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검찰이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민생수사 성과 내기에 힘을 쏟는 모양새입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제분사·제당사의 밀가루·설탕 담합 사실을 밝힌 지 한 달 반 만에 국내 4대 정유사를 겨냥했습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자 민심 잡기에 나선 이재명정부의 행보에 재빨리 보폭을 맞춘 겁니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보완수사권 논의'가 남아 있는 만큼,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됩니다.
나희석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가 지난달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23일부터 이틀간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와 사단법인 대한석유협회를 압수수색했습니다.
검찰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오른 기름값을 빌미로 국내 정유사들이 가격을 짬짜미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습니다. 정유사들이 사전 협의를 하고 유류 및 석유 제품 가격을 담합,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수사 범위는 과거 유가 변동이 컸던 시기까지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설탕·밀가루 담합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 한 달 반 만입니다. 앞서 공조부는 첩보를 통해 설탕·밀가루 가격 담합에 대한 인지수사에 착수, 지난달 2일 '서민경제 교란사범 집중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CJ제일제당·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 등 제분사 7곳이 2020년 1월부터 5년9개월 동안 밀가루 가격을 담합해 6조원의 매출을 올린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설탕의 경우 빅3사(삼양사·CJ제일제당·대한제당)가 4년2개월 동안 담합으로 3조2000여억원의 매출을 올린 사실을 적발했습니다.
이처럼 검찰이 이재명정부의 뜻에 따라 민생경제 수사에 열을 올리는 데에는 향후 '보완수사권'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검찰 내부에는 6월 전까지 수사 성과를 내놓으라는 압박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검찰개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검찰의 수사 성과를 치켜세웠습니다. 검찰이 설탕·밀가루 담합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2일 이 대통령은 "검찰이 큰 성과를 냈다"며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해 주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또 이달 24일 국무회의에서는 "검찰이 어제 정유사의 기름값 담합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는데 국민 고통을 악용한 부당한 돈벌이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발본색원하고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검찰 수사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는 최근 검찰이 보이스피싱 등 민생 사건에서 보완수사로 피해자 권리 회복에 도움이 된 사례를 적극 홍보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앞서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 19일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구속송치 사건 수사 중 피의자를 조사해 피해자의 피해금을 되찾아 주고, 구속 기소했다고 알렸습니다.
검찰개혁의 핵심 쟁점인 '보완수사권' 논의가 남아 있는 만큼, 검찰은 수사권 존치 필요성을 강조할 선례를 쌓는데 주력할 걸로 보입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 12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검사가 제대로 된 기소 및 공소 유지를 하려면 수사와 관련된 증거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 정도는 남겨둬야 한다"며 보완수사권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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