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즌을 마치는 프로야구가 올해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기록하며 대흥행했습니다. 불과 몇년 전 프로야구 위기론이 거론됐던 것에 비하면 참으로 드라마틱한 반전입니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레저산업 중 프로야구와 정반대로 급격한 내리막을 걷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국내 영화관 업계입니다. 멀티플렉스 업체 중심으로 침체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베테랑2'는 전편에 이어 1000만 관객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600만 관객에 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영화관 분위기가 전편이 상영됐던 시기와 달라졌다는 걸 의미합니다. 토마토Pick이 두 업계의 명암이 엇갈린 이유가 뭔지 짚어봤습니다.
야구, 영화 대체재로 부상
누구나 영화관에 얽힌 자기 만의 추억이 있을 겁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손잡고 극장에 갔던 첫 기억, 친구나 연인과 함께 했던 즐거운 순간, 혹은 스크린을 홀로 응시하며 감성에 잠겼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영화 관람 횟수도 줄고, 영화관 업체는 수익이 줄고, 문을 닫는 영화관도 늘고 있습니다. 반면 극장과 달리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장입니다.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여가산업의 대표적 공간입니다. 어떤 지점이 두 업계의 흥행을 엇갈리게 했을까요?
-티켓 가격의 차이 : 역시나 가장 중요한 건 비용 문제입니다. 옛 기억 속 영화표 가격은 비교적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망설여지는 가격'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멀티플렉스 3곳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성인 영화표 가격은 1만5천원 수준입니다. 10년 전 영화표 가격이 1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50%가 오른 것이죠. 문제는 이들 업체 3곳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겁니다. 국내 영화관 459개 중 449개, 비율상 97.8%를 3곳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담합해도 관객은 마땅한 대체 수단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재로 떠오른 게 야구장입니다. 야구 티켓 가격은 10년 전과 비교해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티켓 가격이 구단별로, 좌석별로 천차만별이라 평균을 내긴 어렵습니다. 비싼 좌석은 10만원에 가깝지만, 저렴한 좌석은 1만원이 넘지 않습니다. 서울 잠실야구장의 평일 외야석(그린석)은 8천원, 주말은 9천원입니다. 야구는 평균 3시간 정도인데, 그 이상 진행되는 경기도 많습니다. 2시간 정도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보다 더 오래 즐기고 저렴한 셈입니다.
-바뀐 데이트 장소 :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8월 온라인으로 야구장을 찾는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나들이와 데이트 목적'이라는 응답이 31.1%를 차지했습니다. 텔레비전 야구 중계 때 관중석에 자리잡은 커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데이트 목적으로 야구장을 찾는 커플이 많다는 것은 영화관은 핵심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과거엔 데이트 코스 1순위가 영화관이었기 때문이죠. 커플들은 항상 데이트 장소에 목마릅니다. 긴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저렴하기도 하면서 편의시설도 갖춘 곳이 선호됩니다. 이런 이유로 야구장은 데이트하기 좋아졌지만, 영화관은 매력을 잃었습니다.
-서비스도 사라졌다 : 야구장도 관중석이 텅텅 비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관중석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자전거를 탔을까요. 야구는 국제대회에서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었습니다. 야구장은 그 인기를 놓치지 않고 각종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연예인 시구, 치어리더 공연, 경품 행사 등 비어있던 관중석을 채우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반대로 영화관은 점차 삭막해졌습니다. 과거와 달리 영화관에서 직원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영화표는 키오스크로 발급하고, 음료는 손님이 스스로 받아갑니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방법이겠지만, 손님 입장에선 서비스 품질이 낮아진 셈입니다. 영화든 야구든, 관객은 소비자입니다. 소비자의 선택은 항상 친절하고 서비스가 더 나은 곳, 그리고 가성비가 좋은 곳을 향하기 마련입니다.
영화 보길 주저하는 관객
여전히 영화업계를 낙관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올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나왔기 때문인데요. 앞서 2월에 개봉한 '파묘'와 4월에 개봉한 '범죄도시4'가 1000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이 때문에 올해부터 영화관 매출이 회복될 거라 보는 이들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현재 상영 중인 베테랑2가 업계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선택에 신중해진 소비자 : 베테랑2는 전작인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넘긴 바 있고, 개봉 뒤 빠르게 500만 관중을 돌파하며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베테랑2를 감상한 관객의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결국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가 때문에 흥행 분위기가 꺾였습니다. 이런 베테랑2를 통해 달라진 관람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영화표가 1만 원이 안됐던 시절엔 큰 고민 없이 가볍게 영화를 즐긴 반면, 가격이 오른 지금은 어떤 영화를 봐야 하는지 고민하고, 참고하기 위해 감상 후기를 검색합니다. 영화 유튜버, 블로거 등을 열심히 탐구합니다. 고르다 보면 선택의 횟수는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야구장이나 전시회 등 가격대비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눈을 돌리는 이들도 생겨나는 것이죠.
-가성비 좋은 OTT : 더구나 요즘은 굳이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습니다. 대형 텔레비전을 갖춘 집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활용하면 극장 못지 않습니다. 가성비도 훨씬 좋습니다. 최근 배우 최민식이 한 방송에서 "티켓값이 1만5000원 그 금액이라면 스트리밍 서비스로 여러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낫지 관객들이 발품 팔아 극장까지 가겠냐"라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인기 감독과 작가들이 차기작을 OTT 시리즈로 내놓습니다. 영화관 업계로선 사면초가입니다.
서비스 차별화 절실
영화관 업계의 위기는 가격만 낮춰 해결될 일은 아닌 듯하지만, 코로나19로 타격이 컸던 업계 입장에선 가격을 낮추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야구가 입장료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낮은 티켓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영화관들도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좌석마다 가격을 차별화 해 관객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는 한편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도전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작은 콘서트를 열거나 스포츠 경기 중계 등을 시도하고 있는데요. 구단들이 야구장에 캠핑존을 설치한다던가, 여름에 워터밤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다양한 관객 유치 노력을 했던 것과 유사한 시도입니다. 가격을 낮출 수 없다면, 다양한 서비스와 차별화된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생존법칙'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