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급여 '일시금'…은퇴, 사라지는 '노후 안전판'
600조 내다보는 퇴직연금 적립금
연금 수령은 '10%대'에 그쳐
연금 계좌 vs 일시금 계좌 잔액 양극화
"노후소득 전환 대수술 시급하다"
2026-10-11 12:00:00 ㅣ 2026-10-11 12:00:00
[뉴스토마토 이규하 기자]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550조원대를 넘어서는 등 몸집을 빠르게 키우고 있지만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퇴직급여를 받기 시작한 계좌 가운데 상당수가 연금보다 일시금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일 정부와 금융권 등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은 올해 6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5년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01조4000억원에서 올해 6월 기준 553조8779억원까지 늘었습니다. 상반기 증가율을 감안하면 연말 600조원 시대의 산술 추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11일 정부와 금융권 등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지속하는 퇴직연금 적립금은 올해 6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출처=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
 
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연금화는↓
 
그러나 실상 들여다보면 ‘연금’이라는 이름이 무색합니다. 연금 수령 비중은 2023년 10.4%, 2024년 13.0%에 이어 2025년 기준 16.5%까지 올라섰으나 전체 수급 계좌의 83.5%(약 10개 중 8.7개)는 여전히 일시금 수령을 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금액 기준으로는 연금 수령 비중이 2025년 기준 61.6%(일시금 38.4%)를 기록하며 수령액 기준 절반 이상이 연금 계좌로 이동했습니다. 이는 적립 잔액이 큰 고액 자산가나 대기업 장기 근속자를 중심으로 연금 전환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잔액이 적은 대다수 일반 근로자들은 여전히 일시금을 선택해 적립금을 즉시 소진하는 ‘노후 자산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025년 퇴직급여 수급 계좌 분석을 보면, 연금 선택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억4900만원에 달한 반면, 일시금 선택 계좌의 평균 적립금은 1833만원에 불과했습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함께 포함한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에서 퇴직연금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지만 노후소득보장 체계의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김동진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분석을 보면 퇴직금이 퇴직 후 생계비나 자녀 결혼 자금, 부채 상환 등으로 소비되면서 은퇴 기간인 60대 이후 소득 공백기에는 ‘소득 절벽’ 현상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근로자들이 연금을 외면하고 일시금을 택하는 이면에는 복합적인 구조적 원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퇴직 시점의 적립금 잔액 자체를 연금으로 받기에 적다는 점입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이직이 잦아졌고 이직할 때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이전된 퇴직금을 해지, 생활비·자동차 구입 등으로 소진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여기에 주택 구입·전월세 보증금 마련 등을 이유로 한 중도인출도 활발합니다.
 
2025년 일시금 수령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833만원에 그친 반면 연금 수령 계좌는 1억4891만원으로 8배 이상 차이가 났습니다. 김동진 부연구위원은 연금으로 유도할 ‘당근’이 빈약하고 수익률은 낮은 점을 지목합니다. 제도적 유인책 부족과 저조한 수익률도 일시금 쏠림 현상을 부추기는 핵심 요인이라는 겁니다.
 
 
2026년 10월1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노후 소득 역할 '미흡'…세제 개편 등 종합대책 필요
 
현행 세법은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을 경우 연금 실제 수령연차에 따라 퇴직소득세의 30%, 40%, 50%를 감면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일시금으로 받을 때 부과되는 퇴직소득세 산정 및 공제 방식 때문에 실효세율 자체가 전반적으로 낮습니다. 세금 감면 혜택이 장기 연금 수령을 강제할 만큼 매력적인 ‘당근’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퇴직급여가 단기 소비성 자금으로 증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퇴직소득세 과세체계의 개편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현행 과세 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해 수급 개시 연령까지 적립금을 유지하고 장기 연금 수령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과세표준과 공제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연금 수령 기간을 세분화해 초장기 연금 수령 시 감면율을 끌어올리고 일시금 수령과의 세 부담 격차도 늘리는 등 연금 수령이 재무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개편 시뮬레이션 방안)해야한다고 조언합니다.
 
퇴직금의 지속적인 축적을 위해 중도인출 요건도 강화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주택 구입 등의 사유로 인출하는 대신, 퇴직연금을 담보로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열어주는 식입니다. 또 이직 시 IRP 계좌 해지를 제한하고 자금이 자동으로 승계되도록 하는 빗장 장치도 거론했습니다.
 
무엇보다 퇴직급여가 실질적 연금 역할을 하려면 적립금 원본 자체가 충분히 커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장기근속을 지원하고 잦은 이직과 실업으로 인한 소득 단절을 줄이는 노동시장 정책과의 연계가 필수적입니다. 근로자의 평생 소득 흐름을 안정시켜 퇴직급여 자산이 원활하게 축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김 부연구위원은 “현행 퇴직소득세는 일시금 수급을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일시금으로 수급하더라도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이런 이유로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급했을 때 감면되는 퇴직소득세 또한 매우 적다. 연금 수급으로 얻는 세제 혜택이 적으니 근로자 입장에서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급해야 할 유인이 크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퇴직소득세를 연금 수급을 전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근로자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는데, 영국과 같이 특정한 사유와 범위 내에서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제도적 장치는 근로자의 불만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습니다.
 
 
2025년 12월10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구직자들이 팜플렛을 살피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종=이규하 기자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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