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재판장님은 자식도 없습니까. 23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기각할 수가 있습니까!”
2024년 6월 리튬 일차전지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화재 사고로 23명의 사망자를 낸 '아리셀 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된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가 2심에서 감형된 징역 4년을 확정받은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20일 오전 박순관 아리셀 대표에 대한 상고심 판결이 진행된 대법원 2호 법정에서 “피고인 및 검사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주문이 낭독되자마자, 방청석에서 유족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고까지 걸린 시간은 채 30초도 되지 않았습니다.
일부 유족은 자리에서 일어나 퇴정하는 재판부를 향해 “2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울부짖었습니다. 재판부가 퇴정한 뒤에도 유족들은 10분가량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법정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습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아들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는 징역 7년이 확정됐습니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의 리튬전지 제조공장에서 발생했습니다. 화재로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습니다.
1심은 박 대표와 박 본부장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비상구 설치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고, 유족들과의 합의 등을 이유로 박 대표를 징역 4년, 박 본부장은 징역 7년으로 대폭 감형했습니다.
선고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유족과 유족 측 대리인은 대법원의 판단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고 엄정정씨의 유족 이순희씨는 “너무 억울해서 말도 안 나온다. 대한민국 법은 이것밖에 안 되냐”라며 “23명이 죽었다. 이주노동자라고 차별하는 거냐”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 중 18명은 중국과 라오스 출신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아리셀 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여국화씨는 “오늘 마음을 비우고 왔지만, 재판부는 10초도 안 돼서 성의 없이 기각됐다고만 선고했다. 너무 화가 난다”며 “돌아가신 23명에게도 너무 미안하고, 그리고 중처법을 만들려고 애써준 산재 피해 가족들에게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인들 손을 들어준 사법부는 각성해야 한다. 절대로 여기서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유족들을 대리한 신하나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중처법에 대한 사실상 위헌 판단이라고 본다”고 비판했습니다. 신 변호사는 “법은 있는 것만으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판단을 내려줘야 형벌로서의 위하효과(형벌을 통한 범죄 억제 효과)가 발생한다”며 “그런데 이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판단이기 때문에 (다른 중처법 사건) 하급심 판결에서 굉장히 강력한 사인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리인단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재판소원 청구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중처법은 2022년 시행된 이후 처벌이 가볍다는 비판은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3년간 중처법 위반 사건의 집행 유예율은 85.7%에 달했습니다. 실형이 선고된 사건에서도 평균 형량은 징역 1년1개월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9월 중처법 위반 사건의 양형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다만 유족이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한 경우 등을 특별감경 사유로 정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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