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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개원 첫날, 재계 부름에 '달려가는' 의원들
2012-05-31 14:09:19 2012-05-31 14:09:53
[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5월30일.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개원 첫날, 여야 의원들이 한자리에 총출동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이른바 재계를 대변하는 경제5단체가 주최한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리셉션' 자리였다.
 
국회 임기 첫날 여야 의원들이 재계와 공식 상견례를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이한구 원내대표, 박지원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원내대표 겸임), 정세균 상임고문 등 여야를 대표하는 얼굴들이 속속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중진, 초선 가리지 않고 참석자만 8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재계와의 첫 만남에 집중된 여론을 의식한 듯 "양극화 등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재계의 적극적 노력과 희생"을 당부했지만, 이는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뿐이었다.
 
◇(왼쪽부터)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0일 열린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리셉션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무대 아래에선 삼성·현대차·SK·GS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 사장들과의 인사에 여념이 없었다. 악수와 웃음, 건배가 이어졌다. 중진 의원들은 안면 있는 경영진을 초선에게 소개시켜주며 으쓱해했고, 일부에선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이동해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기업인들은 행사 내내 의원들에게 머리를 조아렸고, 특히 제1야당을 이끄는 박지원 비대위원장 주변은 눈도장을 찍으려는 재계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시간을 내줘서 영광"이라는 말에 박 위원장은 함박웃음으로 화답하며 친밀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행사장 어디에서도 19대 국회가 기치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상생'은 없었다. 그저 사적 친분을 쌓기에 바쁜 교류의 장(場)이었다. 인사는 친분으로 이어지고, 친분은 후원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정-경 관계'의 단면이었다.
 
단순 후원에 그친다면 모를까, 후원을 통해 두터워진 친소관계가 의정활동에 영향을 미칠 여지를 열어 둔다는 면에서 유착(癒着)의 위험도는 한층 커졌다. 정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자본과의 결탁' 금기가 19대 국회 임기 첫날 흔들린 것이다.
 
◇30일 열린 제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축하리셉션에서 국회의원 및 재계 인사들이 축배를 들고 있다.
 
물론 참석 의원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의정에 반영한다는 면에서 오늘 만남을 나쁘게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재계도 어엿한 이해당사자로서 한국사회의 한 축이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여론의 의심 어린 눈초리는 쉽게 거둬지질 않았다.
 
상충된 이해로 원(院) 구성도 못한 상황에서 재계의 초청엔 한걸음에 달려왔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일각에서는 19대 국회가 개원 첫날 있어야 할 자리는 재계와의 만찬이 아닌 언론 파업 또는 22명의 희생이 빚어진 쌍용차 현장이었어야 한다는 매서운 질타도 제기됐다.
 
때문인지 당초 참석하기로 한 의원들 중 상당수는 이날 행사장을 찾지 않았다. 한 불참자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 초선 의원은 "무턱대고 응한 내 생각이 짧았다"고 말했다.
 
비판은 정치권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기다렸다는 듯 민의의 대변인들을 모시는(?) 재계의 발빠른 움직임에 혀를 차는 소리도 이어졌다. 로비의 정석 플레이를 보여준 경제5단체에 대한 극찬(?)도 뒤따랐다.
 
양적 팽창 대신 질적 향상,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주문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입법권의 공세 수위를 낮추기 위한 화려한 몸부림만 있었을 뿐이다.
 
서로 겨눠야 할 창끝을 감추고 신경전을 벌일 거라는 언론의 당초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5월30일, 19대 국회를 짊어진 여야 지도부와 국가경제의 근간이라 자처하는 재계가 보여준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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