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원전立國의 꿈)①원전비리 시작과 끝..불량부품에서 권력게이트까지
입력 : 2013-11-04 19:04:37 수정 : 2013-11-04 19:08:29
[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 민·관 워킹그룹 정책제안'에 따르면 정부는 203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비중을 20%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5년전 1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할 당시 원전 비중을 41%까지 늘리겠다던 계획에서 크게 후퇴한 것. 정부의 '원전立國' 구상은 원전 납품비리와 동일본 방사능 유출 등으로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부족한 지하자원과 낮은 자주개발률 등을 따지면 원전만한 대안도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올해 일어난 원전비리의 원인과 재발방지 등을 위한 방안을 찾고 원전이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다시금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원전 불량부품에서 시작해 권력형 부정부패로까지 확대된 원전비리가 드러난지 반년이 지났다. 불량부품 때문에 가동을 멈췄던 원전은 현재 대부분 정상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비리 연루자 등에 대한 검찰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고, 한국수력원자력은 불량부품을 납품한 JS전선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원전비리' 문제는 진행형이다.
 
원전비리의 악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 건 지난 5월10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접수된 1건의 제보 때문이다. 신고리 원전1·2호기 건설 공사중이던 지난 2008년부터 JS전선(005560)이 불량 케이블을 납품했고 케이블 성능을 점검하는 새한TEP가 점검 결과를 위조했다는 것이 제보의 주된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부품 납품과 점검 과정을 관리·감독할 한수원 직원까지 뒷돈을 받고 이를 눈감아 준 것으로 드러났다.
 
◇5월28일 불량부품을 사용한 사실이 적발돼 가동을 멈춘 신고리 원전1·2호기(사진=뉴스토마토)
 
문제가 된 JS전선의 케이블은 특정 온도와 습도, 압력을 견디는지 시험하는 내환경검증(EQ: Environment Qualification)에서 탈락했지만 새한TEP 데이터가 데이터를 조작해 원전부품으로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케이블이 원자로 온도와 압력을 못 견뎌 원전이 폭발이라도 하면 대형 참사가 발생할 일이지만 업체와 한수원의 조직적 은폐로 무려 5년이 넘도록 이같은 사실은 감춰져왔다.
 
정부의 대응도 미지근했다. 정부는 원안위 제보 접수후 20여일이나 지난 5월28일에야 사건의 개요를 발표했다. 자체 진상조사를 했다지만 국민 비난을 피하려고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한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불량부품을 사용한 원전은 안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의 운전을 정지시켰다.
 
◇5월2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과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발생한 원전 납품비리 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사진=산업통상자원부)
 
또 "4개월 내 부품을 교체하고 정비를 마치겠다"며 "성능 조작에 가담한 관계자를 형사고발과 손해배상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원전 비리에 대해 원인 규명과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나섰지만 원전을 갑자기 중단하면서 발생한 200만㎾의 전력 공백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왔다.
 
◇원전 비리 검찰조사 시작..권력형 부정부패 수사까지 확대
 
같은 날 한수원은 JS전선과 새한TEP의 전·현직 임직원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 역시 부산 동부지청에 '원전비리 수사단'을 설치하고 전면적인 원전 비리 조사에 들어갔으며 9월 말까지 143명을 기소하고 이 가운데 29명이나 구속했다. 지난 국정감사 때 새누리당 정수성 의원이 이를 두고 "건국 이래 최대 비리사건"이라고 평할 정도.
 
검찰 조사에 따라 한수원과 JS전선, 등은 물론 또다른 납품업체인 현대중공업(009540)과 소모성자재(MRO) 업체 관계자도 구속됐으며 원전 비리 브로커인 전 국정원 직원 윤모씨와 전 서울시 의원 이모씨도 철창신세를 졌다. 특히 수사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지금의 산업부) 차관까지 이어지며 권력게이트로까지 이어졌다.
 
박 전 차관이 검찰에 소환된 것은 지난 8월27일. 박 전 차관은 이미 이명박 대통령 당시 민간인 불법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지만 원전 비리를 수사하던 검찰에 의해 원전 청탁과 관련 5700만원의 뇌물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차관은 2010년 한국정수공업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설비와 관련 브로커에게 5000만원을 받았고, 김종신 전 한수원 사장에도 7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MB정권의 실세인 영포라인의 핵심이므로 원전 관련 뇌물은 더 있을 것이며 이런 돈은 영포라인의 비자금으로 쓰였으리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러나 검찰은 박영준 전 차관을 기소하는데 그쳤을 뿐 당시 지경부 장관인 최중경 전 장관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까지는 수사를 넓히지 못했다. 특히 검찰은 두 사람에게 청탁과 금품 로비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소환 조사나 참고인 조사를 벌이지 않아 반쪽수사, 이상득 봐주기 논란까지 일었다.
 
◇불량부품 납품에서 시작된 원전 비리가 권력형 비리로까지 이어지는 의혹의 한 가운데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상득 전 국회의원(왼쪽부터)(사진=뉴스토마토)
 
이에 대해 에너지정의행동 관계자는 "안전과 직결된 불량부품을 숨겨주는 내부의 강력한 조직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전면적인 재수사를 통해 원전 비리의 뿌리를 밝혀야 한다"며 "특별 검사제 등 원전 비리 사건 전체에 대한 재수사를 진행하고 국회 차원에서도 국정조사를 통한 강도 높은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전 부품 전수조사 후 원전 재가동..원전 불신과 유착고리 여전
 
원전 비리 후 정부의 자체조사 결과 한울 원전 5·6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3·4호기 등에서도 JS전선의 불량 케이블이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불량부품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넉달 넘게 부품을 전수조사해 현재 운전 중인 원전 20기의 품질서류 2만3000여건 중에서 277건의 서류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원전 부품 전수조사 결과(자료=산업통상자원부)
 
또 건설 중인 원전 5기와 운전을 멈춘 3기의 품질서류 총 27만5000건 중에서는 21만 8000건에 대해 조사를 마쳤으며 정부는 위조로 밝혀진 부품에 대해서는 모두 교체하거나 안전성 평가를 다시 할 방침이다. 4개월 전에는 23기의 원전 중 절반 가까이가 멈췄지만 현재는 예방정비 등으로 운전을 멈춘 원전을 제외한 대부분이 정상 가동 중이다.
 
그러나 원전의 안정성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 원전이 도입된 후 또 어떤 비리가 있었는지 모르는 데다 최근 5년 동안 원전 관련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최근 부품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은 보조기자재의 품질확인이 미흡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으로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전 마피아 유착 관계도(자료=뉴스토마토)
 
원전 비리의 핵심으로 불렸던 '원전마피아' 근절도 과제다. 원전 안전을 책임지는 원안위부터 시설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한수원과 원전 기술성능을 점검하는 한국원자력기술, 한전KPS(051600) 등의 주요 임직원이 원자력공학 전공자과 관련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돼 감시와 견제가 사라지고 담합과 부패 가능성이 짙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
 
이에 대해 민주당 전순옥 의원은 "원전 비리 후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산업부나 원안위, 한수원 등 원전 마피아로 통칭되는 원전 이해관계자들의 손안에서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감시와 견제가 절대 불가능하다"며 "원전 비리를 근절하려면 원전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독립한 제3의 감시·감독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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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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