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카드로 호르무즈 파병 압박…안규백 "공식 요청 아냐"
정부 "국익 최우선·국제규범 합치 방향 검토"
2026-03-17 16:52:15 2026-03-17 17:30:10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언급하며 또다시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17일 "공식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현재 상황은 한국군의 파병을 압박한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과 유사합니다. 당시 해외주둔미군 재배치 계획(GPR·Global Posture Review)을 추진하던 미국은 '붙박이 군'으로 여겨졌던 주한미군의 한반도 밖 이동을 지렛대로 한국의 대규모 파병을 압박했고, 한국은 결국 베트남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해외파병을 결정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국내 여론, 국회 동의 등은 물론 원거리 군사력 투사의 물리적 제한 등이 맞물리면서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미국 측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여러 요소와 정세를 고려해 국익을 최우선 두고 국제 규범과 합치하는 방향으로 면밀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문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국에 4만5000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에게 감사할 뿐 아니라,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만8500명 수준인 주한미군 병력을 과장하면서까지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을 압박한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빠른 파병 결정도 요구했습니다. 백악관 발언에 앞서 트럼프-케네디센터 이사회와의 오찬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다른 나라들이 우리와 함께 빠르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여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일본, 중국, 한국 등의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급 비율을 언급하며 "이들 국가가 나서서 해협 문제를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했고, "우리는 끔찍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줬지만 그들은 그리 열의가 없었다. 그 열의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신속한 파병 결정을 하지 않으면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성 메시지로 읽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주한미군 등의 움직임은 압박의 신호가 되고 있습니다. 우선 패트리엇과 사드 등 일부 주한미군 방공망의 중동 차출 등은 언제든 주한미군 전력이 한국 정부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최근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던 미 제3해병원정군(III MEF) 소속 31원정해병단(31st MEU) 병력 2500여명을 상륙강습함 트리폴리함에 태워 중동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 부대는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한반도에 투입되는 미군 신속기동 전력입니다.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군사령부 예하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에 배속돼 상륙작전 등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 해병대와 수시로 훈련합니다. 이런 부대의 이동은 전황에 따라 스트라이커 여단 등 주한미군 병력의 차출도 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반도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호르무즈 해협 함정 파견을 고민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부담되는 상황입니다. 한·미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한국군의 한국 방위 주도, 전시작전통제권 회복 등 동맹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 번 이동한 미군 병력을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한미군을 압박 카드로 이미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한국 정부가 빠르게 파병 결정을 한다 해도 해군 함정의 파견이 단시일 내에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당장 인근에 있는 청해부대 47진 대조영함을 투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특정 목적으로 이미 작전지역에 파견된 4400톤급 구축함 1척으로 전쟁터에서 할 수 있는 임무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국방부도 현재 상태의 청해부대를 그대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따라서 파병이 결정된다면 새로운 파병 부대를 창설해야 합니다. 이 부대에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파견할 함정의 규모를 정해야 하고, 이 함정들이 장거리 원정 작전을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구축함이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동하려면 통상 20여일 이상 걸립니다. 구축함보다 속도가 느리고 항속거리가 짧은 소해함 등 기뢰제거 전력까지 포함된다면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동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 사이 전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공식 파병 요청이 9월이었고, 국회의 파병 동의를 받은 건 이듬해인 2004년 2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에르빌에 첫발을 디딘 건 9월이었습니다. 파병 요청부터 실제 파병까지 1년이 걸렸던 만큼 어떤 식으로 든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편 안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파병 요청을 받은 바는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요구는 공식 요청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방부는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석종 국방전문기자 sto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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