. 1주일 만에 돌아선 민심 흐름의 중추는 생명을 둘러싼 매우 복잡한 상황에서 보여준 정부의 무능이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국민들을 감염시키는 동안 우리가 본 것은 보수나 진보의 이분법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저 ‘무능’이었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처는 무능이었을 뿐 아니라 그 무능의 대가를 국민에게 전가하는 민낯이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 정점에서 ‘경제에 대한 선제적 조치’를 주문했다. 초기 대응 실패에 대한 사과나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통령은 메르스 환자의 확산에 즈음해 “메르스 초기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론가적 메시지를 던졌다. 국민들은 화났고 메르스는 참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시작될 때, 메르스의 소셜 빅데이터 주간 언급량은 200만건으로 황교안 언급량 10만건의 20배를 넘었다.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가. 적어도 애국과 정직은 보수의 핵심 가치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도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애국심과 정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였다.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황교안 인사청문회는 이런 국민적 신뢰를 배반했다.
 
메르스에 뒤덮인 인사청문회는 무쟁점으로 맥빠지게 진행됐다. 후보자의 병역면제 의혹과 전관예우 이슈는 법무장관 청문회 때와 마찬가지로 대충 넘어갔다. 황교안을 언급한 트위터와 블로그, 뉴스 문서의 전체 연관어 최상위권에 ‘자료’가 올랐을 만큼 청문회 자료제출 여부가 쟁점이 됐다. 황교안 후보자는 모든 국민적 의구심을 뒤로 한 채 메르스 사태에 힘입어 무임승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 메르스 콘트롤타워 대신 공안통치 콘트롤타워를 완성해 가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일관된 전략에 여야 정치권이 굴복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적어도 황교안 인사청문회에서 여의도는 청와대에 완패했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이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뚜렷한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 여의도 정치권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국민 생명에 대한 가슴 깊은 공감 없이 국회법 등만을 밀어붙이려 했기 때문에 청와대의 일관된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은 전세계 언론의 질타를 받을 만큼 엉망이었다. 대통령부터 질병관리본부에 이르기까지 메르스 초기대응은 세계 감염병 대응사상 최악이었고 이는 정부도 인정한 바 있다. 특히 정보통제는 시대착오적이었고 감염확산의 주원인이었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정보통제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전염병 대응 매뉴얼의 맨 앞자리엔 투명한 정보공개가 있었다. 정보통제의 환상에 사로잡힌 정부는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이 같은 정부의 정보통제는 삼성서울병원 등 재벌 병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얕은 속임수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지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또 한 번 평론가적 화법으로 도마에 올랐다. 심지어 이번 감염 확산 사태에 경종을 울린 박원순 서울시장 등 지자체장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까지 했다. 나아가 대통령과 정부는 아직도 스스로의 미흡한 대응 때문에 사망한 9명의 국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박근혜 리더십'의 근본적인 한계는 생명 경시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국가의 잘못된 대응으로 희생된 9명의 희생자에 대해 사과하는 대신, 메르스 사태 속의 경제회복을 언급한 대목은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있다는 원초적 약속을 위배한 것에 다름 아니다.
 
카트리나 모멘트라는 말이 있다. 부시 대통령이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잘못 대응해 지지율이 폭락한 사태를 뜻하는 말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메르스 모멘트’라 할 만한 정치적 충격이 가해졌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청와대와 정부, 여야 정치인들은 생명의 존엄이 갖는 절대적인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세월호를 지나 메르스까지 대한민국 정치는 생명존중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대한 가슴 깊은 존중이 없는 우리시대의 풍경은 씁쓸하다. 메르스 이야기는 쓰나미처럼 넘쳐나지만 메르스로 인해 숨진 사람들을 기억하는 목소리는 얼마나 되는가.
 
폐쇄적 권위주의라는 과거의 레토릭으로 무장한 ‘박근혜 시대’는 생명과 소통이 중시되는 새로운 시대 앞에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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