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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원전立國의 꿈)③원전 비리 그 후..반성없이 땜질처방 급급
2013-11-06 17:16:47 2013-11-06 17:20:29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올해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의 최대 화제는 원자력발전소 비리였다. 국회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비리와 부정부패를 방치한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을 성토했다. 특히 비리사고 후에도 여전한 정부의 무성의한 대책 마련과 반성을 모르는 태도에 국회와 국민은 분노로 들끓었다.
 
6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등에 확인한 결과, 원전 사고 후 정부 대책은 '급한 불 끄고 보자는 땜질처방'에 불과했다. 5월28일 신고리 원전 1·2호기 등에서 불량부품을 사용된 사실이 적발되자 정부는 ▲비리 관계자 문책 ▲원전 부품구매·시설관리 제도개선 ▲원전 비리 근절대책 마련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염불에 그칠 처지다.
 
◇6월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이 원전 비리 근절대책 마련과 관련 기자 브리핑을 열었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우선 원전 사고 후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적쇄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 직후 김균섭 전 한수원 사장이 관리·감독 소홀의 책임을 지고 면직되자 한수원과 한전기술(052690), 한국원자력연료, 한전KPS(051600) 등 원전 공기업에서는 1직급 이상 전 간부가 사표를 제출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표낸다더니..휴가비를 줬네 "공기업은 파면제도가 없다"
 
그러나 이들 중 현재까지 실제로 사표가 수리된 임직원은 없었다. 오히려 한수원과 한전기술에서는 사표를 낸 간부들이 9월까지 총 93억여원의 급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한전기술은 추석 휴가비 명목으로 임직원에 5400여만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사표 제출은 비난 여론을 피하려는 쇼였던 셈.
 
특히 원전 비리로 해임된 한수원 직원 37명은 한수원에서 24억여원의 퇴직금을 받아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사표 제출은 정말 사직한다는 뜻보다 그만큼 책임을 통감한다는 상징적 의미"라며 "퇴직금도 한수원은 근로기준법과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을 적용받아 파면제도가 없기 때문"이라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상태다.
 
원자력공학 전공자와 원전 이해관계자들끼리 뭉친 '원전 마피아'를 뿌리 뽑지 못한 점도 인적쇄신의 실패 사례다. 정부는 원전 마피아의 부정과 담합을 원전 사고의 핵심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척결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지난 8월 제2기 원안위를 구성하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출신과 전 한전연료 사장을 비상임위원에 참여시켜 논란을 빚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명단(자료=원자력안전위원회)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전 마피아의 각종 비리와 이권 개입에 대해 국민이 분노와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라며 "이런 와중에 업계 경력자를 원전 관리의 핵심인 원안위 위원으로 임명한 것은 앞으로 또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검증한다는 외국 업체가 알고 보니 선박 검증 업체?
 
지난 10월 산업부는 원전 시설관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외국이 제3기관에 국내 원전의 품질검증을 의뢰하겠다며 영국의 로이드 레지스터(Lloyd's Register)社를 검증기관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에 따르면 로이드社는 250년 역사를 가진 세계적 검사기관으로 원전분야 전문인력만 200명을 보유한 곳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제3의 검증기관을 선정하기 위해 다수의 국내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에서 최근 10년간의 각종 검증 수행실적과 수행인력 규모 등을 평가한 결과 로이드社가 모두 만점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엉터리로 드러났다. 민주당 전정희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로이드社가 정부의 평가위원회에 제출한 2005년부터 올해 3월까지의 기기 검증실적은 모두 선박용 기기에 대한 시험인 것으로로 밝혀졌다. 원전과 무관한 기술시험 실적을 인정받은 것으로 사실상 로이드社는 원전 검증 자격이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로이드社는 내환경검증(EQ: Environment Qualification) 실적으로 제출한 주요 형식승인 시험의 기술사양에는 육안검사나 압력시험 등만 포함됐고 가장 중요한 내진검증과 극한의 환경에서 기기의 성능을 확인하는 LOCA(Loss of Coolant Accident) 시험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이어 "아무리 단순한 재검증 업무라도 원전과 원자력 기기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술역량과 오랜 경험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내진검증과 LOCA(Loss of Coolant Accident) 시험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업체가 어떻게 국내 모든 원전을 재검증하겠다는 것인지 납득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 로이드社가 꾸릴 '제3기관 전담팀' 34명 중 해외인력은 5명이고 나머지는 한수원 협력업체의 국내 직원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증기관만 외국업체고 사실상 검증은 국내 인력으로 충당하는 것. 결국 또 원전 마피아 논란을 일으키고 애초 정부가 주장한 검증의 투명성과 객관성 보장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꼴이됐다.
 
◇원전 비리 근절대책 법제화하고 비리 관련자 처벌 수위 높여야
 
원전 비리와 고장 은 지난 1978년 고리 원전1호기가 처음 도입된 후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매번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고 관련자를 문책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더 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전 사고 대책이 기본적으로 정부와 원전업계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원전의 안정성과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해관계에서 분리된 제3자의 입장에서 원전 관련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뜻. 실제로 올해 정부가 발표한 '원전비리 재발방지대책' 역시 국무조정실과 산업부, 원안위 등 원전 관계기관이 참여해 작성했다. 단기적인 효과는 거두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우려가 크다.
 
◇원자력발전소 비리 사고 후 정부가 추진한 원전 비리 재발방지 대책 추진결과(자료=산업통상자원부)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원전 전문가가 워낙 적고 부품 시장도 좁은데다 원전이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라 근본적으로 끼리끼리 문화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며 "이런 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원전 비리를 완벽하게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땜질식 대책보다는 관련 법을 제정하고 상시적인 감독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원전 비리를 저지른 관련자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은 "원전 납품비리와 금품수수로 국민들이 전력난을 감수했지만 한수원 직원은 퇴직금까지 받았다"며 "모든 범죄 행위에 대해 엄격한 처벌과 배상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인 근절 노력이 필요하다"고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는 원전 부품 품질시험과 검증기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문인증 관리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8월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원전 비리를 근본적으로 없애고 정부가 미처 손 쓰지 못하는 곳에서의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원전사업자 관리·감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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