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파노라마)'본질'은 무죄, '지엽적 혐의'만 항소…궁색해진 검찰
혐의 25개 전부 무죄...박지원 등 핵심 인물 항소에서 빠져
검찰, '국정원 문건 삭제' 주장...문건 원본 여전히 남아있어
2026-01-05 16:50:09 2026-01-05 16:50:09
[뉴스토마토 김태현 기자] 검찰이 1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일부 혐의만 추려 항소했습니다. 정치권 등 일각에서는 검찰이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항소하는 '줄타기'를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재판 내용을 들여다보면, 검찰이 과연 항소할 명분이 있는지가 의문으로 남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윤석열정부 출범 후 검찰과 감사원이 전임 정부였던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대표적 표적 수사 사례로 꼽힙니다.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고 이대준씨가 서해에서 피격·사망했는데, 검찰은 전임 정부가 사건을 은폐하고 고인을 '월북자'로 조작했다고 주장하며 수사를 개시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원 첩보 보고서 등 증거를 본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습니다. 1심 재판부가 문재인정부가 이씨 피격·사망 사실 등 정황을 은폐했다는 주장을 포함한 모든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겁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은폐 시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을 마친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병주)는 지난 2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와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의 허위공문서 작성·명예훼손·사자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항소했습니다. 반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노은채 전 국정원 비서실장 등 핵심 인물들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등은 항소 대상에서 빠졌습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은 지난해 12월26일 검찰이 각 피고인들에 대해 기소한 혐의 25개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의 이번 항소는 25개 혐의 중 일부만 추려 재심을 청구한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이씨 피격·소각 사실 등을 은폐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항소를 하지 못했습니다. 검찰 항소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입니다.
 
검찰이 박 전 국정원장 등의 문건삭제 혐의 등에 대해서 항소를 하지 못한 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공소사실이 반박당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서욱 전 장관, 박 전 국정원장 등이 국방부와 국정원의 전산망에서 이씨의 피격·사망 사실에 관한 정보를 모두 삭제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26일 1심 재판부는 판결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실제 국방부, 국정원의 해당 전산망에는 위와 같이 삭제된 해당 정보나 보고서 자체나 원정보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대로라면 전산망엔 박 전 국정원장 등이 삭제를 지시했다는 '사건 관련 첩보 보고서' 등이 없어야 하는데, 이 자료가 남아있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겁니다.
 
검찰이 보고서 원본이 남아 있다는 걸 알고도 기소했다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를 알지 못했다면 검찰 수사력이 미흡하다는 방증입니다. 검찰이 줄곧 주장한 '보완수사권 필요성' 논리도 설득력을 잃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판 과정에서 첩보 관련 내용의 삭제·회수가 지시됐고 실제 삭제가 이루어졌다'고 볼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재판에 현출된 증거들을 보면 '은폐'와는 거리가 먼 걸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업무 담당자가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작성자로 하여금 회수 조치를 취하도록 하려고 했으나, 작성자의 퇴근으로 부득이 회수 권한이 없는 관리자가 삭제 조치를 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이 과정은 모두 지휘계통, 업무절차를 따라 진행되었고, 해당 조치 내용 등은 모두 문서 남아 있었다는 점도 판결문에 명시됐습니다.
 
이 사건은 2022년 6월, 윤석열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해경과 국방부가 기존 수사 결과를 뒤집으며 시작됐습니다. 이튿날 감사원은 감사위원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즉각 감사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감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처 독단으로 중간 결과를 발표, 전 정부를 겨냥한 '표적 감사'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국정원은 지난달 26일 1심 선고 후 보도자료를 내고 "'동해·서해 사건' 등을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라'는 윤석열씨의 지시에 따라 2022년 7월6일 검찰에 사건 관계자들을 고발했다"며 "현 정부 출범 이후 실시한 특별감사와 감찰을 통해 고발 내용이 사실적·법리적 측면에서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즉 윤석열씨가 취임하고 2022년 7월 국정원은 '박 전 국정원장 등이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했다'며 고발했는데, 해당 고발이 윤씨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고백한 셈입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한다면, 이번 사건은 단순히 항소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아니라 검찰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강행한 수사가 법정에서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보여주는 판결로 보입니다.
 
한편, 이씨의 친형인 이래진씨 측은 지난 3일 입장문을 내고 "검찰은 명예훼손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항소를 제기했다"며 "이는 검찰이 형사소송법상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며, 진상 규명을 요구해 온 유족의 기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씨는 6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박철우 서울중앙지검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키로 했습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1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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