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 '사옥 빌딩' 잔혹사
라이벌 보다 무조건 높게
공들여 놓고도 지금은 셋방살이
2011-07-18 16:50:26 2011-07-18 16:53:43
[뉴스토마토 황상욱기자] 본격적인 한여름 무더위가 시작된 7월의 여의도.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이곳도 불볕 더위를 피해가지는 못한다.
 
지난 1979년 15층 규모의 한국거래소(옛 증권거래소) 건물이 완성되며 금융 중심지로 조성되기 시작한 서울 여의도 증권타운은 한여름 무더위속에도 굳건히 서있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다사다난한 역사를 지냈다. 20~30층 규모의 증권사 빌딩이 즐비하게 늘어서 금융투자업의 본거지로 여겨지지만 그 뒤에는 여러 애뜻한 사연들이 녹아있는 것.
 
◆ 셋방살이 신세..내 집 돌려주오
 
지난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2000년대 초반 버블 붕괴, 2000년대 후반 인수합병(M&A) 러시를 겪으며 상당수 증권사들이 집을 팔았다.
 
유진투자증권(001200)은 지난 2004년 독일계 자본에 여의도 사옥을 매각했다. 독일 데카방크의 자회사인 데카 이모빌리엔 인베스트먼트는 1000억원 정도에 이 빌딩을 매입했다가 지난해 행정공제회에 1800억원 정도에 되팔았다. 데카는 매입 5년 만에 800억원 이상의 차익을 남겼다.
 
하이투자증권(옛 CJ투자증권)은 CJ 당시부터 이미 셋방살이를 시작해 벌써 수년째 남의 집 신세다.
 
하나대투증권은 금융감독원 옆 본사 건물을 지난해 하나금융지주(086790) 계열의 다올자산운용에 팔았다. 다올자산운용은 하나대투증권 사옥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부동산펀드를 출시한 바 있다.
 
예전 하나증권 시절 매각됐던 여의도 환승센터 인근 하나증권빌딩은 지난달 미래에셋맵스운용의 부동산펀드가 새 주인이 됐다. 한 때 증권시장을 좌지우지하던 하나대투가 결과적으로는 집세를 내는 신세가 된 셈이다.
 
집을 팔았다가 되산 경우도 있다. 한화증권(003530)은 2003년 구조조정을 위해 1400억원 정도에 리츠회사에 팔았다가 2008년 3200억원 이상을 주고 다시 본가를 사들였다. 한화증권은 이 빌딩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어 팔 때부터 5년 뒤 되사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 친구끼리 옆집, 라이벌끼리 옆집
 
사이 좋은 옆집도 있는 반면 라이벌끼리 옆집에서 살고 있는 사례도 있다. 대신증권(003540)신영증권(001720)은 겉에서 보기엔 한 회사처럼 건물이 이어져 있고 빌딩 외관 색깔도 하늘색으로 같다.
 
대신증권의 故 양재봉 회장과 신영증권의 원국회 회장의 친분이 두터워 같이 건물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 당시 시공사를 따로 쓰고 공사도 별도로 진행한데다 대신증권이 리모델링을 실시하면서 내부 구조는 상당히 다르다.
 
1990년대 중반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국민투자신탁은 자산운용업계 '3투신'으로 불리며 막강세를 과시했다. 1993년 한투가 현재의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하자 바로 옆집 라이벌이었던 대투는 사옥을 무조건 한투보다 높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현재 한국투자증권 빌딩은 높이가 83m, 하나대투증권 빌딩은 약 110m 정도다.
 
한편 한국투자증권 사옥은 당초 건물 전체가 유리로 덮여 여의도에서 가장 멋진 건물 중 하나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빌딩 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빛이 반사돼 생활이 불편하다고 민원을 넣어 현재는 건물 뒤편이 빛 반사를 막는 판넬로 덧대어져 있다.
 
◆ 미래에셋은 왜 을지로로? 사무공간 모자라 적과의 동침도
 
박현주 회장의 신화적인 성공으로 급성장을 이룩한 미래에셋은 올해 미래에셋이 그룹 차원에서 투자한 을지로 센터원 건물로 대부분 이전했다. 원래 미래에셋운용 등만 옮기기로 했으나 미래에셋증권(037620)도 PI로 투자를 한데다 그룹 시너지 효과를 위해 증권까지도 일부만 여의도에 남기고 대부분 센터원으로 입주키로 했다.
 
현재 여의도의 미래에셋 빌딩은 겨우 수십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지상 주차장이 전부다. 지하 1층이 있긴 하지만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부에서 미래에셋이 주차장 부족으로 이사갔을 것이라는 뒷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무공간이 부족해 인근 증권사 건물에 입주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A사는 B사 건물에, B사는 C사와 D사 건물에 일부 부서가 입주해 있는 등 복잡하게 뒤섞어져 있다. 과거보다 전산이나 인사·총무, 리서치센터 등 본사 인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만간 국제금융센터(IFC), 파크원(Parc1), 전경련회관 등 초대형 건물이 잇달아 들어설 예정에 있어 이런 현상도 곧 해소될 전망이다.
 
뉴스토마토 황상욱 기자 eyes@etomato.com

- Copyrights ⓒ 뉴스토마토 (www.newstomato.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

        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