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대학교 졸업생의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50%가 실업자, 그 중 적지 않은 수는 신용불량자가 된다. 요즘엔 앞글자만 따서 '청년실신'이라고 부른다.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해도 경쟁률은 52:1이 넘는다. 경쟁에서 낙마한 청년들은 성공의 꿈을 쫓아 충분한 준비도 없이 창업을 뛰어든다. 이런 사람들의 70%는 3년이 안돼 전부 파산한다.
빚만 잔뜩 지고 입사한 중소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대기업 거래처가 반영해주지 않아 물건을 납품해도 계속 적자상태인 것이다. 월급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편 일상은 어떤가? 학자금대출 원리금은 계속 빠져 나가는데 월세는 계속 오르고 있다. 전세은 10년전보다 50%가 넘게 뛰어 어림도 없고, 결혼은 커녕 당장의 생계도 불분명하다. 몸이라도 아프지 않은게 다행이다.
우리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의 암담한 미래에 질려 있을 무렵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가?'
장하준 교수의 말대로 '난마(亂麻)'처럼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한국 경제는 우리가 겪고 있는 불행 근원에 대해 쉽게 해답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재벌을 때려잡자고 하고, 누구는 복지국가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어떤 선택이 필요한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부키, 장하준)는 한국경제의 '선택'에 대한 책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 드러난 문제는 명약관화하다. 이제 논의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적 수준으로 넘어가야 할 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판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
◇ "창업 안전망이 성공의 요람이다"
창업이 쉽지 않은건 우리나라만의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도 창업 5년 후에 살아남는 기업이 10퍼센트에 못미친다. 많은 창업자가 실패한다는 의미다.
장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창업 여건이 유럽의 복지국가들과의 가장 큰 차이는 창업의 실패가 자칫 '인생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국가가 정책적으로 그 책임을 나눠진다는 차이가 있다.
벤처의 요람이라는 실리콘 밸리도 미국 산업정책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미국은 산업 정책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실리콘 밸리 역시 정부 돈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추구하는 '혁신적 기업가 정신'도 미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키워왔다. 잔여적 복지수준에 머문 희박한 안전망에 때문에 이같은 혁신적 기업 활동도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만 해도 미국 일반 노동자와 최고 경영자의 연봉 차이가 30~40배였는데, 지금은 300~400배에 이른다. 이런 격차는 IT 붐, 벤처 붐 이후 더 심화됐다. 지난 30년 동안 신기술과 지식 경제 바람을 타고 창업 붐이 일긴 했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구든 사업에 실패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과감하게 모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창의적 기업가를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가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용복지가 곧 국가 경제의 생산성이다"
책은 또 한국 경제의 성장과 산업 고도화를 바란다면 노동자들의 삶을 공적으로 보장하는 장치, 즉 복지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가령 노동자가 실직한다고 해도 큰 문제없이 생활을 꾸려갈 수 있는 수준의 실업수당은 기본이고, 더 중요하게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사양 산업에서 방출되는 실직자들이 새롭게 고도화된 산업에서 일할 수있도록 하는 전직 훈련도 제공되어야 한다.
그 비용도 실직자 본인은 감당하기 힘드니만큼 복지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재취업 교육을 시켜서 다른 회사나 산업으로 이어 주는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이다.
복지논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는 바로 '경제성' '생산성'의 문제다. 하지만 저자는 "복지가 반(反)경제적이고, 반(反)생산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반문한다.
만약 그렇게 복지가 나쁘다면 스웨덴과 핀란드의 경제 성장률이 제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과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스웨덴과 핀란드는 국민소득 전체에서 복지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의 2배 반이나 되는 나라들인데 말이다.
더욱이 지금 같은 글로벌 금융 위기 시대에 유럽에서 복지 지출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는 그리스는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복지가 가장 발달한 스웨덴은 성장률이 3퍼센트 내외에 이르고 있다. 선진국들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따로 생각하는데, 저희는 "복지가 경제 민주화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복지(정책)은 복지(정책)대로 하고, 경제 민주화는 경제 민주화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복지논의, 제대로 하자!"
저자가 말하듯 우리가 복지 논의를 제대로 하려면 복지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에서는 복지 정책으로 겨우 담세율을 20%에서 21%로 올리겠다는 공약들을 보면 쓴 웃음이 나올만도 하다. 즉 완전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걷어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누어주는 것'으로 복지를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미국식의 선별적 복지만을 한정시켜 의미한다. 이와 달리 장 교수는 보편적 복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공동구매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즉 누구나 필요한 육아, 교육, 의료, 노후대비, 재교육 등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개인이 저축하고 개인이 보험을 들어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러한 부분을 온 국민이 공동구매를 해서 가격을 낮추자는 뜻이다.
1930년대 스웨덴도 사실상 지금과 같은 복지국가로 성장하는데 반세기가 소요됐다. 당시의 스웨덴은 소득세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척박한 토양의 국가였다. 이렇듯 꿈이나 비전의 시작은 늘상 불가능해보인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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