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전(前) 공정거래위원장·부위원장, 前 서울지방국세청장, 前 검찰총장, 前 법무장관·차관, 前 방통위 부위원장..'
세상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감' 잡았을 것이다. 그렇다. 주총 시즌이다.
주총 시즌이 다가오면서 또 다시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내로라 하는 고위직 공무원들이 올해 주요기업의 신규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엔 어느 때보다 기업들의 몸이 달아 올랐다. 경제민주화 열풍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본래 사외이사란 지식이나 경험을 갖춘 외부인이 기업의 이사회에 의무적으로 참석해 경영 활동을 감시하고 조언을 구하는 자리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논의로 대기업에 대한 제재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대관업무를 원할하게 수행하는데 요긴하고, 기업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고위 공무원 출신들에 더욱 목말라 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기업과 이해관계에 얽힌 전문인들도 기업의 사외이사로의 '부름'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기업집단 상장사 사외이사의 23%가 계열사 출신이나 소송대리 및 법률자문회사 출신, 채권단 등 기업과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 애초 기업에 대한 조사나 법률자문시 잘(?)봐준 인사에 대한 보은성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많다.
기업 경영 감시활동이라는 당초 취지도 빛을 바랬다. 고위관리 출신 및 이해 관계자였던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에 참석해 거의 모든 안건에 '가결'표를 던지는 거수기로 전락했다.
인선을 위한 인사청문회에서 사외이사 시절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 이 될만큼 식상한 얘기가 돼버렸다.
기업이 겨우 회의 몇 번 참석하는 이들에게 수 천만원이나 되는 연봉을 지급하고 단순히 조언과 감시를 바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제재에 불이익을 덜 받으려는 일종의 '보험'과 '방패'의 성격이다. '반칙'이다.
최근 정운찬 동방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 장학생"이라 꼬집을 정도로 관가에서 퇴직하기도 전에 기업으로의 전직을 꿈꿔 줄을 서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부에 해당되는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고위 관료도 낯이 후끈 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기업은 그저 학계에 명망있는 전문인을 영입한 것이라 항변하지만, 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사실 바꿔 생각해 보면 정부가 '사외이사제도'를 통해 기업이 합법적으로 고위관리 및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맺도록 해준 셈이다.
사외이사 구성원에 소액주주를 참여시키거나 고위관리 출신 인사 영입에 제한을 두는 등의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횡포를 막고 올바른 경제질서를 정립하자는 '동반성장'이 시대의 화두다.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의 실현도 요원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엄청난 고가의 '반칙 플레이어'를 고용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 정도의 수준은 되지 않았는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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