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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 제도개선에도 구멍 여전…"리픽싱한도 해석하기 나름"
리픽싱한도 70%, 주총 승인 없이도 무제한 인하조정 가능
"금감원 해석…제도개선 취지와 반대"
2024-02-14 06:00:00 2024-02-14 06:00:00
 
[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금융위원회가 전환사채(CB)의 과도한 전환가액 조정(리픽싱) 방지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나 제도의 허점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도까지 하락 조정된 CB의 전환가액을 추가로 낮출 방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주 발행을 통한 CB 리픽싱의 경우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해석하기에 따라 제도를 피할 수 있는 ‘구멍’이 존재합니다.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코스닥 상장사 A사는 기존에 발행했던 CB의 전환가액을 759원에서 489원으로 35.57% 낮췄습니다. 해당 CB의 최초 발행 전환가는 831원으로 최대 리픽싱 한도(70%)는 582원이었습니다.
 
A사가 전환가액을 최초 리픽싱 한도보다 낮출 수 있었던 것은 시가를 하회하는 신주 발행 덕분입니다. 증자 등으로 저렴한 신주가 발행될 경우 CB의 전환권 가치가 희석되는데요. 이 때문에 희석을 방지하기 위한 리픽싱 규정이 붙습니다. 신주 발행 리픽싱의 경우 규정상 따로 방법에 제한이 없습니다. 일부 상장사들은 이를 악용해 과도하게 전환가액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A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A사가 전환가액을 조정한 50억원 규모의 CB는 전환가액이 리픽싱 한도까지 내려갔으며, 전환가보다 주가가 낮은 상태여서 주식 전환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A사는 3자배정 소액공모(10억원)를 통해 발행가 590원으로 신주를 발행했고 이를 통해 전환가액을 489원으로 낮췄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처럼 과도한 전환가액 조정을 막기 위해 신주 발행으로 인한 CB 리픽싱의 경우 신주 수량에 따른 가치 희석을 반영한 만큼만 리픽싱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입니다. 금감원은 이를 통해 CB가 불공정거래 등에 악용되는 사례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상증자 시 전환가액 조정에 대한 부분을 예전에 너무 임의대로 막하다 보니까 그것에 대해 좀 제한을 뒀다”면서 “리픽싱을 실제 지분가치 하락분만큼만 인정하면 악용하는 사례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A사의 리픽싱 사례를 보면 여전히 ‘구멍’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A사가 전환가액 한도를 낮출 수 있었던 것은 명확하지 않은 신주 발행 리픽싱 규정 때문입니다. A사는 50억원 규모 CB의 전환가액을 조정하면서 리픽싱 한도를 최초 발행가(831원)가 아닌 신주발행가(590원)의 70%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통해 리픽싱 한도가 기존 582원에서 413원으로 낮아졌습니다.
 
금감원은 해석에 따라 다르지만, 리픽싱 규정 취지에는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금감원 관계자는 “리픽싱 한도보다 높은 발행가의 유증으로 리픽싱 한도를 재조정하는 것이 맞는가를 두고 봤을 때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것 같다”면서 “시가보다 저렴한 증자라는 것만 보면 다툼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분 희석 반영이라는 취지를 봤을 때는 잘못됐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금감원의 판단에 따르면 CB 제도 개선이 완료되더라도 상장사들은 주주들의 동의 없이 CB 리픽싱 한도를 무제한으로 낮출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리픽싱이 지분 희석만큼만 반영되더라도, 이후 주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 한도가 새로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환가액이 1000원인 CB의 경우 규정상 리픽싱 한도는 700원입니다. 만약 해당 발행사의 주가가 550원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발행가 500원의 유증을 진행할 경우, 지분가치 희석을 반영한 전환가액이 800원으로 하락했다면 앞선 CB의 리픽싱 한도는 700원에서 560원(800원의 70%)으로 낮아집니다. 결과적으로 리픽싱 한도를 얼마든 낮출 수 있는 겁니다.
 
앞서 금융위는 CB 리픽싱 한도(70%)를 초과할 경우 건별로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 개선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가 하락에 따른 리픽싱과 신주 발행에 따른 리픽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나눌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지분 희석만큼만 반영하더라도 유증 이후 새로운 리픽싱 한도가 적용된다면 결국 전환가 한도를 얼마든 낮출 수 있다는 의미”라며 “제도개선의 취지와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습니다. 
 
금융감독원. (사진=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증권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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