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준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은 오랫동안 뉴욕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 이 랜드마크는 상징을 넘어 정책의 시험대가 됐습니다. 뉴욕시가 도입한 강력한 건물 탄소 규제, 기후동원법(Local Law 97)이 초고층 역사적 건축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면서입니다. ‘1930년대 기술로 지어진 초고층 건물이 21세기 탈탄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많은 노후 건물 소유주들이 벌금을 ‘불가피한 비용’으로 계산하던 시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선택은 정반대였습니다. 규제를 리스크가 아닌 자산 재설계의 기회로 본 것입니다. 건물 소유주인 엠파이어 스테이트 리얼티 트러스트(ESRT)는 LL97 제정 이전인 2009년부터 ‘Empire State ReBuilding’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약 5억5천만달러가 투입된 이 사업은 단순한 설비 교체를 넘어, 에너지, 운영 방식, 임대 경쟁력에 이르기까지 규제 대응을 넘어 자산가치를 동시에 혁신하는 딥 에너지 리트로핏(Deep Energy Retrofit)이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을 미국 뉴욕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지나고 있다. 1931년 세워진 이 빌딩은 탈탄소 기준을 성공적으로 충족시키면서 뉴욕의 지속가능성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욕의 지속가능성 아이콘
그 핵심은 ‘교체’가 아니라 ‘재프로그래밍’이었습니다. 6500여 개의 창호를 현장에서 분해, 재가공해 고성능 단열 창으로 되살렸고, 냉난방 시스템은 고효율 장비와 지능형 제어를 결합했습니다. 68대 엘리베이터에는 재생제동 시스템을 적용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회수했습니다. 공사는 임차인을 내보내지 않은 채 단계적으로 진행됐습니다.
그 성과는 데이터로 입증했습니다. 에너지 사용량은 약 40%, 온실가스 배출은 2007년 대비 약 54% 줄였습니다. 연간 운영비 절감 효과는 400만 달러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뉴욕시의 LL97의 2024년 기준은 이미 충족했고, 2030년 강화 기준도 추가 대규모 투자 없이 대응 가능하다는 전망입니다. 벌금을 피한 데 그치지 않고, 규제 리스크 제거와 임대료 프리미엄, ESG 평가 개선을 동시에 확보한 것입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홈페이지에서는 스스로를 ‘뉴욕의 지속가능성 아이콘’이라 부르며, ‘스마트 탄소 자산(carbon-smart asset)’ 모델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탈탄소 전환으로 건물의 문화적 매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6년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선보인 대규모 로맨틱 프로그램은 그 전략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빌딩’이 되겠다고 표방하는 이 랜드마크는 발렌타인 주간 동안 건물 전체를 하나의 문화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단 하루, 한 커플만을 위해 전망대 전시와 102층 공간을 독점 개방하는 ‘엠파이어 포 투(Empire for Two)’를 비롯해서 102층 전망대에서의 프라이빗 디너, 전문 연주자의 라이브 음악, 돔 페리뇽 샴페인과 테이스팅 코스까지 포함된 이 패키지는 1만 4000달러에 달하지만, 매년 ‘일생일대의 경험’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주요 배경이 된 영화 <킹콩> 스틸컷.(사진=UIP코리아)
문화적 매력 극대화 전략
이런 낭만이 특정 계층에만 한정되지 않도록 90년대 로맨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특별 상영, 일출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기는 ‘라이즈 앤 샤인’ 프로그램까지, 발렌타인 주간 내내 다양한 층위의 방문객을 끌어들일 계획입니다. 2월 14일 밤, 타워 상단을 수놓는 핑크색 하트비트 조명은 이 건물이 여전히 뉴욕의 감성을 지배하는 무대임을 상기시킵니다.
주목할 점은 이 모든 문화·관광 경험이 에너지 효율 상위 20%에 해당하는 초고효율 역사적 건물에서 제공된다는 사실입니다. 재생 풍력 전력을 사용하고, 탄소 배출 기준을 선제적으로 충족한 상태에서 레스토랑, 전시, 영화, 프러포즈까지 아우르는 복합 경험을 판매합니다. 탈탄소는 비용이 아니라, 브랜드 서사와 감성 가치를 증폭시키는 토대가 된 셈입니다.
탄소 규제에 대한 적극적 대응과 도시 문화의 확장을 결합한 변신은 기후위기 대응의 모범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한 세기 동안 산업 도시의 상징이었던 이 초고층 빌딩은 이제, 지속가능성과 문화가 공존하는 뉴욕의 미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무대로 다시 서고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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