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위법 판단을 내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가운데, 해당 조치가 무효가 될 경우 한국은 또 한 번 통상 불확실성에 직면할 전망입니다. 외환당국의 강력한 실개입과 구두개입마저 효과를 내지 못하는 고환율 국면에서, 부담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상호관세 무효 땐…제2의 관세폭풍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은 12일(이하 현지시간) 상호관세가 무효가 될 경우 "우리는 완전히 망하는 것"이라며 연방대법원에 유리한 판결을 재차 촉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돌려줘야 할 금액만 수천억 달러에 이르고, 각국과 기업이 관세를 피하고자 미국에 투자한 비용까지 포함하면 수조 달러에 달한다"며 "이렇게 되면 완전히 엉망이 되고, 미국이 감당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이터 통신> 추산에 따르면 미국 정부 패소 판결이 내려질 경우, 관세 환급액 추산 규모는 1500억달러(220조원) 안팎입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환급 범위와 지급 방식, 추가 소송 가능성 등을 둘러싼 정치·행정적 부담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 연방대법원은 이르면 14일 상호관세 위헌 여부에 대해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11월 심리를 종결한 뒤 숙고를 이어왔지만, 애초 유력하게 거론됐던 지난 9일에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쟁점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의회 동의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지입니다. 민주당 소속 주지사가 재임 중인 12개 주와 중소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지난해 1·2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IEEPA를 활용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안보·외교·경제와 관련한 '비정상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의회 승인 없이도 다양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합니다.
IEEPA는 주로 적국에 대한 제재나 자산 동결에 활용돼 왔으며, 이를 관세 부과의 근거로 사용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그는 무역 불균형과 미국 제조업 경쟁력 약화, 국경을 통한 마약 유입 등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를 부과해왔습니다.
연방대법원은 6대3의 보수 우위 구도지만, 이른바 '중대한 질문 원칙'(Major Questions Doctrine)이 대법원에 확립돼 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직 대법원장인 론 로버츠가 지난 2022년 오바마 행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무효로 하면서 천명한 것으로 "대통령이 포괄적 법률 조항을 근거로 중대한 정책을 시행하려 할 때, 의회의 명확한 위임이 없으면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지난해 관세 소송의 첫 구두변론에서도 보수 성향 대법관 일부는 광범위한 관세정책이 의회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적법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워싱턴 연방준비제도를 방문해 비용 수치 문서를 검토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상호관세' 전제인데…3500억 대미 투자는?
대법원이 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를 무효로 판단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각국과 진행해온 협상 역시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만 해도 상호관세 인하(25%→15%)를 조건으로 미국에 3500억달러(약 516조원) 투자를 약속한 상태입니다. 일본과 유럽연합(EU)도 각각 5500억달러, 60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상호관세가 무효가 되더라도, 한국이 대미 투자에서 발을 빼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데 한목소리를 냅니다. 상호관세 압박이 협상 과정에서 투자 약속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지만, 구조적으로는 관세와 투자가 분리돼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대미 투자 양해각서(MOU)에는 상호관세와 투자를 직접 연계하는 조항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명예교수는 "투자와 상호관세를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어렵다"며 "미국은 무역법이나 무역확장법 같은 다른 행정 조치를 계속 동원할 것이고, 투자는 투자대로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짚었습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미 연방대법원이 전면 위법 판단을 내리기보다, 관세 부과 권한의 위임 범위를 다시 정하도록 의회에 판단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봤습니다. 이 경우 상호관세의 법적 지위가 장기간 불확실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 미 연방대법원은 비슷한 위헌 논란이 제기된 사건에서, 법을 곧바로 무효로 하지 않고 입법부가 권한 범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전례가 있습니다.
신 교수는 "이 경우 절차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적어도 올해 안에는 한국에 즉각적인 충격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한국 정부가 환율 불안 등을 이유로 대미 투자 이행에 제동을 걸 경우, 새로운 통상 분쟁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은 상호관세가 위법 판단을 받을 경우, 한국에 적용되는 관세가 즉각 대체되기보다는 일정한 '공백 국면'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관세 부과를 위해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조사와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상호관세가 위법 판단을 받더라도 이를 그대로 대체할 수 있는 관세 수단은 제한적이라고 봤습니다. 그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하더라도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 일부 품목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상호관세처럼 국가별로 폭넓게 적용하는 방식은 법적·절차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을 통해 통상 불확실성을 해소한 한국 입장에서는 상호관세라는 단일 조치가 사라지고, 품목별·법적 근거별 관세가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앞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무역확장법에 근거한 232조(안보 관세)와 무역법 301조(보복 관세)·338조(보복적 무역 제재)를 통한 관세 부과를 예고한 적 있습니다.
"미국이 망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이 수사적 표현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지난해 4월부터 이어져온 미국 관세정책의 전복은 미국발 자산 시장 충격으로 이어질 여지를 남깁니다. 외환당국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환율 변동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체계가 흔들리는 국면은 그 자체로 국내 시장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입니다.
세종=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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