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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저널리즘 활짝, <두 개의 문> 21일 개봉
강풀의 <26년>, 김성재의 <야만의 언론> 등 줄줄이 대기
2012-06-20 15:29:31 2012-06-20 16:20:09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지난해 9월 소설가 공지영씨의 작품을 영화화한 <도가니>가 개봉되자 전국이 들썩였다.
 
광주의 장애인학교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세상이 외면했던 '진실'을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영화가 개봉된지 불과 두 달이 채 안되어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도가니법'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이어 올해 1월에는 영화 <부러진 화살>이 개봉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학입시에서 수학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걸 지적한 김명호 전 교수의 법정투쟁을 기록한 작가 서형씨의 <부러진 화살>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흥행돌풍은 물론이고 불신에 직면한 사법부는 시민들과의 대화에 나서는 등 진화에 부심했다. 
 
◇무비 저널리즘(Movie Journalism) 시대 활짝
 
그야말로 '무비 저널리즘(Movie Journalism)' 시대가 활짝 꽃피고 있다.
 
전통적으로 저널리즘은 신문과 방송의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시대의 아픔과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는 몫은 언론에게 주어진 책무였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오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며 국민들이 알아야 할 진실을 감추기도 했고, 외면하기도 했다. 때로는 진실을 침소봉대하기도 했다.
 
정치권력을 가진 청와대와 국회, 사법부에 관한 진실, 돈 많은 재벌에 관련된 진실, 이들과 유착된 거대한 사학재단과 세속화된 종교재단에 관련된 진실은 늘 어둠 저 너머에 있기 마련이었고, 이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야 할 언론의 창은 흐릿하기 일쑤였다.
 
영화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은 사실(fact)과 가공(fiction)이 뒤섞여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출발은 사실이라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기능도 충분히 수행하고 있다.
 
기존 매체들이 외면하거나 간과한 부분을 속속들이 세상에 알려냈다는 점에서 '대안언론'이라는 명칭을 붙여도 충분하다.
 
그동안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다큐영화가 제작되었지만 일반 시민들과의 거리는 다소 멀었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 이후 흐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보는,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치가 남아 있는 독립영화가 아니라, 개봉관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중영화'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용산 참사 다룬 <두 개의 문> 21일 개봉
 
이같은 흐름에 힘입어 지난 2009년 1월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를 스크린에 담은 <두 개의 문>이 21일 개봉된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망루에 오른지 25시간만에 시신이 되어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불법폭력시위자가 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고 법원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전과자가 된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두 개의 문> 부제는 <용산 다큐멘터리>다.
 
용산 참사를 그린 영화는 이미 4개나 있다.
 
5.18 광주민주항쟁에서의 수많은 죽음과 6월 항쟁 당시 이한열 열사의 죽음 등 대한민국 역사의 중요한 대목마다 등장하는 죽음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풀어낸 <용산>,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철거민 3명의 삶을 통해 국가 폭력을 고발하고 있는 <마이 스윗 홈-국가는 폭력이다>, 용산참사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여전히 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을 지키고 있는 23명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용산 남일당 이야기>, 사건 이후 355일간의 투쟁을 기록한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영화들은 각종 다큐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가능성을 보였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역사의 기록으로만 남았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은 지난해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무비 저널리즘'의 대중화에 힘입어 성공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에서는 단체관람을 추진하자는 목소리가 불어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연예인 팬클럽인 JYJ팬클럽에서 단체관람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되기 한 달전부터 꾸준히 SNS를 통해 홍보가 진행되면서 높은 인지도를 얻고 있다.
 
덕분에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영화관은 물론이고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등 대중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에서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특히 SNS에서는 JYJ 팬클럽처럼 단체관람을 추진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화를 흥행시켜야 더 많은 개봉관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두 개의 문>이 과연 <도가니>와 <부러진 화살>처럼 광범위한 대중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이 주목된다.
 
◇강풀의 <26년>과 김성재의 <야만의 언론>도 가을에 개봉 
 
지난해 가을부터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는 '무비 저널리즘'은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도가니>는 사학재단의 횡포에 눈감은 국가권력을, <부러진 화살>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상징되는 한국의 사법부와 검찰을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21일 개봉되는 <두 개의 문>은 행정부와 사법부 등 총체적인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서 지난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수백명을 학살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강풀씨의 작품 <26년>도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전 재산 29만원에 불과하다는 전씨가 자신의 모교인 대구공고에서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도 영화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전씨는 이미 골프를 치러가는 과정에서 경찰의 경호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서 각종 경호와 예우에 관한 법률을 바꾸기로 했고, 미납된 추징액을 환수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도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씨의 행적은 자칫 영화화에 실패할 뻔 했던 <26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26년>은 지난 2006년 4월10일부터 같은 해 9월 28일까지 미디어다음에 연재한 만화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 있은 지 26년 후 당시 계엄군으로 참가해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여야 했던 대기업 회장 김갑세가 당시에 죽어간 광주시민의 자녀들과 규합하여 전두환을 암살하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만화 <26년>은 영화제작사 청어람에서 판권을 구입해 지난 2008년 영화로 제작하려 했지만 투자자들이 촬영 시작 열흘 전에 돌연 투자를 철회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이에 청어람은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아 영화를 제작하기로 하고, 지난해 2월 오픈한 '굿펀팅(www.goodfunding.net)'을 통해 투자금을 모집했다. 하지만 10억원을 목표로 한 펀딩은 총 3억8446만원을 모으는 데 그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는 예정대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가수 이승환씨 등이 영화 제작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등 이미 진구, 슬옹, 한혜진씨 등 출연진도 확정돼 제작에 들어갔다. 11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굿펀딩을 통해 영화화에 성공한 케이스도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로 상징되는 한국의 보수 언론의 폭력적인 기사쓰기를 고발하는 영화 <야만의 언론>이 바로 그것이다.
 
<야만의 언론>은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김성재씨가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영화화한다. 기존 영화들이 대부분 국가의 폭력을 다뤘다면, <야만의 언론>은 제4의 권력으로 불리우는 언론권력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한국 영화에서 언론권력을 다룬 첫번째 영화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에서는 언론을 비판하는 것 역시 금기시되어 왔다. 언론의 보복은 익히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조차도 언론과의 전면전을 마다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 언론권력 앞에 무릎 꿇거나 타협으로 미봉하는 경우가 대분이다.
 
이런 한국적 현실을 놓고 볼 때 <야만의 언론>은 '위험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저서 <청춘의 독서>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독일의 거대 언론사인 <디 벨트>의 횡포를 고발한 소설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아직 언론권력의 폭력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이나 다큐가 존재하지 않는다.
 
김성재 전 행정관의 <야만의 언론>은 이런 측면에서 한국 언론의 폭력성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영화도 다큐영화로 제작된다.
 
이 영화에는 정연주 전 KBS사장,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배우 명계남씨 등이 등장해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한국 언론권력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야만의 언론 예고편. 버튼을 누르면 2분 정도 분량의 예고편을 볼 수 있다) 
 
제작비는 굿펀딩을 통해 총 3000만원을 목표로 40일간 모금을 진행한 결과 총 656명이 참여해 3473만원이 모여 성공적으로 끝났다. 김 전 행정관의 계좌로 직접 들어온 돈까지 포함하면 40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4000만원으로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빠듯하지만 제작비로 충당하고 나면 마케팅에 필요한 돈은 여전히 없다.
 
김 전 행정관은 "굿펀딩을 통한 모금은 일단 끝났지만, 사실 퀄러티 높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여전히 돈이 모자란다"며 "향후 마케팅 등에 필요한 자금 등을 고려하면 1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일단 영화를 만들면서 고민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예산의 다큐영화이지만 개봉관에 상영할 예정"이라며 "조중동이 두려워서 개봉관들이 영화 상영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겠지만, 일단 문을 두드려볼 생각"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야만의 언론>은 제작기간을 3개월 정도로 잡고 있어 7월부터 시작할 경우 10월말이나 11월초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김 전 행정관은 "기존의 언론은 주로 방송과 신문을 지칭했다"며 "하지만 영화도 충분히 저널리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여러 영화가 증명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화나 만화, 플래시 등 다양한 형태의 컨텐츠가 저널리즘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가니>로 촉발된 '무비저널리즘'의 대중화가 과연 저예산 독립영화에게도 그 곁을 내줄 것인지 여부는 21일 개봉되는 <두 개의 문>, 그리고 올 가을에 개봉되는 <야만의 언론>이 얼마나 성공할 것인지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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