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컨슈머리포트가 무분별한 기준에 전횡되면서 관련 업계의 속앓이가 가중되고 있다. 동시에 시장의 혼선도 커지는 등 본래 취지와 다른 결과를 낳고 있어 시급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평가기준 자체가 신제품이나 과거 기준으로, 급변하는 기술적 흐름에 반하는 데다 흑백논리 식으로 기준 통과와 기준 미달로 나눠 업계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결과 직후 따로 보도자료를 통해 해명 아닌 해명에 나서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비자들 역시 여기저기 잡음이 터져나오자 혼란만 커졌다. 올바른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컨슈머리포트의 당초 취지가 되레 시장의 혼란을 낳는 역설적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준의 모호성..반발만 불러온다
우선 제품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발표된 에어워셔 성능시험 결과의 경우 당초 취지대로라면 '에어워셔' 이름을 쓰는 제품만으로 실험군을 선정해야 했음에도 삼성전자의 '자연가습청정기'가 이름을 올려 의문을 자아내게 했다. 소비자단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비교제품군으로 봐달라"며 석연치 않은 해명을 남겼다.
또 조사 결과, 삼성 제품만 미세먼지 제거 능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마치 해당 제품만이 모든 기준에 부합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말았다. 삼성전자 제품은 애초에 '에어워셔'라는 이름을 쓰지도 않고 자연가습방식에 헤파필터를 탑재해 다른 제품군보다 두 배에서 세 배가량 가격이 비싸 비교군으로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을 낳았다.
지난달 20일 발표된 한국소비자연맹의 공기청정기 성능비교 조사에서는 '공기청정기'로 분류되는 10개 제품이 대상에 이름을 오렸다. 엉뚱하게도 벤타의 '에어워셔'가 시험대상에 포함됐고, 결과적으로 다른 수입제품과 함께 공기청정기능이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두고 굳이 공기청정기로 광고하지도 않는 '에어워셔'인 벤타가 포함된 것에 의아해 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1등 깎아내리기 의도로 벤타는 받아들였다.
두 사례 모두 성능비교를 위한 조사였다지만 아예 다른 제품군을 비교대상에 끼워넣어 해당 제품을 좋게든, 나쁘게든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자연스레 제품 선정 기준이 모호한 조사로, 이를 통해 의도적으로 특정 업체를 옥죄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벤타의 경우 에어워셔 대명사로 인식되면서 에어워셔 시장을 태동시켰다.
◇한국소비자원의 블랙박스 시험결과 화면 갈무리
지난달 11일 발표된 한국소비자원의 블랙박스 품질비교시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지적됐다. 전방촬영 전용(1CH) 차량용 블랙박스 31개가 대상이었다. 올해 2월부터 실시된 제품조사가 8개월이나 지난 11월이 돼서야 발표됐다. 시의성이 실종되면서 단종된 제품이 있는가 하면 이미 소비자들이 찾지 않는 제품도 포함됐다.
한 소비자는 "정작 쓸만한 최신 제품들이 평가에 안 들어갔을 뿐더러, 좋다고 평가해 놓은 제품조차 지금은 팔리지 않고 사후 지원 등이 끊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전·후방(2CH) 제품이 각광을 받고 있는 시장 추세와 다르게 전방(1CH)제품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한국소비자원은 "2채널 제품이 '대세'이기 때문에 이 조사가 무의미하다는 비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론했다.
비교대상에 선정되지 못한 업체들 사이에서는 뒷말도 이어졌다. 한국소비자원은 온라인 판매 순위로 조사대상을 선정했다. 상대적으로 오프라인 판매에 주력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인지도가 높고 점유율이 높다고 알려진 미동전자통신의 유라이브 등이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블랙박스의 경우 시장점유율조차 명확히 통계되는 않는 게 실상이다.
◇"시험항목 기준, 납득 안돼"
시험항목 기준에 대한 불만도 뒤따랐다. 업체들은 에어워셔 성능비교 시험의 경우, 습식 가습기에 대한 시험 규격이 없는 상태에서 기존(건식가습기) 잣대로 공기청정 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하지만 소비자단체 측은 국내 유일한 성능시험 규격에 의해 진행했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상당 기간 갈등을 빚었다.
◇공기청정기 성능시험 장면(사진=뉴스토마토DB)
8개 제품 중 삼성 제품을 제외한 7개 제품의 미세먼지 및 유해가스 제거능력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의 '자연가습청정기'만 부각됐다. 나머지 에어워셔 업체들은 하나같이 '기준 미달'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로봇청소기 역시 성능평가 시험 기준이 지난 2006년 제정된 해묵은 규격이었다는 지적이다. 카메라를 통해 공간을 확인하고 작동되는 내비게이션 방식을 채택한 제품과 그렇지 않은 랜덤 방식 제품의 차이가 고려되지 않은 채 오히려 가격이 비싼 제품이 기능이 뛰어나다는 식으로 결론이 도출돼 일부 업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표준이 제정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소비자조사가 진행돼 아쉽다"면서 "제품 조사가 좀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시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블랙박스 제품의 경우 정작 소비자에게 필요한 전원차단 장치와 데이터변조 여부 등의 항목이 빠진 것이 아쉽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학계와 시험 관계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검토를 거쳐 시험평가 항목을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업계와 소비자 대표, 학계 관계자 들이 모여 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파악한 뒤 이에 맞는 평가 항목을 선정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유명 블랙박스 동호회의 한 회원은 "공신력을 가진 기관의 테스트라면 실제 사용환경과 그에 따른 소비자의 니즈를 배합했어야 했는데 소비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들은 정작 놓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KS 규격 미달 여부도 중요하지만 실제 스펙대로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가 소비자에게 보다 더 관심사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스펙 여부를 시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 것은 알지만 제품들 대부분 제품사양의 표기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제각각이라 (이를 평가하기에)어려운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또 제품 조사가 길어져 시의성을 놓친것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이 관계자는 "통상 6개월 가량 소요되는 제품조사에 비해 블랙박스 조사가 길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 "소비자와 업계의 관심이 큰 제품인 만큼 절차와 과정상 신중을 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조사 과정에서 조사주체 측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주체기관의 합리적 판단과 중립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 업체 관계자는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민을 위한다는 기존의 취지에서 벗어나 순수성을 잃고 지나치게 이슈 선점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은영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최근 조사들은 동급 제품에 대해 비교 테스트한 것이 아니라 논란이 되는 제품에 대해 소비자가 오인하지 않도록 성능조사를 한 것"이라면서 "기준이 없다면 '기준이 없으므로 성능이 제각각'이라는 결론으로 정부와 관계기관에 기준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그것이 소비자단체가 할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