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변소인 기자]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번역 업계 전반에 위기론이 팽배합니다. 기계 번역의 정확도가 빠르게 오르면서 번역 단가는 매년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흐름을 역이용해 오히려 성장 궤도를 탄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콘텐츠 AI 기업 보이스루입니다.
지난 13일 <뉴스토마토>와 만난 이상헌 보이스루 대표는 AI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이 대표는 AI가 완벽하게 번역을 하기 전까지 AI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대표는 "언젠가는 AI가 모든 것을 다 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 시기까지는 협업해야 한다"며 "AI와 일하는 방식을 계속 적용해나가면 역량을 키워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 방식으로만 하면 번역 단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생존하기 어렵다"며 "모든 사람이 AI 시대에 맞춰 파도타기를 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가격이 낮아지면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작품과 협업하면 매출을 더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해 보이스루는 매출 2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30% 성장한 수치인데요. 이 대표는 올해도 30% 이상 매출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상헌 보이스루 대표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본사 앞에서 서비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변소인 기자)
현재 보이스루의 서비스는 크게 세 갈래입니다. 영상 콘텐츠 번역 서비스 '자메이크'와 맞춤형 콘텐츠 현지화 번역 서비스 '보이스루' 그리고 번역가 협업 플랫폼 '토투스'입니다. 보이스루는 기존 번역 업체 대비 빠르고 저렴하면서도 품질은 AI 단독보다 높은 구조를 구현했습니다. 누적 투자 유치액은 300억원에 달합니다. 이 대표는 "국내에서 나오는 웹툰 중 해외로 나오는 건 10% 안팎이다. 현지화 비용이 5000만~1억원 이상 들기 때문"이라며 "단위 가격이 싸지면 훨씬 많은 콘텐츠가 나갈 수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기술 측면에서는 두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번역 품질 유지를 위한 AI 가이던스 고도화입니다. 초벌 번역이 잘못되면 재밌게 수정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특성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규모 협업 관리입니다. 이 대표는 "천 작품 넘는 웹툰을 관리하다 보면 하나만 펑크 나도 대형사고다. 파일명이 틀리거나 언어가 꼬이거나 다른 작품으로 발송되는 일 없도록 관리하는 AI 시스템에 많은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습니다.
보이스루의 차별화 포인트는 재미와 속도입니다. 이 대표는 "번역은 재밌어야 한다. 콘텐츠 감이 살아야 하고 그 와중에 저렴하고 빠르게 나와야 한다"며 "AI보다는 품질이 안정화돼있고 기존 번역회사보다는 저렴하고 빠르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다"고 강조했습니다.
보이스루는 당초 번역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2018년 법인 설립 전 이상헌 대표가 대학 4학년 재학 중 창업한 아이템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생성 서비스였습니다. 통계·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AI와 데이터 분석에 일찍 눈을 떴던 이 대표는 사업 아이템을 확장해 현재의 서비스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번역 서비스의 본질적 어려움을 두 가지로 짚었습니다. 그는 "번역은 구매하는 사람이 품질을 확인하기 어렵다. 눈 감고 사는 특이한 서비스"라며 "번역 파일이 나오면 렌더링하기도 어렵고 배포 하루 전날 영상이 수정되면 더빙·번역 싱크가 다 밀린다"고 했습니다. 자메이크는 이런 후공정까지 자동화해 유튜브나 OTT 플랫폼에 맞게 자동 등록·수정하는 구조를 갖췄다고 설명했습니다.
웹툰·웹소설 번역은 다른 난도를 갖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웹툰은 글씨를 내용에 맞게 그려야 한다"며 "가령 '헉'이라는 글자만 봐도 놀람이 느껴질 수 있도록, ‘쨍’이라는 단어만 봐도 칼끼리 부딪히는 날카로움이 느껴지도록 다른 나라 말로 그려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보이스루는 원작자·번역가·식자 디자이너·PD가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장편 웹소설의 경우 번역사 혼자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어 번역 완료 일자가 수십 뒤로 미뤄지기도 합니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이 대표는 AI와의 협업으로 번역가 1인의 생산량을 대폭 끌어올렸습니다.
토투스에서는 다양한 번역가들이 작업물을 받아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요. 이 대표는 "영업 못하는 잘하는 번역가들이 세상에 넘친다. 그런 분들이 작업물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잘하는 영역에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정산을 받는 번역가들이 월 500~1000명에 달한다"고 전했습니다.
지난 2023년 1월 카카오의 일본 자회사 카카오픽코마가 보이스루를 인수했습니다. 인수액은 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대표는 대표직을 유지하며 경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책임을 전제로 그 안에서 자유를 갖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며 "굉장히 많은 자유도를 갖고 있다" 말했습니다.
보이스루는 일본과 인도네시아에도 거점을 두고 있는데요. 이 대표는 싱가포르 법인 설립도 검토 중입니다. 이 대표는 "당장의 계획엔 없지만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나가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보이스루는 현재 AI 에이전트 전략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AI로 번역을 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보이스루가 그것을 만들고 싶다"며 "양쪽의 경험이 많이 쌓여있는 회사로서 새로운 활로를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변소인 기자 byl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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