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대우그룹이 무너진 날
2023-11-01 06:00:00 2023-11-01 06:00:00
2018년작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외환위기(IMF) 사태를 다뤘습니다. 한국은행 팀장 역을 맡은 배우 김혜수씨는 국가부도 상황을 타개할 대책을 찾아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파도는 결국 1997년 겨울의 대한민국을 매섭게 덮쳤습니다. 영화 중반부, 재계 순위가 적힌 커다란 칠판 앞에 선 외환위기 대책팀 직원들은 부도난 회사들 사명에 빨간색 금을 긋기 시작합니다. 표정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한라그룹 부도입니다", "뉴코아그룹도 부도 신청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대우가 위험하다고 합니다."
 
충격을 넘어선 경악이었습니다. 당시 대우는 재계 4위의 공룡이었습니다. SK(당시 선경), 한화, 롯데, 한진 등은 그때만 해도 대우를 넘볼 수 없었습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며 현대,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대우는 결국 외환위기 파고를 넘지 못하고 공중분해 됐습니다. 1999년 11월1일. 대우그룹이 해체된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4년 전입니다. 
 
대우 침몰을 두고 여러 분석이 뒤따랐습니다. 김우중 회장 1인 경영의 불안정성,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과도한 부채비율 등이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이는 외환위기로 도산한 여타 재벌 대기업들이 모두 겪은 공통의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본지 탐사보도팀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30대그룹 전체 계열사 4123곳을 전수분석, 경영건전성을 점검하는 기사를 연재 보도했습니다. 이들 계열사 4분의1은 자본잠식 상태였습니다. 부채비율의 경우 30대그룹 계열사 절반이 100% 이상, 3곳 중 1곳은 200%가 넘었습니다. 자기자본을 모두 처분하더라도 빚을 다 못 갚는다는 뜻으로, 현재의 경영상태로는 이자비용조차 감당하기 힘든 '한계기업'에 이른 것입니다.
 
2020년부터 2022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2022년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공급망 파괴 등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연쇄타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장기침체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30대그룹 부실의 이유를 단순히 글로벌 요인에서만 찾는 건 현명하지 못해 보입니다. 재계가 위험을 자초한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30대그룹은 열악한 재무상황에서도 계열사 숫자를 계속해서 늘렸습니다. 계열사가 늘어난 만큼 부실 계열사의 숫자도 증가했습니다. 특히 이들 중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곳은 주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20%를 넘는, 사실상 개인회사들이었습니다. 30대그룹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도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돕다가 과도한 빚더미에 시달리게 됐다는 지적이 불가피한 이유입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성장률마저 크게 둔화되자 일각에선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위기론을 꺼냅니다. 한국경제를 짊어진 30대그룹에도 경고등이 감지됩니다. IMF 당시 누구도 대우가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재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라는 말이 '원칙'으로 통용되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대우는 망했습니다. 피해는 24년 내내 나라와 국민이 짊어졌습니다. 대우그룹이 무너진 날의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최병호 탐사보도 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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