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관세 협상에서 상호주의와 일방주의
2025-04-23 06:00:00 2025-04-23 06:00:00
트럼프는 49일 중국을 제외한 나라에는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기본관세 10%를 부과한다고 발표하면서, 중국은 보복했다는 이유로 관세율을 145%로 끌어올렸다. 이에 중국도 125%로 맞대응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는 상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이다. 우리나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관세가 없었는데도 일방적으로 관세율을 정한 것은 협정을 파기한 것이다. 미국은 캐나다, 멕시코와의 자유무역협정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는 관세(인하)의 결정은 2개국 내지 다국 간 대등한 협상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는 상호주의(reciprocity) 원칙을 정립했다상호주의는 국제관계와 국제법의 기저에 작동하는 핵심 원칙으로 이익에는 이익으로, 손해를 입었으면 상대에게 손해로 맞대응하는 것이다. 관세율을 일방적으로 정한 후에 보복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은 일방주의이다. 트럼프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무역 협상을 힘의 논리에 의한 제국주의 시대의 불평등한 협상으로 돌려놓았다. 1930년 미 정부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관세율을 대폭 인상했는데 이것이 유럽의 보복 관세를 불러일으켜 공황을 악화시켰다. 그리고 이 공황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고 경제사가들은 평가했다. 194444개 연합국이 참여해 만든 브레튼우즈 체제는 보호무역으로 대공황을 악화시킨 오류를 재연하지 않기 위해 자유무역을 표방했다.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미국은 참가국에게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 교역망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대가로 참가국은 미국을 패권국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미국에 기축통화국의 권리를 부여해주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확립된 달러 패권은 불안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려면 무역적자를 발생시켜 해외에 지속적으로 달러를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무역적자 상태가 장기간 지속하면 달러 가치가 흔들려 기축통화로 신뢰성을 위협받게 된다(이를 트리핀의 딜레마라 부른다).
 
기축통화인 미달러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서방 주요 국가들이 협력해 위기를 극복했다. 대표적 예가 19859월의 프라자 합의이다. 미국의 장기적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되자 미달러에 대해 엔화와 마르크를 절상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해주었다. 이는 미국이 계속 패권국가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것이다. 트럼프는 러-우 전쟁을 중재하면서 미국이 더 이상 패권국가로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사실상 선언했다. 그러나 관세 협상에서는 패권국가로서 상대방에게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번 관세 협상은 국력이 어느 정도 대등한 미·중의 양자 협상 외에도 나머지 국가들이 미·중에서 자신이 어디에 협력할지도 저울질한다. 미국은 중국을 고립시키려 한다. 하지만 패권국가의 역할을 포기하고 보호주의를 펴는 트럼프의 중국 고립 전략에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협력할까?
 
부동산업자였던 트럼프는 거래의 기술불구가 된 미국에서 스스로 협상의 달인이라고 자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지는 국면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정신적 혼란에 의해 오히려 도움을 받는다. (...) 특히 날카롭고 강인하며 때로는 사악한 사람들과 맞서야 하는 뉴욕 부동산 업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혼란을 불러일으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협상의 대가로 생각하지만 국가 간 협상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부적격자임이 드러났다. 그는 국가 간 협상은 부동산 거래의 협상과 여러 면에서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첫째, 부동산 거래는 주로 매수자 매도자 간 일차원적 게임이다. 국가 간 협상은 양자 협상이지만 양국 지도자들의 협상을 관찰자인 양국 국민들이 지켜보는 2차원적 게임이다. 협상은 양국 국민의 이익과 감정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상대방에게 정신적 혼란을 주려는 트럼프 전략은 성공했지만 미 국민의 정신적 혼란이 더욱 커서 그들의 신뢰와 지지를 상실했다. 미국에서는 반트럼프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 지지와 신뢰는 지도자의 협상력을 좌우한다. 국가 간 협상에서 트럼프가 상대하는 사람은 거칠고 사악한 부동산업자가 아니고 국가의 품격을 대표하는 인품을 갖춘 지도자이다. 트럼프는 국가 지도자와 협상하면서 상대 국가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 캐나다와 관세 협상을 하면서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는 경멸적 도발로 협상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중국에 상호관세율을 높이면서 그 이유를 중국이 보복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언사는 국가의 자존심을 건드려 캐나다와 중국 국민을 분개시켰다. 개인 간 협상에서도 상호 존중은 협상의 성공을 좌우한다. 미국 유명 경영대학원에서 사용하는 협상학 교재들은 협상은 통념과 달리 이성이 아닌 감정에 좌우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기 감정에 집중하면 협상에 실패하고 상대 감정에 집중하면 성공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현명한 협상가라면 힘의 논리에 따라 자국 이익을 추구할지라도 최소한 상호 존중의 원칙은 지켰어야 했다. 상호주의에는 상호 이익의 경제 원칙과 더불어 상호 존중의 도덕적 원칙도 포함돼 있다. 중국의 강력한 맞대응에 당황해서 트럼프는 시진핑의 전화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분개한 중국 국민들이 지켜보는데 시진핑이 어찌 먼저 전화할 수 있겠는가?
 
둘째 트럼프는 국가 간 협상은 부동산 거래와 달리 원 샷(거래가 끝나면 서로 다시 보지 않는) 게임이 아니고 서로 다시 보아야 하는 반복 게임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중 간의 관세 협상은 어느 일방이 이를 1회성 게임으로 인식하면 죄수 딜레마에 빠진다. 죄수 딜레마는 쌍방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다보면 서로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서로 다시 보지 않는 상황이라면 일방이 손해를 보고 끝날 수도 있다. 서로 다시 보아야 하는 반복 죄수 게임에서는 양측은 보복 조치를 주고받는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로 보복하자 미국은 엔비디아 H20칩 수출 금지로 맞대응했다. 그러나 양측은 손해를 줄이기 위해 결국 협력하게 된다. 시진핑의 전화를 기다린다고 트럼프의 말은 죄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트럼프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다. 시간은 트럼프에게 유리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물러나라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모택동의 영상을 틀며 국민의 전의를 고취시키고 있다. 셋째 트럼프는 통합적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모든 의사결정은 즉흥적이어서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바뀐다. 무역은 양국이 서로 이익이 있어 하는 것이다. 무역 협상은 자국 이익이 상대국 이익이 어떻게 의존하고 있는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애플, 월마트를 비롯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생산해서 수입하는데, 관세를 매기면 이 기업(결국은 소비자)들이 관세를 부담해야 한다. 또한 관세가 국내에 미치는 다른 영향을 살피기 위해 범정부적 논의에 의한 의사결정도 필요하다. 트럼프는 협상에서 이기는 힘은 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렵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범정부적 논의나 검토는 상대방의 예측력을 높일 수 있으니 무시한다. 의회 청문회에 나온 무역대표부 대표는 트럼프의 트위터를 통해 90일 유예 조치를 알았다고 말할 정도다. 트럼프는 관세정책을 통해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그러나 의사결정을 지도자가 혼자 즉흥적으로 하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어느 기업이 투자할까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해야 하나? 푸틴은 트럼프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는 협상 전략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트럼프 협상에서 언제나 승자였다. 푸틴은 러-우 휴전이라는 원칙에서는 일단 동의했지만 시간을 끌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상대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을 채워야 한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트럼프는 푸틴의 지연 전술에 참지 못하고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겠다는 제안을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중재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한다. 현재 상황에서 트럼프에 대한 최고 전략은 시간 끌기다. 일단 트럼프의 요구를 들어보고 중요한 결정은 새 정부가 하도록 해야 한다. 정신적 혼란을 조장하는 트럼프의 말은 무시하고 행동을 보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대통령 궐위 상태는 트럼프와 협상에서 호재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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