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연화 밀어붙인 고용부…"재량근로제 늘려야" 보고서 냈다
고용부, 지난해 11월 재량근로제 연구용역 보고서 내놔
경총 도움으로 '기업 설문조사'…"재량근로 도입율 낮아"
근로기준법 개정 말고 '사용자-노동자 합의' 강조하기도
반도체특별법으로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논란 재점화
2025-02-20 11:55:15 2025-02-20 13:16:26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재량근로제 대상을 늘리고 도입 요건을 낮춰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연구용역 보고서를 내놓은 걸로 확인됐습니다. 주 최대 69시간이 근무제를 추진, 근로시간 유연화를 밀어붙였던 고용부가 사용자 측에 유리한 재량근로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나선 겁니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근로기준법 개정과 국회 동의가 필요한 반면, 재량근로제 확대는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합니다. 근로시간 유연화에 제동이 걸린 고용부가 재량근로제 확대로 꼼수를 부린다는 지적입니다. 
 
20일 <뉴스토마토>는 박홍배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고용부의 '재량성·전문성 있는 업무에 대한 근로시간 규율 법안 연구'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보고서는 고용부가 지난해 5월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11월에 최종 결과물로 내놓은 겁니다. 보고서엔 재량근로제 활성화 방안으로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 방향이 담겼습니다.
 
현재 재량근로제 적용은 근로기준법 시행령과 고용부 고시로 규정한 △신상품·신기술의 연구개발 △정보처리시스템의 설계 또는 분석 △회계·법률사건·납세·법무 등 사무에서 타인의 위임·위촉을 받아하는 업무 등으로 한정됩니다. 그런데 고용부는 보고서를 통해 재량근로제 적용 대상을 대폭 늘리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 또는 관리직 근로자 △기간을 정한 프로젝트 업무수행 근로자 △전시·컨벤션 업무의 기획·책임자 △자본시장법상 기업금융업무 담당자 등을 추가하는 방안이 담겼습니다. 재량근로제를 적용할 대상을 늘리는 건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합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31조엔 재량근로 대상 업무를 열거식으로 규정됐는데, 정부가 여기에 특정 대상만 추가하면 끝나는 겁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 재량근로제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11월 '재량성·전문성 있는 업무에 대한 근로시간 규율 법안 연구'라는 제목의 최종 보고서를 내놨다. (이미지=뉴스토마토)
 
문제는 고용부가 보고서를 만든 배경입니다. 고용부가 재량근로제 확대에 대한 연구용역을 통해 경영계가 주장한 근로시간 유연화를 이론적으로 뒷받침을 하려고 한 것 아니냐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당시 고용부는 연구용역을 의뢰한 '3차 정책연구과제 입찰공고'에서 "시대 변화에 따라 재량성·전문성이 상당한 업무에 대해 유연한 근로시간 제도 활용이 요구돼 현 근로시간 제도 내에서 활성화 방안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보고서는 일본의 재량근로제를 검토하고,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도움으로 81개 기업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토대로 재량근로제 확대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 기업 중 71.6%(58곳)는 재량근로 대상 업무가 존재한다고 응답했지만, 재량근로제를 하고 있다는 응답은 17.3%(14곳)였습니다. 설문에 참여한 기업 중 85%(68개)는 300명 이상이었지만 재량근로제 도입 비율은 높지 않은 겁니다. 
 
결국 보고서는 187쪽에 걸쳐 재량근로제 대상을 확대하고, 도입 요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현재 재량근로제 대상으로 명시되지 않은 사업 기획이나 조사·분석 업무 등 기획업무에 대해서도 재량근로제 도입을 검토하고, 대상에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 또는 관리직 근로자를 포함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재량근로제 대상을 확대하고, 도입 요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은 경영계가 줄곧 해 온 주장이기도 합니다. 경총은 2019년 재량근로 대상에 현행 전문업무형 외에 경영기획이나 영업기획과 같이 회사 비전을 설정하는 ‘기획업무형’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일정 소득 이상의 전문직의 근로시간을 자율·재량에 맡기자는 주장은 최근 논의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or exemption)'과 유사합니다. 화이트칼러 이그젬션은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제도 적용을 제외하자는 주장입니다. 최근 '반도체특별법'(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을 계기로 다시 쟁점이 됐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린 재벌 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 반대 공동행동 출범 기자회견. (사진=뉴시스)
 
더구나 보고서엔 "재량근로자의 대상 업무 범위 역시 개별 근로자가 합의한 업무로 정하는 걸 고려해 볼 수 있다"라는 주장까지 담긴 걸로 드러났습니다. 보고서는 그러면서 20대 국회에서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예시로 들었습니다. 재량근로제 대상 업무를 법령 개정에 한정하지 않고, '사용자와 노동자의 합의'만으로 정하도록 해 근로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재량근로제 실시를 위해선 집단적 동의를 얻어야 하는 현행 규정을 개별 노동자 동의만 받으면 되는 걸로 바꾸자는 말입니다. 노동계는 노동자가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에게 끌려다닐 우려가 있다고 반대하지만, 경영계는 보다 쉽게 재량근로제를 도입할 수 있어 반깁니다. 고용부가 경영계에만 유리한 주장한 겁니다. 
 
박홍배 의원은 "고용은 강요된 유연화가 아닌, 현장의 노동자를 위한 안전한 노동정책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며 "윤석열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예외의 예외'를 더해 과로사까지 유도하는 악질 대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재량근로제는 근로시간 원칙에 대한 예외,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고, 이것을 활용하려면 왜 현장에서 안 되는지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근로시간 유연화는 '근로시간 주도권'이 있는 노동자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해당 연구보고서는 그냥 재량근로제 자체를 확대하자고 하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재량근로제 활용률이 낮다 보니, 어떤 점이 낮은지 개선이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연구한 것"이라며 "반도체특별법이 처음 발의되고 했던 시점은 정부가 연구했던 시점이랑 달라 그것과 연계된 걸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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