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창욱 기자] 국내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이해관계 조율 난항으로 표류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올해 1분기 내 사업 재편안 제출을 요구했지만, 일부 산단은 결국 데드라인을 넘겼습니다. 업체 간 셈법 차이와 이견으로 재편안 마련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동 사태 등 대외 변수까지 겹치며 구조조정 작업도 주춤하는 모습입니다.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단 전경.(사진=뉴시스)
1일 업계에 따르면 울산 석유화학산업단지의 SK지오센트릭·대한유화·에쓰오일과 여수의 LG화학·GS칼텍스는 결국 올 1분기 내 사업 재편안을 산업통상부에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앞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업계 사업재편 CEO 간담회’에서 사업 재편 최종안 제출 마무리 시점을 “내년 1분기 안”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LG화학과 GS칼텍스의 경우 감축 규모와 지분율 등 세부 사항을 둘러싼 조율은 다소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에 합작 틀이 마련돼 있거나 국내 업체 간 의사결정만으로 조율이 가능했던 이전 ‘빅딜’ 사례와 달리, LG화학·GS칼텍스는 복수의 주주가 얽혀 있는 데다 새로운 법인 구조 설계까지 병행해야 해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GS칼텍스는 미국 셰브론을 대주주로 두고 있어 해외 주주와의 협의 및 내부 절차까지 거쳐야 하는 만큼, 최종안 도출까지는 다소 시일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다만 큰 틀의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진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시한 내 최종안을 내지는 못했지만, 양측은 꾸준히 접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HD현대오일뱅크 합작사)처럼 기존 합작사 틀 안에서 논의를 진행한 이전 ‘빅딜’ 사례와 달리, LG화학·GS칼텍스는 처음부터 구조를 새로 설계해야 하는 데다 셰브론과의 협의도 거쳐야 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라며 “결국에는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울산입니다. 에쓰오일·대한유화·SK지오센트릭 3사 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재편안 논의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배경으로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꼽힙니다. 샤힌 프로젝트 가동으로 연간 약 180만톤 규모의 에틸렌이 추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에쓰오일은 정부가 제시한 에틸렌 감축안에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에쓰오일은 모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와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데다, 일괄적인 감축보다는 경쟁력이 낮은 노후 설비를 우선 정리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입장입니다. 최근 준공된 최신 설비 대신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기존 공장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업체들은 기존 설비만 감축할 경우 형평성이 떨어진다며, 신규 설비를 포함한 전반적인 감축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울산 3사가 재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 자체가 크지 않다는 점도 논의를 더디게 하는 배경으로 꼽힙니다.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고도화된 설비 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SK지오센트릭 역시 정유 부문인 SK에너지 등 자체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어 서로의 설비를 넘겨받거나 공동 운영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동 사태도 울산 지역 구조조정을 늦추는 요인으로 거론됩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 변동성과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나프타 확보 부담이 높아진 가운데, 정유 부문 없이 나프타분해시설(NCC)만 가동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 논의가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반면 정유 부문을 함께 보유한 에쓰오일과 SK지오센트릭 등은 나프타 조달 측면에서 비교적 여유가 있어 구조조정 압박도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설명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 부문이 있는 울산 단지의 경우 외부 공급이 흔들릴 때 자사 물량을 우선 투입할 수 있다”며 “재편에 따른 실익도 크지 않은 만큼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에 다소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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