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사회공헌, '생색' 말고 '경쟁'은 안되나요
2013-11-28 07:00:00 2013-11-28 07:00:00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추운 겨울만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뉴스가 있다. 연탄 배달, 김장김치 나눔, 헌혈 행사 등이 대표적이다. 너도나도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기업이라고 눈도장 찍기 여념 없다.
 
최근 들어 기업들의 사회공헌이 다양해지는 양상이다. 업무 특성을 살린 재능 기부뿐 아니라 이색적인 사회공헌도 늘고 있다.
 
이처럼 기업들이 사회공헌에 적극적인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기업 이미지 재고와 세금 감면은 덤이다. 물론 본질은 경제민주화 광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사회공헌 활동을 하기 전 상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정도는 확인하는 게 선행 요건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간과하는 기업들이 종종 있다. 굳이 좋을 일 하겠다고 해놓고 눈총을 받기도 한다.     
 
식음료 업체들이 사회공헌 일환으로 유통기한이 얼마남지 않은 제품을 복지단체에 대거 기부해 논란이 되고 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활용해 세금도 감면받고 재고떨이까지 한 셈이다. 일종의 사업적 개념이다.
 
이런 일도 있다. A기업이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A기업 관계자들은 반나절 넘게 연탄을 날랐다. 물론 보도자료로 배포할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이후 마을에는 연탄이 수북히 쌓였다. 하지만 한 겨울이 다 지나도록 연탄은 그대로 방치됐다. A기업이 마을을 방문하기 전, B기업이 와서 연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가스보일러를 설치해 주고 연료비마저 지원해 줬기 때문에 연탄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이기적인' 사회공헌이 따로 없다. 
 
사회공헌 목적과 배경이 무엇이든 이런 문화가 조성되는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하다. 사회공헌을 한 후 활동소식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기업에도 무작정 힐난만 할 수 없다. 기쁜 일은 함께 해야 배가 되고,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이왕이면 좋은 일하는 기업의 물건을 찾게 되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문득 궁금해지는 게 하나 있다. 회사 차원에서 한 사회공헌은 궁금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알려주면서 재벌 총수의 배당금이나 기부는 왜 꽁꽁 숨기기만 하는 것일까.
 
모 기업총수는 주식 배당을 통해 매년 수백억원을 따복따복 챙기고 있다. 워런 버핏·빌 게이츠 등 해외 거부들은 해마다 거액을 기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이런 소식과는 무관하다. 국내 총수들이 거액의 사재를 출연한다고 할 경우 필시 사회적 비난과 사법부의 단죄에 처하게 된 경우였다는 점도 엄연한 과거사다.  
 
이에 대해 기업 홍보를 맡고 있는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1년 간 억소리 나는 배당금을 받는다고 해도 회사 차원의 이득이 아닌 개인적인 자금이다. 이 배당금으로 기부를 하는지 불우이웃을 돕는지 본인만 알 수 있으니 손가락질 하지 말라."
 
맞다. 배당금은 주주들의 당연한 권리다. 또 관계자의 말처럼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 총수는 기업의 얼굴이다. 황제경영이란 말이 대변하듯 그 영향력은 기업을 넘나든다. 기업 총수가 이로운 일을 하면 새벽이든 주말이든 보도자료 내기 바쁜 기업이 할 변명은 아니다.  
 
올 초 양현석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통큰 기부가 화제가 됐다. 배당금 전액인 10억7086만원을 불우이웃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양극화까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소식은 국민들의 마음을 흡족케 했다.
 
특히 양 대표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양 대표는 국민들의 사랑 덕분에 회사를 일굴 수 있었기 때문에 첫 배당금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했다. 내로라하는 국내 기업들 중 국민들의 지지와 사랑 없이 성장한 곳이 있을까.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각종 규제로 인해 기업들은 경영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외침이 공허할 만큼 주요 기업들은 돈을 번 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채 곳간에만 자금을 쟁여 놓고 있다.
   
1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이 올 6월 말 기준으로 477조원이라고 한다. 5년 동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자본금 대비 사내 유보 비율은 무려 1668%에 달한다. 물론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대한 대비로도 보이겠지만, 투자를 무기로 규제를 끊임없이 풀려는 이들의 속내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은 김병도 서울대 교수의 말을 마음 깊이 새기면 좋겠다. 김 교수는 27일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그룹 사장단을 대상으로 '존경받는 기업의 조건'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기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존경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혁신의 파괴 효과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혁신가들은 자발적인 기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의 논지다. .
 
사회공헌을 체면을 차리기 위해, 다른 기업이 하는데 우리만 안하면 눈치 보이니까 등의 이유로서가 아니라 '다른 기업보다 우리 기업이 더'라는 경쟁심이 생기는 날이 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이기심만을 보이고 있는 기업들에게 이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냉혹한 추위를 달래줄 인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겨울이다. 지금껏 기업을 지탱해 준 우리사회에 더 많은 온정이 필요해 보인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